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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열두발자국] 과학대중화의 현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지난 주말 강원도 원주에서 무료 과학강연을 했다. 아기자기한 시립도서관에서 모인 1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뇌공학이 만들어갈 미래’를 강연했다. 메모지에 빼곡히 써내려간 질문에도 답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책에 사인도 해주면서 시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청소년들, 과학자 만날 기회 없어
시민들과의 대화는 과학자 의무
지식보다 과학적 사고가 더 중요
먼저 시민에 다가가는 실천 필요

15년 전에 비하면, 오늘날 청소년들이 과학자를 만날 기회는 꽤 많아졌다. 서울만 해도 과학자들의 강연시리즈를 종종 접할 공간이 여기저기 생겼다. 하지만 조금 작은 도시로 내려가면 청소년들이 과학자를 만날 기회는 별로 없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일러줄 기회도 거의 없다.
 
15년 전, 우연히 서산의 한 도서관에 무료강연을 하러 갔다가, 과학자를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는 청소년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후 작은 도시를 찾아 과학강연을 해오고 있다. 과학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청소년들이 과학자를 꿈꾸기는 쉽지 않다. 과학자의 강연이 과학책 읽기로 이어지고, 과학자에 대한 꿈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무료 강연의 보람을 충분히 느낄 것이다.
 
10년 전부터는 ‘10월의 하늘’ 행사를 통해 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무료 과학강연 행사를 하고 있다. 1년 365일 중 364일은 정당히 세상에 자신의 노력을 청구하지만, 1년에 단 하루,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는 전국의 작은 도시 도서관에 가서 강연 기부를 하는 행사다. 고향, 혹은 가보고 싶었던 작은 도시에 소풍 가듯 찾아가 청소년들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는 행사다. 강연은 하루로 끝나지만, 그것이 과학책 독서로 이어져 과학자로의 꿈으로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과학자와 공학자의 본분은 연구와 교육이지만, 사회적 책임 또한 중요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만큼, 세금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해 준 시민들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를 소개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논쟁적인 연구주제들에 대해서는 시민적 합의도 이끌어내면서 ‘시민과 함께 하는 과학’ ‘시민과 함께 하는 공학’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증대되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흔히들 ‘과학 대중화’라 불리는 이 작업은 학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도 칭찬받지도 못한다. 과학 대중화 과정에서 과학이 잘못 왜곡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과학이 전파될 수 있다며 경계한다. “학자가 연구나 하지, 밖으로 돌아다닌다”고 대놓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심지어 나만 해도 ‘과학 대중화’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다. 과학자인 내게도 과학은 어려운데, 그것을 쉽고 재미있다고 현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학은 어렵고 힘들며, 과학을 잘하는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가 격려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복잡한 수식의 바다를 건너 어려운 개념의 숲을 지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과학을 모르더라도 온 인류가 맛보아야 할 것이기에, 그저 시민들과 함께 나눌 뿐이다.
 
학자들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설픈 과학지식은 오히려 위험하며, 과학지식을 넘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대중을 만들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높이고 널리 퍼뜨리기 위해 진지하고도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두 동의한다. 과학은 과학자가 밝혀낸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과학적인 태도이다. 시민들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사회가 과학자들이 꿈꾸는 사회이기도 하다. 나도 그런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저 멀리 있다. 과학적 사고는커녕 과학 자체에 시민들은 관심이 별로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과학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시민들이 대다수다. 학자들의 근엄한 훈수가 무색한 현실이다.
 
과학 대중화를 넘어 대중의 과학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먼저 시민들을 만나야 한다. 시민들에게 다가가 같은 눈높이로 세상과 과학을 얘기할 때 그들이 마음을 연다. 과학적인 태도가 얼마나 근사한 삶의 태도인지는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다.
 
세상의 모든 과학자·공학자, 그리고 그들을 꿈꾸는 과학도·공학도에게 부탁드린다. 시민들에게 먼저 가까이 다가가자고. 시민들은 과학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근사한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첫걸음이 중요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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