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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장편 펴낸 은희경 “시대를 도피한 자의 반성문”

『빛의 과거』를 출간한 은희경 작가. 그의 대학생 시절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장진영 기자

『빛의 과거』를 출간한 은희경 작가. 그의 대학생 시절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장진영 기자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묵은 과제를 끝낸 것 같아 홀가분합니다.”
 

1977년 대학가 배경 『빛의 과거』
“내 스무살 때 고민, 아직도 유효”

은희경(60) 작가가 7년 만에 여덟 번째 장편 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15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인데 계속 입구를 찾지 못해 여러 차례 실패하다 이제야 긴 여정을 마쳤다”며 “다만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이야기고 나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 보니 소설에 ‘작가의 목소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데뷔작인  『새의 선물』(1996)과 두 번째 장편 소설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98)에 이어 세 번째로 완성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는 “소설을 거듭해서 쓸수록 작가의 목소리를 은밀하게 묻어두는 장치를 만드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유독 그게 어려웠다”며 “저항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야 말문이 터지듯 글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3년 전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쓰기 시작해 올해 완성한 소설의 주요 배경은 1977년 한 여자대학교의 기숙사다. 주인공은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상경한 국문학과 1학년 김유경. 이 밖에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최성옥, 과시욕이 있고 자기중심적인 양애란, 말수는 적어도 의사 표현이 분명한 오현수 등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기숙사 메이트로 등장한다. 소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이러한 소설의 배경에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 짙게 녹아 있다.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한 은희경 작가는 전주여고를 거쳐 1977년 숙명여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3년 정도 기숙사에서 생활한 그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삶에서 처음으로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마주했다. 그는 “글을 쓰면서 내가 스무살에 겪었던 문제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며 “가부장적인 사회와 젠더 문제, 폭력적인 단체 생활, 특권층의 착취 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도피한 자의 반성문’이라고 고백했다. “과거에 소녀였던 그들에게도 분명 꿈꾸는 세계가 있었을 텐데, 그들이 시대를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사회의 폭력성이 견고해지고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빛의 과거’라는 제목에는 이러한 작가의 회한이 담겨 있다. 어른이 된 주인공은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며 “뜨거움과 차가움 둘 다 희미해졌다”고 털어놓는다. 소설은 이렇듯 절반의 실패로 끝난 한 세대의 이야기를 쓸쓸하게 마감한다.
 
일상의 익숙함을 경계하는 그는 평소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고 했다. 작가는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발전하고 달라지려고 애를 쓴다”며 “내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최신작이라고 답한다”고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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