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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중도가 결정하는 시대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한국정치는 2003년에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오랜만에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노 대통령은 3김에 비해 중량감은 떨어졌지만 신선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 시절부터 인물이 여론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인물을 만드는 시대로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 여론 흐름에서
중도는 늘 30%대 견조성 유지
자기편 30%만 지키려 천착해선
내일의 나라 맡기는 힘든 시대

여론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이념 성향이다. 이념이 무엇인지를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의 늪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그건 한가한 학자들이나 할 일이다. 보통사람은 그리 깊이 따지지 않고 자신을 진보, 보수 또는 중도의 한 범주로 자리매김하여 정치적 태도를 드러낸다.
 
한국리서치가 2000년대 이후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진보, 중도, 보수의 비율은 대체로 30대 35대 30이다(나머지 5는 무응답 또는 모름).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의 중반인 2006년 12월의 조사 결과로는 31.3대 33.4대 29.8이었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의 중반인 2011년 12월의 조사로는 30.2대 36.7대 30.8이었다. 이런 팽팽한 균형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에 조금 흐트러졌다. 박 정권 후반인 2016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진보, 중도 및 보수의 점유율이 31.5대 37.8대 24.8로, 보수의 비율이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요즘은 어떠한가? 2019년 6월 조사로는 진보, 중도, 보수의 점유율이 29.9대 36.6대 24.7이니까, 보수의 점유율이 아직도 박 정권 후반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론전문가들은 보수의 점유율이 30%대를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사실 진보와 보수의 점유율의 바탕에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기반이 깔려있어서 선거국면이 다가오면 진보든 보수든 금방 30%대를 쉽게 회복할 수있다는 논리다.
 
진보, 중도, 보수의 30대 35대 30의 팽팽한 균형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제3지대인 중도의 견실성이다. 2000년대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진보나 보수는 때때로 의미있는 진폭을 보이지만 중도는 견조세를 유지해왔다. 중도는 늘 30%에서 40% 사이를 지켰다.
 
영남에서 보수의 점유율이 진보 점유율보다 훨씬 높고 호남에서 진보의 점유율이 보수 점유율보다 현격하게 높지만, 전국적으로 진보, 중도, 보수의 점유율이 30대 35대 30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중도층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이런 여론 지형은 나라가 쉽게 흔들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도의 견실성은 우리에게 세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급격한 변화나 방향 전환은 이제 결코 쉽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선거로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한,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쪽은 중도의 견고한 저항에 당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어느 세력이 중도의 존재감을 부정하거나 정체성을 건드리면, 바로 그 중도가 선거를 통해 응징에 가까운 심판을 내리는 것을 여러번 목격한 바 있다.
 
둘째, 숙의와 타협정치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정치판이 싸움판이 된지 오래여서 이런 전망은 잠꼬대같이 들릴지 모른다. 예전에는 여야 원내총무를 응당 능구렁이같은 인물이 맡았는데, 요즘 원내대표의 눈을 보면 하나같이 독사 눈이다. 새로 열린 시장인 유튜브판에나 가야할 사람들이 떼거리로 국회에 들어와 말꼬리 붙들고 악다구니를 쓴다. 타협이 사라지고 갈등과 소란이 일상화했다는 점에서 정치 기술은 이전에 비해 후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제3지대 중도의 견실성은 이런 상황을 오래두지 않을 것이다.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고 있다. 제3지대의 중도는 숙의를 거쳐 타협에 이르는 능력을 보이는 정치인에게 나라의 내일을 맡길 것이다.
 
셋째, 중도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로 대두할 개연성이 엄존한다는 사실이다. 중도정치에 대한 열망은 안철수가 등장했을 때 우리의 눈으로 확인했다. 안철수는 이제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새로움에 대한 열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도가 새로운 정당이나 큰 인물을 빠른 시일 안에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앞으로 닥칠 선거에서 권력의 향배를 판가름할 힘 정도는 갖추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여권이나 야권이 자기편 30%에만 천착하는 현실이다. 가까운 수도권의 중간지대 사람들이 감투를 들고 씌워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청와대나 여당은 물론 야당도 중간지대는 애써 외면한다. 맨손 휘두르며 떠드는 고정표만을 보고 정치를 한다. 여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 서서 야권에 정권을 넘겨주려고 안달이 났는데, 야권은 황교안 대표가 앞장을 서서 절대 받지 않겠다고 손사레를 치는 모습같다.
 
앞으로 어느 당이 정권을 맡을 것인가?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 태극기를 흔들어도, 아니면 달빛을 바라봐도, 얻을 것은 고작 30%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탄탄하고 견실한 중도가 주체성을 발휘하는 선진정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것은 온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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