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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재앙 덮쳤던 체르노빌…SNS 성지로 떠오른 까닭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재연한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왼쪽)과 2019년 체르노빌에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HBO 화면, EPA=연합뉴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재연한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왼쪽)과 2019년 체르노빌에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HBO 화면, EPA=연합뉴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구소련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원자로 가동 중단 대비 실험 중 벌어진 사고였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화려한 불꽃놀이 감상하듯 지켜봤다. 연이은 폭발로 원자로 콘크리트 천장까지 금이 갔다.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퍼졌고, 주민들의 온몸에 방사성 물질이 내려앉았다. 정부는 사고 이틀이 지난 후에야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그사이 피폭자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살아있거나 죽어갔다.
 

33년만에 활기 띤 죽음의 땅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을 돌아본 관광객들이 기념품 가게에서 간식을 사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을 돌아본 관광객들이 기념품 가게에서 간식을 사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Chernobyl) 원전사고 이야기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시 북쪽에 있는 도시 체르노빌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기억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한 희생자 수는 최소 9000명 최대 11만5000명 혹은 그 이상까지 추산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영구 폐쇄됐고, 주민 9만 명은 강제 이주했다.
 
'유령 도시' 체르노빌에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6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체르노빌 투어' 예약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017년 5만 명, 지난해 약 7만 명 수준이었던 관광객 수가 올해는 1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인스타그램에도 체르노빌을 관광한 여행객들의 인증샷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Chernobyl 등의 해시태그 달아 폐허가 된 놀이공원과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체르노빌 투어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은 여행사가 진행하며,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관광객은 하루나 이틀 일정으로 가이드와 함께 폐쇄된 원자료 주변을 비롯해 체르노빌 근무자 가족들이 살던 인근 프리피야티(Pripyat) 마을을 돌아본다. 폐허가 된 건물을 둘러보며 체르노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체르노빌에 단 한 곳뿐인 식당에서 식사도 한다. 가격은 1인당 100달러(약 12만원) 선이다.
 

폐허로 관광객 끌어모은 미드 '체르노빌' 

체르노빌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로 관광객을 끌어모은 건 지난 5월 미국 유료방송 채널인 HBO가 방송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이다. 미국 방영 당시 TV 시청률 35%, 디지털 시청률 52%를 기록하며 '왕좌의 게임'(46%)를 제치고 HBO 드라마 디지털 신청률 신기록을 세운 대흥행작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14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를 통해 공개됐다.
 
드라마엔 사고의 전말과 사고를 은폐하려는 당국과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의 분투, 사고를 수습하는 이들의 희생이 리얼하게 담겼다. 이 때문에 드라마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불러온 비극을 완벽하게 재연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방사성 물질 노출의 위험성을 알린 과학자의 독백 "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전 세계 관객의 발길을 체르노빌로 이끌었다. 여기에 재난·재해 등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인기가 더해졌다. 체르노빌은 원전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육 현장으로 떠올랐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안전이 제일 큰 문제다. 관광객들은 긴팔에 긴 바지를 입고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신발을 신는다. 마스크 착용도 권장된다. 투어 전엔 어떤 불상사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방사선 피폭 검사를 받는 것으로 투어를 마친다. 아직 완전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체르노빌 투어를 홍보하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안전을 자신하지만 환경 보호 단체들은 체르노빌 일대가 여전히 방사능 유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한다.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가 변질했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 관광객은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들어가 외설적 사진을 찍거나 갖가지 장비를 동원해 우스꽝스럽게 찍는 설정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비난을 받았다. 결국 드라마 '체르노빌' 각본가 크레이그 마진이 "체르노빌을 방문할 때 고통을 받고 희생당한 모든 이들에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체르노빌을 관광지로” vs “아직 안전하지 않다”

체르노빌 사고 원자로 콘크리트 방호벽 위에 추가로 설치된 철제 방호 덮개. [위키피디아=연합뉴스]

체르노빌 사고 원자로 콘크리트 방호벽 위에 추가로 설치된 철제 방호 덮개. [위키피디아=연합뉴스]

논란은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기회를 십분 활용하려는 태세다. 체르노빌의 교육적·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이다. 체르노빌을 향한 전 세계적 관심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관광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을 관광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 지역 '소개 구역'을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젤레스키 대통령은 "앞으로 일반인들이 소개 지역 출입 허가 신청이 거부됐다는 통보를 받거나 검문소 앞에서 긴 줄을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 지역을 학술 및 관광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또 소개 구역 내 촬영 금지를 비롯한 다른 제한 조치들도 해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0년부터 유럽연합(EU)과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아 기존 콘크리트 방호벽 위에 추가 철제 방호덮개를 설치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대통령이 체르노빌 관광산업 계획을 밝힌 날, 철제 방호 덮개는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선 "안전 조치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인 관광객을 확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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