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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4시 화염병 날아들었다, 분풀이 대상 전락한 '세종대왕님'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화염병을 투척한 5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사진은 깨진 화염병 제거 등 청소작업이 끝난 뒤 세종대왕상의 기단부. [연합뉴스]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화염병을 투척한 5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사진은 깨진 화염병 제거 등 청소작업이 끝난 뒤 세종대왕상의 기단부. [연합뉴스]

 
“지인 빚보증 문제로 소송에 패소해 억울한 마음에 누군가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다”

 
지난 21일 오전 4시, 광화문 광장에 10년째 설치돼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향해 별안간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소주병에 심지를 넣어 불을 붙인 것이었다. 화염병이 기단(세종대왕 동상을 받치고 있는 하단 건축물)에 맞고 떨어진 덕에 세종대왕상에는 별다른 손상이 가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에 의해 체포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위와 같이 진술했다. 조사 결과 공범 없이 A씨는 공범 없이 혼자 범행을 저질렀으며 정치적 동기가 없는 ‘개인적 분풀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종로경찰서는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 중이다.

 

끊이지 않는 동상 훼손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자전거를 자물쇠로 매달아 둔 모습. 이처럼 소녀상에 대한 훼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부산겨레하나]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자전거를 자물쇠로 매달아 둔 모습. 이처럼 소녀상에 대한 훼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부산겨레하나]

 
끊이지 않는 훼손에 동상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정치적ㆍ역사적 상징을 띄는 동상의 경우 훼손 빈도나 강도가 더욱 심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6일에는 20~30대 한국인 남성 4명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상록수역 광장에 있는 소녀상에 침을 뱉으며 조롱하고 일본어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소녀상 관리단체에게 모욕죄로 고소당했다. 그러나 모욕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돼야 하는 현행 모욕죄 성립 요건 때문에, 이들이 처벌을 받을 확률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모욕한 대상이 소녀상을 설치한 사람들인지, 사망한 할머니들인지 아니면 생존 할머니들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다. 아직까지 동상을 모욕의 대상으로 인정한 판례는 없다. 전국에 있는 112개의 소녀상에 크고 작은 훼손이 가해지고 있지만, 이를 막거나 처벌할 적극적인 방안이 없는 셈이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왼쪽)에 동상에 불지르며 시위한 반미단체(오른쪽) [중앙포토, B씨 페이스북 캡처]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왼쪽)에 동상에 불지르며 시위한 반미단체(오른쪽) [중앙포토, B씨 페이스북 캡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도 정치 단체들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지난해 7월과 10월에는 반미(反美) 성향 단체 회원들이 인천시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에서 화형식을 한다며 불을 지르는 일도 있었다. 평화협정운동본부 상임대표 B(62)씨는  ‘맥아더에서 트럼프까지 신식민지체제 지긋지긋하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맥아더 동상 앞에 걸고 그 옆에 헝겊 더미를 쌓아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다. B씨는 동상에 그을음을 입힌 혐의(특수공용물건손상) 등으로 지난 5월 구속기소됐고, 인천지방법원 형사8단독 심현주 판사는 B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특수공용물건손상죄는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관공서가 설치한 공용물을 손상시킨 경우 적용된다.  
 
2016년 12월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빨간색 스프레이로 훼손돼 있다. [연합뉴스]

2016년 12월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빨간색 스프레이로 훼손돼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마찬가지다. 2016년에는 미술작가 최황(35) 씨가 박 전 대통령 흉상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리고 망치로 내리친 혐의(특수재물손괴)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는 1ㆍ2심 모두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검찰과 소유자가 없는 물건에 대한 재물손괴가 가능한지 여부를 다퉜으나,  1심 재판부는 “박정희 흉상은 영등포구청의 소유물로 판단된다”면서 “주인이 없는 무주물이 아니므로 특수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동상 세울 때부터 주의 기울여야" 

이처럼 동상 훼손이 단순 분풀이 혹은 정치적 신념 표시의 대상이 되면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서울 시내에서 동상 훼손 사건을 종종 맡았다는 경찰 관계자는 “순수 예술품인 동상보다는 상징성이 큰 동상들에 의도를 가지고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가는 시민들은 이를 보고 불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동상의 관리주체나 공공성에 따라 적용되는 혐의가 달라지기 때문에, 세울 때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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