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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무명 한 풀고 우뚝…“야구하며 어려움 극복 멘탈 다져”

[아티스트라운지] 프로야구 선수 출신 뮤지컬 배우 민우혁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가창력을 겸비한 민우혁은 남자 배우가 부족한 뮤지컬계에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전민규 기자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가창력을 겸비한 민우혁은 남자 배우가 부족한 뮤지컬계에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전민규 기자

선굵은 이목구비에 태평양 같은 어깨, 타고난 고음과 안정된 가창력. 딱 ‘본투비 뮤지컬 배우’다. 뮤지컬 ‘벤허’(10월 13일까지 블루스퀘어)에서 고전 영화 속 찰스 해스턴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는 민우혁(36) 얘기다.
 

프로야구 입단하자마자 부상 은퇴
드라마 OST로 대박 나도 빈 주머니
“28시간 동안 잠 안 자고 일한 적도”

예능 ‘불후의 명곡’ 출연 후 인기 상승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꿈 이뤄 행복”

알고보니 멀리 돌아 왔다. 10년 동안 야구를 했고, 10년 동안 무명가수였다. 서른 살에 뮤지컬 무대에 서기까지 안 해 본 ‘알바’가 없었다.
 
하지만 2015년 최고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무대를 밟은 후론 승승장구다. ‘아이다’ ‘안나 카레니나’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 하이드’ 등 굵직한 작품에서 줄줄이 주연을 꿰찼다.
 
2년 전 ‘벤허’ 초연도 함께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악역 메셀라에서 주연 벤허로 신분이 승격된 것이다. “메셀라는 야망 가득한 캐릭터라 저는 좀 많이 거칠게, 상남자 마초로 표현했었거든요. 그때의 임팩트가 강했다며, 벤허를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하는 분도 있었어요. 메셀라도 매력적이라 열심히 했었는데, 왕용범 연출님이 ‘프랑켄슈타인’ 때 저를 재발견해 주셨죠. ‘나중에 벤허 해도 어울리겠다’고 하시길래 그때는 상상 못했는데, 정말로 제안 주시더라고요.”
 
한국시리즈 애국가 독창으로 금의환향
 
지난해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 6차전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중앙포토]

지난해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 6차전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중앙포토]

벤허는 단순히 멋진 영웅 캐릭터는 아니다.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고, 복수를 하면서도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당연히 캐릭터 해석도 쉽지 않았다. “일단 초연 보신 분들께 메셀라의 모습으로 비쳐질까봐, 그들의 상상을 완전히 뒤집고 싶었어요. 근데 벤허가 쉽지 않은 인물이더군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고 나서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 모든 과정 중에 감정이 계속 변하니까요. 장면이 바뀔 때마다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하죠. 근데 저는 ‘벤허’가 한국 뮤지컬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어렵지만 이 역할을 남자배우들의 워너비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벤허’ 하면 전차 경주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수십 마리 말과 엑스트라 5만 명을 동원해 5주 동안 촬영했다는 고전 영화의 스펙터클을 무대에서도 창의적으로 살려내 호평받고 있다. “초연 때 연출님이 배우들에게도 비밀로 감추고 계셨어요. 대본에는 영화장면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이게 된다고?’ 의심했었죠. 리허설 때 처음 빨간 막이 탁 떨어지면서 말들이 등장할 때 정말 소름끼쳤어요. 그 장면을 위해 연출님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쇼를 봤다고 하시더군요. 제겐 이 장면도 초연 때와 전혀 다르게 와닿아요. 메셀라는 열등감에 차서 오로지 벤허를 이기려는 마음 하나를 보여줘야 하고, 벤허는 그런 메셀라를 이해 못 하면서 그에게 복수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메셀라를 해봐서 그런지 벤허로서 메셀라를 보는 게 아프더군요.”
 
뮤지컬 ‘벤허’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사진 뉴컨텐츠컴퍼니]

뮤지컬 ‘벤허’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사진 뉴컨텐츠컴퍼니]

야구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창시절을 온통 야구에 바쳤다. 야구 명문 군산상고를 거쳐 LG 트윈스에 입단한 투수 출신이지만, 6개월 만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야구를 했던 게 뮤지컬을 하기 위한 발판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다보면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그걸 이겨내고 이겨내고 또 이겨내는 연속이거든요. 배우생활도 만만치 않아요. 딱 ‘빛 좋은 개살구’죠. 무대에서 빛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잘되면 잘될수록, 좋은 역할을 할수록 중압감이 심해지는데,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멘탈이 운동하면서 다져졌달까요. 제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 애국가를 불렀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선수시절 꿈이었던 한국시리즈 홈경기를 뮤지컬 배우로서 밟게 된 것이다. “경기장에 친한 선후배들이 많았거든요. 덕아웃에서 제가 걸어나오는 걸 보시고 다들 반겨주시더라구요. 제가 방송도 많이 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연락하신 분들이 훨씬 많았어요. 휴대폰에 불이 났죠. 제가 야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애국가가 더 뭉클했다고, 성공했다며 축하해주시더라구요. 재작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갔을 때도 기분이 묘했어요. 친구들한테 ‘너네 야구하면서도 못 가본 데를 내가 갔다’고 자랑도 했죠.(웃음)”
 
