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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신') 올여름, 그나마 '변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 4.
(오동진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사자>에서 <봉오동 전투> 그리고 <암전>과 <광대들: 풍문조작단>에 이르기까지 올 여름 들어 내리 기형적인 작품들만 보다 보니 심신이 지쳤다. 영화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 곧 위무감(慰撫感)을 전혀 주지 못한다. 세상사의 짜증을 잊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인데 오히려 기름을 붓는다. <광대들>은 <변호인>을 만든 제작자와 <백야행> <수상한 그녀>를 만든 프로듀서가 선택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심히 위태로운 영화였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지금의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것이었을까. 그러기에는 풍문조작단인 광대들을 너무 선한 쪽, 정의로운 쪽으로만 그린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사실은 드루킹이 좋은 인간이었다는 얘긴데 그러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중간에 제대로 전복됐어야 옳았다. 극중 인물들이 편을 바꾸는데 있어 뭔가 큰 계기를 줬어야 맞다. 근데 그런 게 없다. 이건 시나리오 때부터 감독을 몰아 세웠어야 하는 작품이다. 요즘 영화를 너무 안이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해 보인다. 실망의 연속. 
그래서일까. 범작임에도 주목하게 되는 작품이 <변신>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서 점수를 준다면 끽해야 75점 정도? 아주 대단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은 걸 보면 올 여름 극장가의 수준이 낮아져도 한참 낮아진 모양이다.  
 
영화 '변신'

영화 '변신'

처음에는 별게 아닌 듯 싶던 영화 <변신>은 아버지(성동일)가 둘째 딸을 음심 가득한 눈으로 훑으며 시선 강간을 하려 할 때부터 확 달라진다. 이 아버지는 나중에 큰 딸과 둘째 딸을 쫓아 다니며 망치로 죽이려 한다. 이쯤 되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믿어야 하는, 믿을 수 있는 아버지가 ‘미치광이=악마’로 변한다는 설정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악마가 아빠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둘째 딸과 첫째 딸, 막내 아들로 옮겨 다니며 차례 차례 그들을 전이(轉移)시키고 그럼으로써 가정과 가족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점층된다. 아무도 이 악마를 막지 못한다. 외부로 드러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우리 안에 들어 오기 때문인데, 그건 스스로들이 불러 들인 측면이 있다. 주변의 모두들 악마스러운 구석이 있다. 악마가 아니면서 때론 악마들이어서 존재 증명이 어렵고, 그래서 없애기가 힘들고, 끝내 퇴치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얘기를 담고 있다. 사실은 심오한 심리학인데 그런 척을 별로 안 한다. 그만한 재주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 대중성이 좋았다. 영화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할수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법이다.
 
<변신>에서 가장 그럴 듯한 장면은 삼촌인 신부(배성우)가 큰 딸을 침대에 묶어 놓고 퇴마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다. 신부는 형인 아버지에게 딸을 꽉 잡고 있으라고 한 뒤 물먹인 회초리로 아이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아이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는 악마가 아니라고 하지만 삼촌인 신부는 아랑곳이 없다. 그런데 그때 잠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마가 이미 신부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모두가 다 악마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두 다리를 누르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스쳐 지나간다. 악마는 과연 누구인 것인가. 아이인가, 동생인 신부인가. 
영화 '변신'

영화 '변신'

 
<변신>에서 악마가 가족 사이를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듯이 이 영화 역시 <샤이닝>에서 <도플갱어>와 <엑소시스트>까지 다양하게 옮겨 다니며 보는 사람들을 홀리려고 한다. 영화 자체가 도플 갱어스럽다. 이전의 호러물들, 오컬트 작품들을 충실하게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변신>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성격이 다른 요소들을 잘 섞어 괜찮은 혼합물을 만들어 낸 셈인데, 아마도 그런 점들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제법이라는 평가를 끌어냈을 것이고.  
 
내 안의 악마는 여러가지 의미로의 변신이 가능하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안의 특권의식이나 계급의식을 애기할 수도 있다. 현재 무수하게 퍼져있는 사회악 전체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손쉽게 그런 주제의식을 깨닫게 만든다는 점에서 <변신>은 대중영화가 지녀야 할 가치 지향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는 점수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옥의 티가 적지 않다. 퇴마 의식을 위해 무리하게 가톨릭 교단을 연결시키는 점이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부의 멘토 격으로 나오는 백윤식 캐릭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입에 붙지 않는 로마어 주문 또한 그러하다. 불필요한 등장인물로 인해 극 전반을 누르는 괴기스러움의 효과가 오히려 반감이 된다. 우스워진다. 백윤식 분량을 과감하게 없애고 갔거나 나중에라도 지워냈어야 했다.
 
영화 '변신'

영화 '변신'

무엇보다 공포의 수위가 좀 더 강렬했어야 옳았다. 더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들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걸 싶다. 폭력의 강도도 좀 더 높았으면 현실적 느낌이 배가됐을 것이다. 엄마는 아침 밥상에서 상을 뒤엎고 음식을 어적어적 씹으며 먹어 댄다. 눈이 완전히 돌아 있는 상태에서 엄마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내가 엄마로 보이니? 
이런 말처럼 무서운 얘기는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신>은 하나도 오싹하지가 않다. 두 번만이라도 보는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 영화 <변신>은 가장 무서울 법한 얘기를,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가장 무섭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불만은 바로 그 지점에서 포착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가위에 눌리지 않는다는 것, 지금의 우리사회가 지닌 엄청난 공포 의식을 다소 지나치게 부드럽게 표현했다는 것, 그래서 리얼리티가 극대화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독하게 무서운 공포영화가 보고 싶다. 지금은 그런 시기다. 가상의 공포가 세상의 공포를 없애는 법이다. 믿거나 말거나.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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