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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 아파" 수박밭 일하러 온 할머니들의 자기최면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3) 

비가 온다고 하니 온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중앙포토]

비가 온다고 하니 온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중앙포토]

 
내일은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카락까지 건드리면 아픈 것 같은 느낌으로 아주 아프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어디가 아파 병원에 갈 명분은 없이 온 전신이 다 아프다.
 
옛 어른들이 기상대보다 더 날씨를 잘 맞힌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젊은 시절 부모님이 아침부터 ‘에구구~온 데가 아프다’란 말이 정말로 듣기 싫었는데 저절로 나오는 언어가 되다니…. 몸을 일으켜 손가락부터 모가지까지 구부리고 젖히며 로봇 같이 움직여본다. 두드득두드득 하며 움직일 때마다 로봇이 내는 소리가 난다. 마디마디를 다 움직이고 나서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의 활동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시골 살 적, 인부들이 많이 와서 이웃 수박밭에 한 고랑 한 고랑을 차지하며 쭉 들어가셨다. 평균 나이가 70대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은 밭 주인이 모셔다가 밭에 앉혀드리면 그때부터 기어 다니며 일을 하시는데 너무 마음이 짠해서 물어보았다.
 
“어머님 일이 힘들지 않으셔요? 몸은 안 아프셔요?”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노? 그래도 밭에 나오면 하나도 안 힘들어. 대화할 친구 있제, 밥 주제, 빵 주제, 저녁에 들어가면 조금 피곤하지만 자고 나면 하나도 안 아파….”
 
평생 밭을 기어 다니신 경력으로 죽기 전까지 일할 자세가 되어 있는 시골 어르신들은 혹시나 주인에게 몸 아픈 것 들켜서 못 나오게 할까 봐, 또 자식들이 걱정 안 하게 아침마다 최면을 거시며 일어나신다. 아픔보다 사람이 그리우신 분들이 많다.
 
 
어제 손바닥만 한 밭에 고추 따느라 구부려 일했더니 무르팍도 덜덜 떨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프다는 신호로 대신할 수도 있구나. 아침에 딸네 집을 방문해 푸념 좀 하다가 출근해야지 하고 들어서니 딸과 손자 녀석이 기어 나온다.
 
“엄마, 나이는 못 속이나 봐. 날씨가 흐리고 비 온다더니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더니 어이가 없어서 하려던 푸념이 쏙 들어가 버린다.
 
“엄마, 나도 머리가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유치원 못 가겠어요.”
어린 손자도 나름 가기 싫은 유치원에 출근하는 꼴이니 그 말에 웃음이 나온다.
 
딸아이가 아프다니 안쓰럽기도 하다. 고만고만한 세 아이가 천방지축 뛰고 달리는데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고 아침이면 푹 고아 놓은 백숙같이 뼈 마디마디가 다 해체되었다가 다시 합체되는 시기가 그때이기도 하다. 딸아이에게 약이라도 챙겨 먹으라고 말하고는 내 몸 아프단 투정은 한마디도 못 해보고 등교하는 손녀를 데리고 나온다.
 
나이 들면 아무 짓을 안 하고 살아도 아프다.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나면 내가 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 정도로 감각이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엄살도 부릴 수 없다. 주위에 모여 대화하다 보면 각자 자기가 가장 많이 아프다. 병원에 누워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상이다. 또 그것이 날마다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면 적당히 아픈 것에 감사해야 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대사가 등장했던 드라마 '다모'. [사진 MBC]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대사가 등장했던 드라마 '다모'. [사진 MBC]

 
옛날 어느 드라마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말은 곧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라’고 마음도 함께 나누는 위로의 말이다. 아프면 누군가가 알은체라도 해주던,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던 그 시절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 스마트폰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스스로 영양식을 찾아서 챙겨 먹고, 기계같이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잘 돌아가게 관리해야 한다. 사람도 자연의 한 조각이란 것을, 점점 작아지고 부스러져 간다는 것을. 적당한 아픔을 감사하며 오늘도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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