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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南과 마주 앉지 않겠다”에 갈 곳 잃은 남북교류 예산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8일 오전 평양 시내를 함께 카퍼레이드하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8일 오전 평양 시내를 함께 카퍼레이드하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인 A씨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남북 영화교류, 북한 전통문화 자료수집 및 구축 연구용역을 의뢰받았다. 비슷한 시기 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도 북한 영화 기록 연구용역이 들어왔다.  
A씨는 “통상 3~4월에 연구용역 제안을 받는데 하반기 들어 엇비슷한 제안이 한꺼번에 들어온 게 의아했다”며 “남북관계 침체로 상반기에 쓰지 못한 정부 예산이 적지 않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산가족 예산 395억원 중 2억원만 사용
교류협력 막히자 학술회의 위주로 진행

 
올해 남북관계 ‘활기’을 예상해 작년에 대폭 늘려 잡아놓은 정부 부처의 남북 교류협력 예산이 남북 관계가 풀리지 않으면서 갈 곳을 잃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 개최되는 등 남북 관계가 10년여 만에 복원되면서 일부 부처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염두에 두고 올해(2019년도) 예산을 짰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교류지원 사업에 전년도 대비 216억원 증액한 336억원을 편성했는데,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59억원을 증액해 줘 395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문체부의 DMZ(비무장지대)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사업 예산도 신설돼 당초 12억원을 책정했다가 국회에서 30억원 증액돼 42억원이 배정됐다. 9·19 평양 공동선언 이행 차원에서 예산이 정부안보다 오히려 크게 늘었다.  
남북 문화예술·체육 교류 증대를 기대한 문체부도 예산 확보에 적극 나서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액된 36억여원을 편성했다.  
 
평양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해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평양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해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하지만 남북 관계는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거의 ‘올스톱’ 상황이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대거 포함된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은 7월 말 기준 5%대에 불과하다. 이산가족 교류지원 예산은 395억원 중 약 1억9000만원만 사용해 집행률이 0.5%다. 구호지원 예산은 북한 요청이 전무해 집행액이 ‘제로(0)’이고, 민생협력지원 예산 집행률도 3%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속도를 낸 게 남북공동 유해발굴 지원 사업이다. 7억3500만원 예산 중 4억 가까이 지출돼 집행률(52%)이 가장 높다. 
 
문체부는 지난해 남북 문화·체육 분야 인적 교류 등을 포함한 사업까지 염두했지만 현재는 이를 학술회의, 기초연구 사업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북한 문화예술 분야 기초연구 작업이 부족했던 만큼 향후 남북관계 개선 시 대비한 측면도 있다”며 “예산 집행률도 74%에 이른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입장에선 이미 책정한 예산을 불용 처리할 경우 내년도 예산에선 삭감될 가능성이 큰 만큼 어떤 식으로건 예산을 소진하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남북관계 변수가 예산 집행의 불확실성을 키운 단면이다.
북한이 지난달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새 무기 시험사격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발사 현장으로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무한궤도형 이동식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뿜으며 솟구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새 무기 시험사격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발사 현장으로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무한궤도형 이동식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뿜으며 솟구치고 있다. [연합뉴스]

연말까지 4개월이 남았지만 남북 예산은 여전히 쓸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대남비난을 계속하며 정부의 교류 제안을 전면 거부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가 나온 다음 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이 “남조선 당국자들과 다시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대남 선전 매체들도 “남조선 통일부는 ‘대화 타령’을 그만 두라”고 면박을 주고 있다.  
 
A씨는 “남북관계 침체 덕분에 예산 배정에서 늘 뒤로 밀렸던 북한 기초연구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현실이 ‘웃프’(웃기면서도 슬프다)다”며 “이번 예산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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