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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생긴 하루 11시간, 공원 가고 전철 타며 허송할건가

기자
박영재 사진 박영재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53)

 
오주섭(70)씨는 7년 전 부인과 이혼하고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중견기업에서 관리이사로 일하다가 57세에 퇴직했다. 처음 경리업무부터 시작해서 총무·인사를 총괄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업무 특성상 세세한 것까지 챙겨야 하는 오씨의 꼼꼼한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
 
문제는 퇴직 후 집에 있으면서 이런 성격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아내가 주방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답답하고 대충 대충하는 거 같았고, 결국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잔소리만 늘어나게 되었다. 부인도 처음에는 수긍했지만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되었고,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부부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결국은 60대 초반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황혼이혼을 하게 돼 혼자 원룸으로 이사했다.
 

주머니 가벼운 은퇴자의 해방구 종3

오씨는 일주일에 3~4일은 공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로 나선다. 근처의 종묘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중앙포토]

오씨는 일주일에 3~4일은 공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로 나선다. 근처의 종묘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중앙포토]

 
오씨는 일주일에 3~4일은 배낭을 메고 종로 3가로 출근한다. 우두커니 집에서 TV나 보는 것도 답답해 공짜 지하철을 타고 종묘공원으로 나온다. 과거에는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에 많은 어르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재로 정비돼 즐길만한 공간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선 만날 사람이 많다.
 
그는 공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바둑도 둔다.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종묘공원을 나와 마음에 드는 말동무와 인근 음식점에서 대포 한잔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에는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우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이 많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고 또래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 이곳을 찾는 듯 하다.
 
종묘공원 부근에는 어르신을 상대하는 값싼 음식점이 즐비하다. 아직도 2500원짜리 국밥을 파는 곳이 있고, 5000원이면 머리 염색이 가능하다. 1만원이면 하루를 즐기고 저녁에 소주한 잔 할 수 있는 곳이 종로 3가이다.
 
오씨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온양까지 여행을 한다. 아침 느긋하게 먹고 친구들과 종로3가에서 만나 지하철을 타고 온양까지 가 두세 시간 온천욕을 하고, 천안역 근처 목천에서 순댓국 한 그릇에 반주 한잔하고 지하철로 돌아오면 하루가 간다. 경원선과 경춘선 전철이 완성되면서 상봉역에서의 모임도 잦아졌다.
 
사실 온양까지는 거의 2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데 도중에 볼거리도 별로 없어 지루했다. 수도권 구간을 통과하니 바쁘게 움직이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괜한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양평이나 춘천으로 가는 전철은 1시간 안팎이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강을 끼고 가기 때문에 곳곳이 유원지이고 경치도 아름답다. 게다가 상봉역에서 두 노선이 시작되기 때문에 온양에 가는 전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또 바다가 보고 싶으면 4호선으로 오이도로 가면 되고, 5월이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고양 꽃박람회를 방문한다. 요즘은 2호선을 타고 삼성역에서 내려 도서관을 가는 것도 큰 재미다.
 
 오씨는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하철이 참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세월을 생각하면 편치 않다. [중앙포토]

오씨는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하철이 참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세월을 생각하면 편치 않다. [중앙포토]

 
오씨는 지하철이 참 고맙다고 생각되지만,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편치가 않다.
 
많은 반퇴세대가 퇴직 후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허비하는 경향이 있다. 평생 일만 하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없어지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퇴직 후 시간이 흐르면 은퇴를 한다. 은퇴자에게 나타나는 큰 변화는 수입은 확 줄어들고 시간은 남아도는 것이다. 그러나 줄어드는 수입에 대한 준비는 하지만 남아도는 시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은퇴자의 하루를 살펴보니 24시간 중 13시간은 필수적으로 써야하는 시간이다. 잠자고, 식사하고, 운동하고, 친구들과 만나는데 사용하는데 그러면 11시간이라는 여유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결정된다.
 

11시간 여유시간 활용 3등분법

 
주어진 11시간을 3등분해 사용하자. 3분의 1은 여가활동에 사용하자. 은퇴한 당신은 젊은 시절 30~40년의 시간을 아주 열심히 일한 사람이다. 새마을 운동 노래를 들어가면서 조국 근대화다, 조국 재건이다는 구호 아래 새벽에 출근하고 달을 보며 퇴근했다. 독재세력과 싸워 민주화를 이루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부심을 갖자. 열심히 일한 당신 놀아라!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찾아 즐겨보자.
 
3분의 1은 재능 기부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자. 봉사활동에 시간을 보내자. 집 근처 주민센터를 방문해 사회복지사에게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적극 참여해 보자. 미국에서는 ‘앙코르커리어(Encore Career)’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상적인 은퇴생활은 날씨 좋은 곳에서 골프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기도 매일 먹으면 물리듯이 매일 골프만 치면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내가 젊었을 때 하던 일을 NPO단체나 사회적기업처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에서 급여는 작지만 오랫동안 일하는 것’을 이상적인 은퇴생활로 보고 있고, 현재 50~70대의 9% 정도가 이러한 일에 종사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확장된 봉사의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기업, 지자체 등에서 관련 사업을 만들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일은 젊을 때처럼 돈만 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의 포트폴리오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면 즐거운 것으로 확장시키자.
 
이렇게 은퇴자에게 주어지는 하루를 여가활동과 봉사, 일에 적절하게 배분해 지내게 되면 의미있는 하루가 되며, 이러한 날들을 일주일, 열흘, 보름, 한달, 일년, 십년, 이십년 보낼 수 있다면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길 수 있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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