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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이코노믹스] 도쿄 긴자 초밥 맛 다르듯 기술도 시간의 축적 필요하다

소재·부품·장비 일본 의존 벗어나는 길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일본에서 초밥의 역사는 길다. 일본의 1000년 고도(古都) 교토(京都)에선 쌀밥을 펴고 그 위에 생선 살을 올려 먹는 ‘지라시(흩뿌리다는 뜻) 스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우리가 지금 먹는 ‘니기리(손으로 쥔다는 뜻) 스시’가 발달한 건 에도막부 시절 지방세력 견제를 위한 참근교대제(參勤交代制)로 다이묘(大名)들이 도쿄를 드나들면서부터다. 밥과 생선 살만 있으면 바로 쥐어낼 수 있으니 스시판 패스트푸드였다.
 

일본과의 기술 전쟁 불가피
은밀하고 조용한 국산화 필요
독일처럼 히든챔피언 키워야
전문인력 공급 생태계 육성 시급

지금은 한국에서도 초밥집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도쿄 긴자(銀座)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맛을 내지는 못한다. 초밥의 생명은 결국 밥에 얼마나 적당한 초 양념을 하는가에 달려있을 텐데 어지간해선 그 맛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다 일본에 가면 꼭 찾는 곳이 초밥집이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다. 2000엔 정도면 양질의 초밥을 먹을 수 있고 1000엔짜리만 해도 일본 특유의 초밥 맛에 빠질 수 있다.
 
초밥뿐인가. 일본 우동도 한국에선 본고장의 맛을 만나기 어렵다. 반대로 일본에서 먹는 김치는 어떤가. 김치에 마늘을 쓰지 않고 주로 양파를 사용한다. 제대로 된 김치맛이 날 턱이 없다.
 
이런 이치에 비춰보면 한국 정부가 3년간 5조원을 쏟아부어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기로 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육성 전략은 ‘초밥의 시사점’을 활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단숨에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력 격차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2만개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 공정에 없어선 안 될 불화수소·폴리이미드·레지스트의 70~90%를 일본 기업에 의존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예컨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는 소수점 이하 9가 11개인 ‘일레븐 나인’을 사용한다.
  
반도체 전쟁 지금도 진행 중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국에는 없는 이런 정밀 소부장이 일본에는 즐비하다. 삼성전자는 이들을 발판 삼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했다. 반도체는 1970년대 미국 인텔이 주도했지만, 일본이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미국을 제치고 80년대 들어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일본은 과잉기술·과잉제품에 발목이 잡혔다. 소부장의 품질이 너무 고도화하고 정교해질수록 인건비와 함께 비용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개발 스피드를 높여 비용을 낮췄다. 이 전략이 먹히면서 삼성전자는 90년대 들어 느림보가 된 일본 기업을 따돌렸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반도체 패권 재건에 도전했다. 2003년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타도 삼성’을 내걸고 진행한 ‘히노마루 반도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미쓰비시·NEC·히타치 D램 부문을 합병해 출범한 엘피다는 자국 반도체 업체 간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결국 파산, 2013년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됐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 기업으로 공동 설립한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역시 올해 5월 국내외 13개 공장에서 생산을 중단하고 그룹 직원 5%에 이르는 1000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더구나 도시바는 메모리 사업부를 2017년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SK하이닉스 등이 속한 한·미·일 연합에 매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반도체 산업 인프라를 갖고 있어도 일본은 반도체 산업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빈틈을 비집고 엘피다를 인수한 미국 마이크론은 삼성 추격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론은 2017년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 20억 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대 D램 단일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시장 점유율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시사점은 무엇인가. 각자 잘하는 게 다르다는 얘기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소부장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최종재 생산 경쟁력은 한국이 앞선다.
 
이에 비해 한국은 스피드 경영의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이 1983년 반도체에 뛰어들어 치킨게임에서 패권을 차지한 것도 과감한 투자가 승부를 갈랐다. 삼성전자가 주도한 이 전략은 지난 200년간 경제학 교과서에 공인된 ‘국제분업’과 ‘비교우위’의 결과였다. 공장에서 벽돌을 찍을 때 한 명이 재료 조달부터 배송까지 도맡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가 주창한 분업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가 됐고 데이비드 리카도가 강조한 대로 국가 간에도 비교우위에 따라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정치가 ‘반도체 연합’ 흔들어
 
이 같은 ‘한·일 반도체 연합’은 정치가 개입하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이 징용노동자 판결과 관련한 한국 태도에 대한 불만을 경제 보복으로 맞대응하면서 내놓은 한국의 ‘화이트 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는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 한국으로선 이를 겨냥한 3대 수출규제 품목의 연간 수입액이 7억2300만 달러(약 8553억원) 수준이다. 반면에 이를 사용한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267억 달러(약 150조원)에 달한다. 일본은 전체 수출의 0.001%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수출의 21% 규모다. 산술적 충격은 가공할 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소부장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소부장의 특정국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면서다. 그 위험은 고무로 나오키가 1988년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예견한 대로다. 긴 목 중간을 줄로 묶어 사냥한 물고기를 토해내야 하는 가마우지처럼 한국은 아무리 반도체를 많이 팔아도 일본에 소재·부품·장비를 의존하는 한 가마우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의 말대로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까지 54년간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는 6046억 달러(약 708조원)에 달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 데 대해 “검토해 보니 전략물자가 일본에서 1194개가 되는데, 우리한테 진짜 영향을 미치는 건 ‘손 한 줌’ 된다”고 했다. 정신승리와 아전인수는 자유다. 하지만 지금도 소부장을 중심으로 해마다 200억 달러가 넘는 대일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더구나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한·일 주요산업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은 48개에 달한다. 1194개 중 한 줌인 4%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핵심 전략물자가 한국 제조업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 독립이 진정한 경제 독립
한국은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는 핵심 기술의 자체 개발이다.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는 전략물자는 비용이 들어도 자체 생산이 필요하다. 둘째는 갑을 관계에서 벗어난 선진국형 강소기업 육성이다. 유럽 경제의 견인차인 독일 경제의 저력은 1300개에 달하는 히든챔피언(강소기업)에서 나온다. 이들은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전 세계 수요처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해 독자적 생존력을 가졌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히든챔피언의 위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이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다. 정부는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지원체계가 충분하지 않다. 개발된 소재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인증이 가능해야 하지만, 국내에 인증 장비가 없어 기술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넷째는 활발한 인수·합병(M&A) 분위기 조성이다. 지금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라는 과도한 프레임 때문에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류가 많지 않다. 그러니 국내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 기술을 경시하면서 선진국에서 검증된 기술만 들여온 결과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 아닌가. 독일 히든챔피언처럼 전문인력 공급이 원활하도록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소재·부품·장비를 우리가 다 만들겠다는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처럼 100대 핵심 전략물자를 최대한 국산화하되 비교우위가 없는 것들은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대기업은 전략적으로 국내 강소기업에도 제품을 공급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일본 기업이 점유하고 특허 장벽을 넘는 것도 숙제다. 더구나 제품 양산이 가능해도 풍부한 공급처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처럼 소재·부품·장비 육성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일관성 있게 20년 이상 밀고 가야 가능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이 숙제를 해내야 진정한 경제 독립이 가능하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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