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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국제협약 어기고 전투기 생산에 조선인 아동 강제동원”

‘강제동원조사위’서 11년간 활동 정혜경 박사

14세 미만 아동들도 강제동원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 비행장, 군수공장 등에서 일을 했다. 일제 침략의 상징인 ‘제로센’ 제조 공장에 동원된 학도근로대의 조선인 소녀들 모습. 비행기 부품을 깎고 조립하는 일을 했다. [사진 정혜경]

14세 미만 아동들도 강제동원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 비행장, 군수공장 등에서 일을 했다. 일제 침략의 상징인 ‘제로센’ 제조 공장에 동원된 학도근로대의 조선인 소녀들 모습. 비행기 부품을 깎고 조립하는 일을 했다. [사진 정혜경]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둘러싸고 일본의 경제보복 등으로 한·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강제동원 연구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혜경 박사(일제 강제동원&평화연구회)가 최근 출간한 책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에서 아동의 강제동원 실태를 고발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일제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해 정부기관으로 발족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조사위)에서 2015년 말까지 조사과장을 지냈다. 11년 동안 정 박사는 3000여 명의 생존 피해자들을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강제동원과 관련된 국내외 각종 문서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관심 밖에 놓여 있었던 아동들의 실태에 주목했다. 이들은 방적·군수·건설 등 국내외 여러 공장과 현장에 동원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다. 정 박사는 “강제 동원된 아동 사례 중 일부만 찾아낸 것”이라며 “전체 규모가 전부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20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실증 연구 자료가 있는데도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 식 태도도 가장 큰 문제이지만 철저한 피해 진상 규명을 계속 이어 가지 못하고 소홀히 한 한국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ILO 협약, 18세 미만 강제근로 금지
일, 전시 총동원령 내세워 불법 자행

‘돈벌며 학교 다닌다’ 꼬드겨 데려가
5~6세 아이들도 하루 10시간 노역

국가기록원서 자료 공개하고 검증
진상규명 제대로 해 대일 협상해야

강제동원 피해자 180만, 30%는 북한 출신
 
정혜경 박사는 11년 동안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조사위에서 조사과장을 하며 피해자 3000여 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정 박사는 조사가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정혜경 박사는 11년 동안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조사위에서 조사과장을 하며 피해자 3000여 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정 박사는 조사가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일제가 어린이들까지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위원회에서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현지에서 피해자 연령별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일본 학자들도 깜짝 놀라더라. 당시 일본 본토의 공장법에 따라 14세 미만의 어린이는 동원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인 아이들이 강제 동원됐다. 개인적으로 파악한 사례만 500여 명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아동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이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하던데.
“일본은 이미 1932년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협약(강제 근로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다. 18세 미만은 강제근로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전시 총동원령을 내세워 자신들이 비준한 국제협약을 무시하고 위반했다. 아동 강제동원이야말로 일제의 불법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아이들이 주로 어디서 일했나.
“만주나 남양군도로 간 아이 중에는 5~6세밖에 안 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갔는데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동원돼 비행장 활주로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한 경우가 있더라. 또 미 국립의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남양군도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어른과 똑같이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한 사례들도 있었다. 일제 침략의 상징인 제로센 비행기 부품을 깎고 조립하는 군수 공장에도 많은 아이가 동원됐다. 해외뿐 아니라 한반도 내 각지의 탄광과 토건, 방적 공장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일했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최근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주장도 나온다.
“1938년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었다. 일본 본토뿐 아니라 점령지와 식민지 등에서 사람과 물품 그리고 자금 등 세 가지를 총동원할 수 있는 법이다. 어기면 처벌 조항이 있는 ‘전시 수권법’이었다. 1938년 이전에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과 전시 체제에서 강제 동원된 이들의 사례를 구별하지 않는 데서 큰 오류가 생겼다.”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얘긴가.
“가령 ‘좋은 조건으로 돈을 벌러 일본에 갈 길이 생겼다.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식으로 회유하고 속여서 데려간 경우가 많았다. 억지로 끌고 가면 저항이 크고 협조가 안 됐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썼다. 꼬드겨서 데려가면 강제성이 없는 것인가. 속은 사람 잘못인가, 속여서 데려간 당시 시스템이 잘못된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자살공격)에 이용된 일본 의 전투기 제로센. [중앙포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자살공격)에 이용된 일본 의 전투기 제로센. [중앙포토]

