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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0년이 오면’ 로켓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3일 개막한 ‘서기 2000년이 오면’ 전시장의 양혜규(독일 슈테델슐레 교수). [사진 국제갤러리]

3일 개막한 ‘서기 2000년이 오면’ 전시장의 양혜규(독일 슈테델슐레 교수). [사진 국제갤러리]

이런 노래가 있었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우리는 로케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가수 민해경이 1982년에 발표한 ‘서기 2000년이 오면’이다.
 

세계적 작가 양혜규 국내 개인전
민해경 1982년 노래에서 영감
시·공간의 복합성 미술로 표현
원시와 첨단, 자연과 로봇 공존

그러나 어쩌랴. ‘서기 2000년의 미래’는 어느덧 오래전에 과거가 됐다. 우리는 지금 로켓 타고 날아다니지도 않고, 끝없이 즐겁지도 않으며, 모든 꿈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런데 노래는 2019년에 듣기에 민망하리만치 너무 흥겹다.
 
2일 서울 소격동 골목 안에 자리한 국제갤러리 3관. 이 노래를 들으며 전시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나무와 불 등 원시적인 풍경과 우주의 웜홀(우주 시공간의 구멍), 최첨단 로봇이 뒤섞인 이미지로 도배된 벽면이 보인다. 전시장 바닥엔 안개가 흘러다니고, 천장엔 공 모양 구슬 조각이 매달려 있다. 바닥에 가볍게 굴러다니는 은빛 짐볼도 보인다. 그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얼굴 아래 부분에 붉은 칠을 한 이가 마치 주술사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금 세계 미술 무대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작가 중 한 사람인 양혜규(48)다.
 
구슬 조각 ‘소리 나는 운동 지도’(2019). [사진 국제갤러리]

구슬 조각 ‘소리 나는 운동 지도’(2019). [사진 국제갤러리]

3일 국제갤러리에서 양혜규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이 개막했다. 2015년 삼성 리움미술관 리움에서 연 ‘코끼리를 쏘다’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네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간담회에 몰려든 수 십명의 기자들이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대변했다. 최근 몇 년간 그가 해외 무대에서 보여준 광폭 행보의 결과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독일로 건너간 그는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를 졸업한 뒤 독창적인 설치작품을 선보여왔다. 201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을 받은 데 이어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상반기 열린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 전시에 이어 하반기 일정도 빡빡하다. 9월 중순엔 터키로 날아가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작품을 설치하고, 10월 21일 재개관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 작품 ‘손잡이’를 선보인다. 11월 2일 마이애미 배스 미술관에서, 또 내년 여름엔 영국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분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엔 공간 전면을 둘러싼 벽지 작품 ‘배양과 소진’(2018)을 비롯해 방울 조각 신작 4점, 블라인드를 소재로 작업한 동차 연작 2점 등이 나왔다.
 
양혜규. [뉴시스]

양혜규. [뉴시스]

전시 제목이 ‘서기 2000년이 오면’인데.
“미래의 시점이 훌쩍 지나버린 시점에서 과거의 희망을 바라보는 게 흥미로웠다. 시간은 과연 객관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간에 대한 우리 기억은 굉장히 개인적이다. 평범한 유행가이지만 난 여기서 ‘접혀진 시간’을 봤다. 이 노래가 시간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했다는 뜻이다.”
 
전시장 벽에 양파·마늘·번개·로봇·짚풀·방울 등의 이미지가 눈에 띄더라.
“지난해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독일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래더와 협업한 작품이다. 이곳은 이교도 전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자 프랑스 실리콘 밸리라고 할 정도로 하이테크 산업이 융성한 곳이다. 이것은 한 지역의 이야기이자, 그 틀을 뛰어넘는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10월 MoMA 재개관전에 설치될 작품 ‘손잡이’. [사진 국제갤러리]

10월 MoMA 재개관전에 설치될 작품 ‘손잡이’. [사진 국제갤러리]

양혜규는 흔히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인물이나 사건 등 요소들을 그만의 관점으로 조합하고 배열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과거와 현재, 기술과 문화, 자연과 문명을 시각적으로 뒤섞어 보여주는가 하면,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인물들도 뒤섞어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2018)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프랑스 작가 마그리트 뒤라스(1914~1996)와 윤이상(1917~1995)의 연대기를 그가 주관적 관점으로 재편집해 선보인 텍스트 묶음이다. 그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을 병치시키는 작업, 즉 ‘이형 조합’에 매력을 느낀다”며 “특히 독일에 있으면서도 강서대묘의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든 윤이상 이야기를 이번 전시에서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의 새소리는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영상에서 추출했다.
“당시 실시간 중계를 독일에서 봤다. 한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전세계 사람들이 같은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사실에 압도됐다. 그 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두 지도자가 도보다리 끝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장면이다. 당시 영상엔 카메라 셔터소리, 발소리 새소리 만이 담겼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그 순간이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뛰어넘는 국면으로 다가왔다.”
 
작품 전반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녹아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뒤 94년에 독일로 간 나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시공간을 산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20대에 독일에 있었지만 나는 당시 또래 친구들 할머니 세대의 멘탈이었다(웃음). 삶에서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적 나이, 문화적인 나이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문화’ ‘시간’이라는 것은 생각할수록 복합적이고 단순하지 않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전시는 11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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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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