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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당시 조선인-일본인 동일 임금" 주장 따져보니

[스가 요시히데/일본 관방장관 (화면출처 : 일본 총리실) : 구 한반도 출신노동자 문제로 우리나라로서는 대법원 판결로 한국 측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법 위반상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고자 한다.]



[김현종/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 역사를 바꿔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입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앵커]



보신 것처럼 일본 정부는 오늘(28일)도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그들만의 표현으로, 강제동원 역사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기자]



그런데 이런 비슷한 주장을 국내 일부 학자들도 하고 있어서 논란입니다.



어제 이 시간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이우연이라는 경제학자의 주장을 따져봤는데요.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은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 "강제동원은 당시 조선인들의 로망이었다" 이런 주장을 따져보겠습니다.



[앵커]



이가혁 기자,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까?



[기자]



이씨의 이런 주장은요, 2016년에 논문으로 나온 것입니다.



주장의 근거는 이것입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조선인-일본인 임금 격차가 없도록 하라"고 명령한 문건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일부 기록에서 간혹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더 많이, 또는 별차이 없게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씨의 주장은 '이거 봐라. 당시 일본 정부가 이렇게 명령을 했고, 실제 그런 사레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맞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이제 이것이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죠?



[기자]



일단 일부 사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씨는 이 사례를 "조선인이라서 임금 차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이 숙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돈을 적게 받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작업 환경을 보면요, 조선인은 직접 돌을 깨고 탄을 캐는 힘든 작업을 주로 했고, 반면 일본인은 기술직 같은 상대적으로 편한 일을 했습니다.



동원된 조선인은 숙련직으로 올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인에게 불리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 일부 일본인보다 많이 버는 조선인은 강제동원 조선인이 아니라 원래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조선인이었다는 기존 해석도 무시됐습니다.



실제로 이씨는 2016년 논문에서 "자료가 부족해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계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영종/국가기록원 연구관 : 사실은 강제동원 부분은 이제 상당한 자료들이 많이 조선총독부 자료 같은 경우에 특히 많이 폐기가 됐다고 하는데 문헌사료로써 나타나지 않는 속내용들이 있거든요. 특히 강제동원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자였던 당시 동원됐던 분들의 증언이 필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은 전혀 증언자료를 활용을 안 해요.]



[앵커]



그런데 당시 강제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이 현지에서 이것 저것 많이 떼이기도 했잖아요?



[기자]



적게 받기도 했는데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최대 10∼15원의 금액만을 지급했다.'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한액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또 1943년 아카사카 탄광에 동원된 한 조선인이 노무관리자에게 내 통장, 내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를 보여달라고 주장했다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쓰러진채 몽둥이로 맞았다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또 일본인들보다 이것저것 떼이는 것도 많았습니다.



잠시 전문가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정혜경/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연구위원 : 숙소 사용료, 식비, 탄광의 경우 곡괭이를 사용하잖아요. 곡괭이 이용료. 랜턴을 메고 들어가는데 그 랜턴의 건전지 사용료. 이런 식으로 각종 장비 사용료가 있어요. 그게 상당수가 되는 거죠. (일본인과) 실수령액에서는 차이가 많이 나고요.]



그러니까 학계에서는 이런 이씨의 주장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자의적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피해자들은 이렇게 '고향으로 송금도 제대로 안해줬다', '용돈도 거의 없었고, 그것을 쓸 자유도 없었다' 아렇게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앵커]



'자유롭고 수월한 삶을 살았다' 심지어 '로망이었다'는 주장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죠?



[기자]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당시 일본정부는 강제모집의 강도를 세게 했습니다.



일본은 1939년부터 계획된 숫자만큼 모집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일본 도착후 도망가는 조선인도 늘었습니다.



당시 일본 수사기관 자료를 보면, 동원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도 급증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로망'이라고 볼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이씨의 이런 주장은 한·일 양국 역사학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극히 일부분의 자료만을 가지고 주장을 펼치면서 강제동원 역사 자체를 부인하는 학문적 오류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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