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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상처 입은 나라다운 나라의 꿈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약 한 달 반 후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됩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염원하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고는 있습니까.
 

지지층만 보고 가는 오만과 독선
기대했던 문 대통령과 너무 달라
이대로 가면 촛불 사태 재연 가능
꿈에서 깨어나 현실 직시해야

언론인이기에 앞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 역시 촛불을 들었고, 누구보다 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해 왔습니다. 지면을 통해 이 정부를 비판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 정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였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대하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희망 고문’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나라다운 나라는커녕 무너지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운 자각에 모골이 송연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절대 지지층이라고 믿는 35~40%의 국민만 보고 가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문 대통령의 ‘몰(沒)이성적’ 집착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조 후보자가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을지 몰라도, 도의적으로 그는 법무장관 자격을 잃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의와 공정을 대변하는 진보 지식인인 척하더니 알고 보니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드러났습니다.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법무장관이 검찰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밀리면 바로 ‘레임덕’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여론을 무시하고, 그냥 밀어붙이는 것 아닙니까. 이게 독선이고, 오만 아니면 무엇입니까.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직언하는 참모가 없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불행입니다. 그런 참모를 곁에 두지 않은 것은 문 대통령의 잘못입니다.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이 두려워 찍소리 못하고 받아적기만 하던 지난 정부와 뭐가 다릅니까. 내가 알고, 기대했던 문 대통령과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내치(內治)도 그렇지만, 특히 외치(外治)는 생선을 굽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문 대통령이 일본을 대하는 것을 보면 홧김에 난폭운전하는 것 같아 아찔합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에도 불구하고 안보 차원에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던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문 대통령은 단칼에 끝장냈습니다. 한·미 동맹, 나아가 동북아 안보 질서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를 손바닥처럼 뒤집을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조 후보자 지명을 둘러싸고 악화한 여론을 덮고, 반일(反日) 민족주의 정서를 내년 총선에 이용하려는 속셈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만 합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고, 트럼프를 달래 두 사람이 비핵화에 합의하기를 바라는 게 전부 같아 보입니다. 트럼프의 맞상대가 된 김정은은 다종다양한 미사일 실험을 통해 동북아의 전략적 지위까지 확보하자 참기 힘든 조롱과 비아냥으로 문 대통령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아무 소리 못 하고 김정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아무리 쏘아대도 “미국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괜찮다”며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금을 뜯어낼 궁리나 하는 트럼프는 누구의 친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제는 또 어떻습니까.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수출과 내수는 계속 주저앉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의 결실을 바라는 것은 오지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안 생기면서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다 보니 국민 부담은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합니다. 조국 후보자 지명부터 즉각 철회해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일본에 손을 내밀어 대화를 재개해야 합니다.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면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고, 한·미 동맹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기대를 접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비핵화가 안 되면 독자적 핵무장도 할 수 있다는 결연한 자주국방 의지를 천명해야 합니다.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는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그것이 미·중 대결 속에서 살아남는 길입니다.
 
이대로 가면 촛불 사태가 재연될 수 있습니다. 조국 후보자에 실망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이상 퇴로는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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