가수가 된 건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야구를 포기한 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다가 캐스팅이 됐고, 바로 다음날 녹음, 그리고 딱 5일 만에 노래가 나왔다. “원래 노래를 좋아했고, 야구 하면서 가수가 되는 게 꿈이긴 했어요. 그때는 이종범 선수 같은 분들이 자기 앨범을 냈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야구하면서 앨범내는 게 꿈이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돼버린 거죠.”
 
그때 부른 데뷔곡이 김희선 주연의 인기 드라마 ‘요조숙녀’(2003) OST였다. 첫 방송으로 SBS 인기가요에 나갔고, 음원 사이트 1위까지 했다. 금방 뜰 것 같았지만 운이 없었다. 중국 진출을 타진하다 소속사와 틀어진 후 10년 동안 무명가수로 살아야 했다. “평생 운동만 했잖아요. 무식해서 돈 관계를 전혀 몰랐어요. 드라마가 중국에 팔려서 난리였는데 제겐 10원도 안 들어왔죠. 이후 10년 동안 가수로 번 돈은 0원이에요. 대신 안 해본 알바가 없어요. 새벽 5시 반에 인력소에 나가면 어디로 보내질지 모르잖아요. 바닷가에 가서 방파제도 만들고, 코엑스 같은 박람회장에서 부스도 만들고. 28시간 동안 잠 안 자고 일한 적도 있어요. 밤이나 새벽에는 수당이 계속 올라가니까요.(웃음)”
 
벼랑 끝에서 뮤지컬을 만났다. 뮤지컬을 하던 친구의 연기 수업에 우연히 따라갔다가 강력한 권유를 받고 뮤지컬 ‘젊음의 행진’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뮤지컬을 본 적도 없었어요. 그 친구가 성악 전공자라서 뮤지컬이 오페라 같은 건 줄 알았거든요. ‘젊음의 행진’은 쥬크박스 뮤지컬이고 익숙한 가요들이라 도전할 수 있었는데,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구나 싶더군요. 가수 준비하면서 늘 혼자였는데, 모여서 함께 연습하니까 따뜻하더라구요. 배우들끼리 으쌰으쌰하니까 단체생활하던 옛날 생각도 나구요.”
 
뮤지컬 판에서도 생활고는 계속됐다. 대극장 도전은 언감생심, 소극장만 쳐다보다 3작품 연속으로 출연료를 못 받기도 했다. 도약의 기회는 소극장을 벗어나자 찾아왔다. “이제 그만하자 결심하고 쉬고 있었어요. 근데 ‘데스노트’ 오디션이 떴더군요. 대극장 작품이라 꿈도 못 꿨는데, 이상하게 자꾸 맴돌길래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갔어요. 제가 아는 배우는 거기 다 있더군요. 결국 최종에서 떨어졌는데, 김문정 음악감독님이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왜 안 봤냐고, 늦었지만 보러 오라고 초대해주셨어요.”
 
‘레미제라블’때 발목 부상 지금도 후유증
 
결국 ‘레미제라블’을 통해 ‘대극장 배우’로 재발견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학생혁명군 ‘앙졸라’는 강렬한 고음과 훤칠한 체격의 그에게 꼭 맞는 옷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겐 고통스런 통과의례였다.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적응하느라 혼이 났고,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추락해 발목 인대가 다 찢어졌다. 그럼에도 열정은 더 불붙었다. “전치 3개월이 나왔는데 1주일 만에 깁스를 풀어버렸어요. 그냥 압박붕대 감고 올라갔어요.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발목이 계속 꺾이죠. 고생했지만 제 뮤지컬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이잖아요. 포기할 수 없었죠.”
 
무명가수 10년의 한도 풀었다. 2017년 KBS ‘불후의 명곡’에 고정출연하며 김경호, 홍경민, 이세준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을 제치고 우승도 했다. 왕중왕 전에서 뮤지컬 스타일의 연출로 감동을 줬던 조용필의 ‘꿈’은 민우혁 자신의 이야기였다.  
 
“‘불후’에 나갈 때마다 곡을 보고 제게 인상 깊었던 작품의 인물을 소환해 연출했었는데, 왕중왕전은 자유곡이었거든요. 누구를 소환할까 고민하다가 제 꿈을 소환한 거예요. 한 번도 제 얘기를 해본 적 없었거든요. ‘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 중에 조용필 선생님의 ‘꿈’이 딱 제 이야기더라구요. ‘지킬’이나 ‘벤허’ 같은 거창한 걸 꿈꾼 적은 없어요. 그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었죠.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지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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