일본인도 조선인과 비슷한 위치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일한 사례를 내세워 차별이나 인권 유린을 부인하는 주장도 있다.
“탄광 갱내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일한 기록이 있다고 동등하게 보는 것은 잘못됐다. 일본인은 광맥을 찾거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지시를 하는 등 조선인과는 세부 직종이 달랐다. 흙이나 돌을 파내는 등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힘든 직종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하지만 규정보다 조선인에게는 적은 돈을 지급하는 등 차별했다. 관련된 실증적 연구가 이미 일본 내에서 1990년대에 논문으로도 나온 바 있다.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조선인은 같은 일본인이라고 했지만, 출신지에 따른 호적법으로 조선인에게는 차별이 가해졌고 동등한 권리도 주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다수 만나 직접 증언을 들었다고 하던데.
“강제동원조사위원회 활동을 전후로 내가 만난 피해자는 3000여 명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자신이 홋카이도에서 일했는지 남양군도에서 노역했는지 구분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당한 일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는 이들이었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이들이 많더라.”
 
위원회 활동 당시 접수된 강제동원 피해 사례는 얼마나 됐나.
“피해신고만 21만 건이었다. 과거 노태우 정부 때 일본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강제동원 명부에 기재된 48만 명(마이크로필름) 등 이전 정부 때 수집된 자료까지 해서 2015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될 무렵 정리한 피해자가 180만 명(일부 중복 피해자 포함) 정도였다.”
 
강제동원 현장은 얼마나 많았나.
“해외를 빼고도 남북 합쳐서 8000곳이 넘는다. 가령 부평에는 대표적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사택이 있고 한반도 최대규모의 병기창인 조병창도 남아 있다.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의 인권유린이 자행된 곳이다. 지자체별로 이런 현장을 조사·보존하는 하면서 유네스코 등재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일본은 자국 내 이런 현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이미 다 했다고 한다. 우리는 피해자인데도 강제동원 현장에 대한 연구나 조사, 보존 등 노력이 별로 없다.”
  
한반도 내 인권유린 현장도 8000곳 넘어
 
당시 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은 현재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국가기록원, 부산 강제동원 역사관, 행자부 산하 과거사 업무지원단 등으로 자료가 다 흩어졌다. 우리가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웹 컨텐트도 만들었는데 현재는 활용하지 않고 있다. 11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듯한 느낌이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게 돼 안타깝다.”
 
웹 컨텐트는 어떤 내용인가.
“가령 강제동원 됐다 사망한 이들의 유골이 어디 어디에 묻혀 있는지 일반인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단체 사진의 경우 얼굴 하나하나를 다 확대해 가족이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민간에서 이런 콘텐트를 다양한 방면에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강제동원 문제는 남북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80만 명 피해자 중 30%는 북한지역 출신으로 확인됐다. 이런 정보를 북측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 국내에 보관 중인 강제동원 희생자 북한 출신 유골 23위 봉환도 추진해야 한다. 북한 지역에 3400여 개소의 동원 현장에 대한 추도 순례 등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많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로 한·일 갈등이 깊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국가기록원 등에 있는 관련 자료를 공개해 학계 등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징용자 명부를 검증하는 작업이 중단됐으나 재개해야 한다. 일본 기업과 정부가 만든 이러한 명부는 강제동원의 피해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자료다. 피해자들이 직접 남긴 기록물이나 그림 등 생생한 자료를 통해 우리 스스로 ‘피해자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본과 협상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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