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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발 농민수당 전국 확산…정부 직불금과 이중 지원 우려

‘충북 농민수당 주민발의 추진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수당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충북농민수당 추진위]

‘충북 농민수당 주민발의 추진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수당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충북농민수당 추진위]

“30만원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농자재나 비료를 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함평·화순·여주·부여 등 잇따라
전남도는 22개 시·군 실시 추진
한해 1500억원 … 재정 악화 논란

정부선 직불제를 공익형 개편
작물 관계없이 일정액 지급 추진

전남 해남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윤상학(56)씨는 얼마전 해남군에서 농민수당 30만원을 받았다. 농민수당은 해남에서 사용이 가능한 ‘해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됐다. 윤씨는 상품권으로 생필품을 사거나 외식하는 데 썼다. 그는 “한 푼이 아쉬운 농번기에 수당이 들어오니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해남발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제)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해남군은 지난 6월부터 농민에게 상·하반기에 각각 30만원(상품권)을 주고 있다. 해남군에 이어 전남 함평군도 지난 26일부터 농민수당을 주고 있다. 함평군은 농업인 외에 축산·어업인에게도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연간 60만원을 지역상품권으로 줄 예정이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남·함평에 이어 전남 화순·강진군과 광양시, 경기 여주시, 충남 부여군 등 5개 시·군이 농민수당 협의를 완료했다. 농민수당을 주려면 다른 수당과의 중복 지원 등을 막기 위해 복지부와 협의해야 한다.
 
또 농민수당 도입을 확정한 경북 봉화·청송군과 전북 고창군, 전남 영암군도 복지부와 협의 중이다. 전남도와 전북도는 내년 광역자치단체 주도로 농민수당 도입을 논의 중이다.
 
충북과 충남, 경남에선 농민수당 조례 제정 운동이 한창이다. 농민단체 주도로 지급액과 대상을 담은 조례안을 만들어 청구인 서명을 받고 있다. 김도경 전농충북도연맹 회장은 “월 10만원씩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를 충북도에 전달하고, 12월까지 1만3000명의 청구인을 모아 서명을 받을 예정”이라며 “올해 안에 충북형 농민수당 조례를 만들 수 있게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지역화폐·상품권 농가에 지급
 
농민수당은 영농규모나 수확량 등에 상관없이 농가에 일정액을 주는 제도다. 경작 규모에 따라 지급하는 농업직불금 제도와 차이가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해남군은 1년 이상 지역에 주소를 둔 주민 중 실제 농사를 짓는 모든 농가에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서 주고 있다. 상반기 지급 대상인 1만2487명에게 총 37억4600여만 원을 줬다. 김성현 해남군 농사팀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농촌 문화와 경관, 환경을 지켜온 농민 삶을 보장하자는 뜻에서 도입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는 농민수당을 상품권이나 지역화폐 형태로 주고 있다. 이러면 지역 내에서 돈이 돌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금액은 연간 14만원(충남 부여)~120만원(전남 화순)까지 다양하다.
 
농민수당과 유사한 형태의 정책은 전남 강진군이 먼저 시작했다. 군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논밭 경영안정자금 지원제를 시행하고 있다. 농가당 연간 70만원을 준다. 방식은 지역화폐 35만원, 현금으로 35만원이다. 강진군에서 농지 1000㎡ 이상 경작하고, 농외소득이 37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 조건을 빼면 농민수당과 같은 개념이다.
 
농민수당 도입이 잇따르는 것은 취약한 농촌 현실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대비 농가소득은 64.8%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근로자가 100만원을 번다고 가정할 때 농가는 약 65만원을 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업 종사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인구는 231만명으로 10년 전인 2008년(318만명)과 비교할 때 27.4% 감소했다.
  
“여성은 농민수당 안 주나” 형평성 논란
 
송하진 전북도지사(왼쪽)가 지난 1일 농민공익수당 협약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뉴스1]

송하진 전북도지사(왼쪽)가 지난 1일 농민공익수당 협약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뉴스1]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은 “농가 부채와 변동직불금으로 소득을 지원받은 금액을 빼면 도·농 소득 격차는 더 클 것으로 본다”며 “다수의 농업직불금 중 친환경 농업직불금만 남기고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면 전국 농가에 수당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입 초기인 농민수당은 막대한 예산을 수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남도는 내년 22개 시·군과 농민수당(농가당 60만원) 도입을 추진 중인데, 약 150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집에 살더라도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농민수당을 개별적으로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보라미 전남도의원은 “전남도가 계획한 농민수당은 지급대상이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농가 단위”라며 “이 때문에 여성 농민이 배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지출 예산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농민수당까지 퍼지면 자칫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현재 직불금이나 농기계 지원, 전기요금 할인 등 농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되는 예산이 적지 않은데 추가적인 수당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농민수당 도입 대신 현행 농업직불제를 공익형직불제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익형직불제 핵심 내용은 논이나 밭작물 등으로 나눠 차등 지급하는 현행 직불제를 면적이나 작물과 관계없이 일정액을 주도록 바꾸는 것이다. 쌀과 다른 작물의 직불금액 차이를 줄이자는 게 목표다. 또 소규모 농가(규모 미정)에는 일정 금액을 지급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 대규모 농가에는 직불금 지급 단가를 차등 지급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를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농민수당을 도입한 지자체 농가는 두가지 혜택을 받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행 직불제의 기형적 구조는 쌀 공급과잉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정책으로 논 고정직불금 수혜 농가 80만4000가구(2017년 기준)와 밭 직불금 수혜 농가 60만3000가구가 혜택을 볼 전망이다. 정치권은 공익형직불제 도입에 따른 필요 예산을 연간 2조4000억~3조원 규모로 잡고 있다. 공익형직불제는 농민수당과 유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작물이나 면적과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의 기본직불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익형직불제가 경작지의 생태·환경 준수 의무가 엄격하다는 점에서 농민수당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청주·해남·강진=최종권·최경호·박진호·김방현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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