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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소비자물가 첫 ‘마이너스’…디플레이션 현실화하나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를 찾은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를 찾은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첫 0%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Deflation·경제 전반적으로 상품·서비스 가격이 지속 하락) 우려가 커졌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선 민간투자는 물론 소비까지 위축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선 통화정책 완화 등 거시정책 수단뿐만 아니라 국제통상·규제 등 미시적인 대책도 시장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 104.81…전년 동월비 -0.04% 

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지난해 8월과 같았다. 소숫점 둘째자리까지 들여다 보면 -0.04%다.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인 것은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개월 연속 0%대를 기록했다. 2015년 2~11월(10개월) 이후 가장 길었다.
소비자물가 1965년 집계 이후 최저.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소비자물가 1965년 집계 이후 최저.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정부 "디플레이션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저물가 상황만 놓고 디플레이션 국면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못 박는다. 측정 대상인 전체 품목 물가가 하락했다기보다 농·축·수산물 등 일부 품목 물가가 내려 전체 소비자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품목별로 보면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대비 7.3% 하락했다. 전체 물가를 0.59% 끌어내렸다. 통계청은 지난해 8월 폭염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공업제품도 같은 기간 0.2% 떨어졌다. 전체 물가를 0.08% 끌어내렸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석유류 물가가 6.6% 떨어져서다. 공공서비스 물가도 무상급식 확대, 무상교복 지급, 일부 지역 고등학교 무상교육 시행 등 복지 정책 효과로 오르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유류세·교육복지 등 영향으로 물가 흐름이 낮아진 상황에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며 “농산물의 경우 양호한 기상 여건에 따라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도 이날 한국은행과 '거시경제협의회'를 열고 "저물가는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라며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연말부터는 0%대 중후반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경기 부진과 물가 하락 동시에…사실상 디플레" 

전문가들은 그러나 경기 부진과 물가 하락이 동시에 찾아온 지금과 같은 국면은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일부 품목의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물가가 떨어진 게 아니라 경기 부진 국면에서 시장 내 수요 자체가 위축된 구조적인 결과란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전기대비)은 지난 7월 발표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내린 1%였다. 소비자물가뿐만 아니라 소비자·수출·수입물가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GDP 물가)도 올해 2분기 -0.7%를 기록,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06년 1분기 이후 최저치다.
‘GDP 물가’ 상승률 13년 만에 최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GDP 물가’ 상승률 13년 만에 최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GDP 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 부진 상황에서 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 총괄은 "공급 측 요인과 함께 수요 부족도 소비자물가가 낮게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플레 현실화하면 상품 가격뿐 아니라 월급도 줄어"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서비스 가치 하락으로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위축한다. 소비자도 값어치가 떨어지는 상품을 구매하기보다 현금을 쌓아두길 원해 소비가 침체한다.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2%대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가가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월급은 물론 부동산 등 보유 자산 가격 마저 하락하면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 증감률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수출 증감률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통화·규제 완화책 총동원해야"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0%대로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국은행에서도 물가상승률이 올해 0%대로 하락할 가능성을 이미 제기했다. 연 단위로 물가상승률이 0%대를 기록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0.8%)과 유가 폭락으로 물가상승률이 0.7%를 기록했던 2015년 두 해뿐이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 국면이 아닌데도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심상찮은 조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금 상황을 '디플레이션 위기'로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맞는 거시·미시 경제정책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되면 세수 확보가 어렵고 기업도 수입이 감소한다"며 "노동 비용을 높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하고 재정·통화 정책 등도 전방위적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윤창현 교수도 "저성장·저물가의 '일본형 장기 불황'이 한국에서도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며 "정부는 통화·재정정책 등 거시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규제 완화와 협력적 국제통상 관계 구축 등 미시적인 경제 정책도 함께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허정원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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