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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 키우는 사연, 이웃에 숨기는 게 더 편견 아닐까

기자
배은희 사진 배은희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6)

“은지야!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야. 그러니까 두 배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은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항상 하는 말이다. 이런 상황은 은지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고 ‘상황’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제주는 좁은 곳이다. 서울에선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잘 모르는데, 제주도는 끝에서 끝에 사는 사람도 몇 사람만 통하면 다 알게 된다. 그래서 뭔가를 숨길 수도 없고 숨겨봤자 다 드러나게 된다.


은지를 보는 이중적 시선

조끼를 머리에 쓰고 해맑게 웃는 은지. [사진 배은희]

조끼를 머리에 쓰고 해맑게 웃는 은지. [사진 배은희]

 
은지를 소개하는 이유도 그렇다. 제주에선 숨기기도 어렵지만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편견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을 소개한다. 큰아이, 작은아이, 우리 막내 은지 공주라고.
 
“터울이 많네요?”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두 아이와의 나이 차이, 은지가 가족이 된 사연을 궁금해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후부턴 은지를 바라보는 아니,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은지랑 살갑게 놀면 가식이라고 하고, 무심히 대하면 자기 자식 아니라고 저러나 한다. 옷을 예쁘게 입히면 이목을 너무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하고, 헝클어진 모습을 보면 좀 신경 써주지 한다. 그런 말을 감수하면서도 은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지금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지는 갈수록 표현도 섬세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눌 줄도 안다. [사진 배은희]

은지는 갈수록 표현도 섬세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눌 줄도 안다. [사진 배은희]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야. 그러니까 두 배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큰아이, 작은아이도 은지를 행복한 아이라고 말한다.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은지는 갈수록 예뻐지고, 표현도 섬세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눌 줄도 안다.
 
자식이 예쁘면 자랑하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나도 그렇다. 가는 데마다 은지를 자랑하고 싶고, 만나는 사람마다 은지의 특별함에 대해 떠들고 싶다. 조금씩 크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고, 은지 때문에 항상 웃을 일이 생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낳지 않은 애를 어떻게 키워?” “다시 친부모한테 돌려보내야 한다고?”
 
난 그저 여느 엄마들처럼 은지 얘기를 한 것뿐인데, 돌아온 건 야릇한 궁금증과 애매한 시선이었다. 울컥울컥 후끈한 것이 넘어왔다. 눈꺼풀이 자꾸 깜빡여지고 어금니에 꽉 힘이 들어갔다.
 
‘그냥 들어주면 안 되나?’ 왠지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배운 것이 ‘겸손’이었다. 겸손이란 상대를 신뢰함으로, 나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처음 1, 2년은 은지를 늦둥이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정직한 표현은 아닌 것 같아서 솔직히 이야기한다.
 
나는 겸손한 사람도 아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신뢰하지도 못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도 못한다. 그런데 은지를 키우면서 조금씩 겸손을 배우고 있다. 또 우리 아이들 때문에라도 겸손하려고 애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내가 평범하게 양육하면 아이들이 평범하게 자랄 테고, 내가 특별하게 양육하면 아이들이 특별하게 자랄 것이다. 내가 애써 겸손을 연습하는 것도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특별한 아이들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입양을 특별하게 안 봤으면

위탁이나 입양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의 성이 달라도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위탁이나 입양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의 성이 달라도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위탁 부모가 된 동기, 지내면서 어려웠던 일, 보람을 느꼈던 일….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담담히 이야기하면 누군가에겐 도전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체득하며 지내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하면서 또 조금씩 겸손해지려고 한다.
 
간절히 바라기는, 사람들이 위탁이나 입양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위탁 엄마라고 이야기해도 괜찮고, 은자가 두 아이와 성이 달라도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 둘, 아빠 둘인 아이도 있다. 그러니까 두 배로 행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족의 형태를 보느라 가족의 가치관, 문화, 성장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보이는 걸 보느냐, 보이지 않는 걸 보느냐는 선택인데 말이다. 오늘도 동거는 진행형이다.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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