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정탁 교수 "조국은 법가…맥락 끊고 단편 논리만 따진다"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암세포가 아무리 거북해도 친하게 지내야 한다. 어찌 됐든 암환자에게 암은 내 몸의 일부이지 않나. 가까운 존재를 적으로 돌리면, 먼 존재를 적으로 돌릴 때보다 더 치명적이다.”

 
20일 김정탁 교수(성균관대 신문방송학)를 만났다. 그날이 우연히 그의 정년퇴직일이었다. 그는 퇴직과 동시에 『장자』의 ‘잡편’‘내편’‘외편’‘역주편’을 완간했다. 마지막 ‘역주편’만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작업이다. 김 교수는 6년 전에 국내 암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도 암세포는 있다. 그런데 암 환자가 ‘나는 선인데, 암은 악이다’라며 제거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회복이 어렵더라. 지금 한국의 지성 사회와 정치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오히려 ‘반갑진 않지만 너도 내 몸의 일부인데 같이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암을 극복하더라. 나는 거기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을 깨달았다. 그건 ‘장자’의 핵심 메시지와도 통한다.” 당시 연구로 그는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WCA)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김정탁 교수는 "합리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가 등장한다. 이데올로기는 합리의 산물이다. 장자는 합리를 넘어서는 화리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정탁 교수는 "합리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가 등장한다. 이데올로기는 합리의 산물이다. 장자는 합리를 넘어서는 화리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장자’를 통틀어 가슴에 꽂힌 단어가 있나. 하나만 꼽으면.
 
“‘화리(和理)’다. 조화로울 화(和)자에, 이치 이(理)자다.”
 
무슨 뜻인가.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게 ‘큰 지혜’라고 생각한다. ‘화리’는 동아시아에서 2000년 전부터 썼던 용어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진 말이다.”
 
화리, 그럼 그 대척점에 있는 단어는 뭔가.  
 
“‘합리(合理)’다. 합할 합(合)자에, 이치 이(理)자다. 이치에 합당한 것을 가리킨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화리가 ‘큰 지혜’라면, 합리는 ‘작은 지혜’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화리’보다 ‘합리’를 더 좇고 있다.”
 
장자는 '장자-내편'에서 "대붕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려다볼 때처럼 똑같이 푸르고 푸를 뿐이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장자는 '장자-내편'에서 "대붕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려다볼 때처럼 똑같이 푸르고 푸를 뿐이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더 자세히 풀어달라.
 
“‘합리’는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치에 합당하면 옳고, 합당하지 않으면 그르다고 본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가린다. 자꾸만 쪼개고 쪼개서 옳고 그름을 나눈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져 자꾸만 벌어진다. 장자가 말한 ‘큰 지혜’는 다르다. 시시비비를 따져서 적과 동지로 나누는 것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더욱 중시한다. 그게 ‘화리’다.”
 
‘화리’를 가장 잘 구현한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자연과 우주다. 자연에는 태풍도 있고, 지진도 있고, 폭풍우도 있다. 나무도 뽑히고, 심지어 사람도 죽는다. 그렇지만 자연이 지구 전체의 균형을 깨뜨린 적은 없다. 태풍은 바다 밑 물고기에게 산소를 공급해 생명을 준다. 가끔 태풍이 불어야 심해의 물고기가 산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어떤 별은 폭발하지만 우주 전체의 균형이 깨진 적은 없다. 그런데 모든 맥락을 다 끊어버리고 태풍 하나만 보면 어떻겠나.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그렇게 보는 게 ‘작은 지혜’다. 사회과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맥락을 끊고 ‘하나만 보는 것’이다. 특히 법학자가 학문의 특성상 그런 성향이 심하다.”
 
『장자』에는 ‘성심(成心)’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성심은 자기 나름대로 정한 마음과 기준이다. “장자는 우리가 성심(成心)을 스승으로 삼기 때문에 시비가 생겨난다고 했다. ‘성심을 스승으로 삼지 않았는데도 시비가 생겨났다면, 오늘 월나라로 떠났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말과 같다’(장자 내편 제물론)고까지 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가만히 따져보라. 우리는 성심에 부합되는 걸 ‘합리’라는 이름으로 고집한다. 합리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가 나오는 법이다.”
 
김정탁 교수는 "합리가 지나치게 되면 논리 하나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 경고했다. 강정현 기자

김정탁 교수는 "합리가 지나치게 되면 논리 하나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 경고했다. 강정현 기자

 
그래도 세상의 문제를 풀려면 시시비비를 따져야 하지 않나.  
 
