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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투석 친구, 당구 모임 오더니 말수 늘고 생기 되찾아

기자
이인근 사진 이인근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13)

당구하고 친구 얘기를 하면 대학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결강이라도 생기면 모여 놀던 그때의 모습이 선명하다. [사진 pxhere]

당구하고 친구 얘기를 하면 대학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결강이라도 생기면 모여 놀던 그때의 모습이 선명하다. [사진 pxhere]

 

나와 친구 그리고 당구

당구와 친구 얘기를 하는데 우리의 가장 푸르디푸른 시절, 순수하고 찬란했던 대학 시절의 친구를 빼놓을 수 없다.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많은 책임이 유보됐던 시절, 다소간의 유치함과 치기도 용서될 수 있던 시절, 혹시 결강이라도 생기면 친구들과 대성로 은행나무 길을 장발을 흩날리며 한달음에 달려 당구 한 게임에 온 힘을 쏟았던 시절,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당시 가장 고수였던 S군은 당구가 잘 안 될 때마다 경상도 악센트로 “아, 왜 이라지” 하며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곤 해 그 주변에는 항상 푸른 쵸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N 군은 큐 예비 동작을 빠르게 여러 번 움직였던 타법을 지금도 사용한다.
 

구르는 공에 장풍 날리던 인쇄소집 아들

당구를 빨리 배웠던 P 군은 “뉘 집 아들인지 참 잘 치네” 하며 자신을 칭찬하던 인쇄소 집 아들로 친구들과의 우애가 좋았다. 한동안 당구를 치지 않아 실력이 줄었음에도 “옛날엔 다 나보다 하수였던 것들이 까불어” 하면서 한창때의 치수를 고수하고 있다. 그 위세에 눌려서인지 지금도 이 친구를 이기기가 쉽지 않다.
 
게임에 지고 나면 때로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때로는 큐대로 바닥을 치면서 “났어요” 하던 모습(당시에는 지금처럼 시간 표시 장치가 없어 게임 종료를 말로 알려주었다)이 눈에 선하다. 큐 볼이 목적구를 향하긴 하는데 힘이 없어 천천히 구르면, 공을 쫓아가면서 “힘, 힘” 을 애타게 외치거나, 공 뒤에서 장풍을 날리거나, 당구 테이블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사십년 전 처음 만났던 시절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사진 pixabay]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사십년 전 처음 만났던 시절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사진 pixabay]

 
나와 동향으로 옆집에 살던 K 군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데다 대학에서도 같은 과를 다니게 됐는데,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같이 당구를 치며 실력을 쌓던 친구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고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났지만 연락이 끊긴 지가 오래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연락을 못 한 나의 무심함과 게으름을 탓하며 긴 한숨을 쉬게 된다.
 
우리 친구들은 다행스럽게도 꽤나 오랫동안 당구 모임을 가졌다. 동기들 중에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고, 전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연락이 되더라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모임에 나오지 않는 친구도 많다. 사십년 전 처음 만났던 시절과 세파와 풍상에 깎여 나간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보인다. 아니, 사실 우리는 그 때와 별 차이 없는데 세상의 물질만능적, 결과중시적 가치가 우리의 모습을 굴절시켜 놓은 것이리라.
 
D군에 대한 기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의 별명이 ‘짠 백’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창한 군대송별식이었다. 그는 삼수를 했고, 대학 시험 이전에 군대 소집 영장을 받아 연기 신청을 할 수 없던 터라 한 학기만을 마치고 동기 중 처음으로 입대하게 됐다. 우리들은 대한민국 남성의 성인 되기 1차 통과의례를 먼저 맞게 된 그에게 심심한 위로와 연민을 전하며 여러 술집을 전전했다. 우리도 곧 다가올 차례에 대한 불안을 술에 섞어 마시며 젊은 날의 한 장을 혼미스럽게 장식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간 터라 친구들과의 연락이 오랫 동안 끊겼다. 그러다가 십 수년 전쯤 모두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즈음 정기 모임을 시작 했고, 다시 D 군을 만나게 됐다. D 군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건강이 나빠져 있었다. 술을 워낙 좋아한데 회사 일을 하면서 무리하게 몸을 쓴 탓에 여기저기 성치 않은 곳이 생겼다.
 
일주일에 세번 신장 투석을 받으며, 심장에는 스탠트를 하고, 걷는 것도 쉽지 않다. 몸이 성치 않다 보니 사회생활도 조금 빨리 덮게 됐고, 가족들에게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마음도 편치 않아 보인다.
 

"당구는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 아니다"

건강이 나빠져 신장 투석을 받는 친구가 당구 연습을 하기 시작하더니 말수도 늘고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 [사진 pxhere]

건강이 나빠져 신장 투석을 받는 친구가 당구 연습을 하기 시작하더니 말수도 늘고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 [사진 pxhere]

 
다행히도 D군은 아직도 당구를 즐기기에 당구를 치는 모임을 결성해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하다가, 격주로, 지금은 다시 매주 모임을 하고 있다. 처음엔 D군은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들러리였고, 친구들도 그저 그렇거니 하고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C가 그를 몹시 다그쳤다.
 
“당구를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치지 말라. 당구는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 아니다. 목표를 세워 봐라. 한 급 위인 J 타도를 목표로 하면서 쳐라. 그리고 무엇보다 당구 치며 건강도 챙겨봐라.”
 
그후 D군은 병원에서 투석을 받고 나서 집으로 들어 가기 전 동네 당구장에 들러 두어 시간 당구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투석을 받지 않은 날도 당구 연습을 했다. 아직 타도 J 는 이르지만,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으며, 예전과 달리 게임에서 지면 아쉬어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당구장에서 몇 시간쯤 서 있는 것은 예사다. 말수도 늘어난 것 같고, 목소리에 생기도 조금씩 느껴진다. 나는 C가 고맙고, D가 고맙고 다른 친구들이 고맙다. 그리고 당구가 고맙다.
 
사족. 본 칼럼을 연재 중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K 로부터 소식이 왔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쓴 글을 보고 연락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당구 얘기를 하다가 옛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당구가 고맙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깨알 당구팁
대부분의 당구장에서 동그란 모양의 쵸크를 사용하는데, 잘못된 방법이다. [사진 pixabay]

대부분의 당구장에서 동그란 모양의 쵸크를 사용하는데, 잘못된 방법이다. [사진 pixabay]



쵸크, 귀퉁이를 조금씩 묻혀주는 느낌으로

쵸크엔 중앙에 동그랗게 홈이 파져 있어 큐팁을 홈에 끼우고 ‘끼릭 끼릭’ 소리를 내면서 돌리게 된다. 당구장의 거의 모든 쵸크는 동그랗고 깊숙히 파여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잘못된 쵸크 사용 방법의 산물이다.
 
쵸크의 올바른 사용법은 중앙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귀퉁이 부분을 조금씩 돌려 가며 바르는 것이다. 또한 쵸크를 바를 때는 힘차게 문지르지 말고 조금씩 묻혀 주는 느낌으로 발라주어야 한다. 이는 바늘 모양으로 생긴 쵸크 입자를 큐팁에 묻혀 정전기를 발생시켜 세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쵸크의 올바른 사용법으로 당신의 화려한 당구기술이 큐 미스 없이 발휘 될 수 있다.
 
당구에서 ‘잉글리쉬(English)’가 회전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바로 영국인 존 카가 쵸크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미스 큐를 내지 않고 얼마든지 회전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초창기에는 ‘매직 파우더’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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