“시시비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게 ‘작은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시시비비를 가장 잘 가린 사람들이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다. 소피스트는 처음에 ‘현자(賢者)’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궤변가(詭辯家)’로 통했다. 그들의 무기는 논리정연함과 개념분명함, 그리고 문법정확함이다. 오늘날에도 이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법조인이다. 동아시아에도 그런 소피스트들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한 문파인 ‘명가(名家)’다. 그들은 논리정연함으로 세상을 해석하려고 했다. 명가는 자신들의 논리 속에서 ‘계란 속에도 털이 있고, 닭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고, 천하가 초나라 서울 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분만 가지고 따지면 타당성이 있지만, 전체를 갖고 보면 틀린 말이다. ‘합리’가 지나치면 이렇게 된다. 논리 하나만 가지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장자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르는데 이는 수명이 짧아서이다"라며 잘라놓은 시간적 단면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시선'을 지적했다. [중앙포토]

장자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르는데 이는 수명이 짧아서이다"라며 잘라놓은 시간적 단면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시선'을 지적했다. [중앙포토]

 

김 교수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조국 전 민정수석을 지적했다. “논리적 잣대만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이들에게는 맹점이 있다. 다름 아닌 ‘맥락’이다. 나는 당신과 이웃과 사회와 연결돼 있다.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관계’가 있고, 신경과 혈관이 흐르고, 전체적 맥락이 있다. 그런데 소피스트는 그 맥락을 다 끊어버린다. 그리고 잘린 단면 속에서 논리정연함과 개념분명함, 문법정확함만을 따진다. 조국 전 민정수석을 보라. 그는 법을 전공한 ‘법가(法家)’다. 만약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을 안다면 그렇게 강하게 말하지 못한다. 잘라 놓은 단면 안에서 자신의 논리로만 세상을 보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법가(法家)적 정치의 맹점이 뭔가.
 
“정치의 목적이 뭔가. ‘통합’이다. 그런데 법률가는 옳고 그름을 나누고 따지는 일을 한다. 그러니 법률가가 정치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나. 자꾸만 시비를 가리고 피아(彼我)를 나누는 경향이 있다. 결국 ‘통합’보다는 ‘분열’쪽으로 가기 쉽다.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리가 모두 ‘법가’다. 그런데 서양의 법정신은 본래 자연법에서 출발했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법의 본래 정신이다. 장자는 그걸 ‘큰 앎’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비하면 법가의 앎은 ‘작은 앎’이다.”
 
김정탁 교수는 "조국 전 민정수석이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렇게 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잘라놓은 단면 안에서 논리적 오류만 따지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할 수 있다. 그게 법가의 한계다"라고 지적했다. 강정현 기자

김정탁 교수는 "조국 전 민정수석이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렇게 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잘라놓은 단면 안에서 논리적 오류만 따지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할 수 있다. 그게 법가의 한계다"라고 지적했다. 강정현 기자

 

장자는 ‘대붕(大鵬)의 비상’을 설했다. 『장자』의 첫 장에는 ‘붕의 등은 몇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붕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땅에서) 올려다볼 때처럼 똑같이 푸르고 푸를 뿐이다’고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만약 작은 비둘기나 매미처럼 높이 날지 못하고 낮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어찌 되겠나. 사사건건 분별하게 된다. 매미는 나무 위에서 보니까 땅 위의 개미 한 마리까지 본다. 이게 ‘작은 앎’이다. ‘예스냐, 노냐’를 따지며 선과 악의 이항대립으로 세상을 본다. ‘나는 선인데, 너는 악이다.’ 운동권 특유의 이분법적 논리도 그렇다. 이럴 때 합리적 사회가 붕괴된다. 작은 잘잘못을 따지다가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결국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그래서 장자는 ‘대붕처럼 높이 날아오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높이 날면 어찌 되나.
 
“낮은 곳에 머물면 개인적 시선에 함몰된다. 이게 ‘작은 지혜’다. 높이 날면 달라진다. ‘큰 시선’이 생긴다. ‘큰 앎’을 가지고 ‘큰 말’을 사용하게 된다. 우리 정치권을 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작은 앎’에 기초한 ‘작은 말’만 난무한다. 조선의 사림파도 시작은 훌륭했다. 그런데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다시 노론은 시파와 벽파로 갈라졌다. 이게 ‘작은 앎’으로 ‘작은 말’을 사용한 결과다. 요즘은 다들 그 시대를 비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작은 차이만 있어도 정치인들은 그 차이를 부각시킨 뒤 자산으로 삼는다. 그 점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큰 말’을 쓴 정치가였다.”
 
왜 그런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미국이 갈라졌을 때 그는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 미국에는 두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애국자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애국자다.’ 나는 여기서 ‘큰 지혜’를 본다. 대붕처럼 높이 날아올라 한 단계 위에서 보니까 차이의 소멸이 온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쪼개진 미국을 하나로 합한다. ‘분열’ 대신 ‘통합’을 지향한다. 이게 공동체 정신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큰 정치’를 하는지, ‘작은 정치’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작은 정치’는 적과 동지를 나누며 차이를 극대화하고, ‘큰 정치’는 서로의 차이조차 극복하며 하나로 통합한다. 하늘이 왜 푸른지 아나?”
 
김정탁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제는 합리적 공동체를 넘어서 화리적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김정탁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제는 합리적 공동체를 넘어서 화리적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하늘이 왜 푸른가.
 
“멀리서 보니까 푸르다. 서로의 차이가 소멸되니까 푸른 거다. 대붕처럼 높이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도 푸르다. 멀리서 ‘큰 지혜’로 보니까 땅이 푸른 거다. 그런 게 ‘화리의 공동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잘잘못을 따지며 나와 너를 가르고,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합리의 공동체’에서 ‘화리의 공동체’로 넘어가야 한다.”
 
왜 ‘화리의 공동체’가 중요한가.
 
“우리는 한배에 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시비비를 가려도 배가 난파해서는 곤란하지 않나.”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른 기사들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