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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토리] "실적, 예전만 못하다?"…'급할수록 기본' 아모레의 R&D 투자 이야기

"한국 화장품 기업들은 기초연구에 투자를 참 안합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아모레퍼시픽같은 대기업의 변화입니다."

화장품 전문가 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K뷰티의 위기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한국 화장품은 중국 내 수출 1위 자리를 일본 J뷰티에 내줬다. 한국 화장품 수출은 2017년 정점을 찍은 뒤 점차 둔화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연구개발(R&D)에서 원인을 찾는다. 기초연구에 막대한 연구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달리 한국은 이 분야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기술력은 곧 제품력이다. 수출이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은 다르다. R&D 투자가 매출 대비 평균 1%에 그치는 국내 환경 속에서 2% 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당장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소를 부지런히 짓고, 회장이 사비를 출연해 과학자들에게 5년 간 연구비를 지원한다. R&D 투자는 영업이익 숫자를 깎는 요인이다. 아모레가 중국발 '사드 후폭풍'에 휘말려 지난해와 올 상반기 실적이 떨어진 점을 떠올린다면 결코 쉽지 않은 행보다.
 
 
기초투자에 돈 쏟아붓는 로레알·시세이도
 
글로벌 뷰티업계는 기초연구 투자에 적극적이다.

'랑콤', '비오템', '메이블린' 등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를 거느린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 그룹은 업계 선두주자답게 R&D도 압도적이라고 평가된다.
로레알은 프랑스 파리 등 유럽, 북미(미국 뉴욕), 아시아(일본 도쿄) 등 3개 대륙에 개발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피부 체질을 두루 고려하기 위해서다. 유럽 내 3개 글로벌 센터와 전세계에 흩어진 총 21개 연구소에 3000여 명의 연구원이 포진해 있다. 피부과 전문의부터 생물학자, 화학자까지 뷰티와 연결되는 학자들이 집결했다.

로레알은 전체 매출 평균 3%를 연구개발 투자에 쓴다. 또 그중에서도 기초 선행 연구 기술에 예산의 3분의 1을 할당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8년에는 약 9억1400만 유로(약 1조2235억원)를 연구 혁신 투자에 쏟아 부었다. 지난해 로레알 그룹의 영업이익은 49억2000만 유로(6조5864억원)였다.

특허도 차고 넘친다. 로레알이 2018년 신청한 특허 건수는 505개였다. 세계 유수 대학 및 연구소들과 함께 진행 중인 공동 연구 계약 건만 수 백개가 넘는다. 
일본 대표 화장품 기업인 시세이도 그룹은 '로라 메르시에', 나스'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시세이도는 일본과 중국, 유럽, 싱가포르, 북미에 자리잡은 총 8개 연구소에 1500명의 연구진을 꾸리고 있다. 2015년 상반기까지 국내 특허 출원 1565건, 해외 1692건을 기록했다. 세계를 보고 뛰는 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특허 출원율이 높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논문 발표회 등에서 상을 받으면 세번 중 두번이 시세이도"라며 혀를 내두른다. 

  김 교수는 "시세이도는 국제학회 수준급 논문을 자주 내는 회사로 유명하다. 당장 제품에 쓰일 수 있건 없건, 매출에 영향을 주든 말든 연구하고 투자한다. 논문 발표를 장려하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기초연구는 제품력으로 연결된다. 시세이도는 기술력과 특허, 오랜시간 쌓아온 탄탄한 기초연구에 힘 입어 중국에서 재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시세이도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11조원을 넘겼다. 영업이익은 1조1000억원 안팎이다. 매출 대비 평균 R&D 투자는 2~3% 선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시세이도는  2015년부터 '일본 1등에서 세계 1등'을 지향하는 중장기 성장전략 'VIS ION 2020'을 추진하고 있다"며 "럭셔리 브랜드 강화, 이커머스,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 R&D 등 각종 투자에 나서왔다"고 말했다.
 
 
실적 눈치 보지 않고, 기초연구 공 들이는 아모레
 
 국내 화장품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K뷰티 선두기업인 아모레와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이 이끌어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아모레는 R&D 투자에 비교적 정성을 쏟는 곳으로 꼽힌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1000대 R&D투자 기업 스코어 보드'에 따르면 아모레는 2017년 연구개발에 930억원을 투자하며 43위에 올랐다. 아모레의 매출 대비 R&D투자 비중은 2.57%로 집계됐다. LG생활건강은 266억원으로 122위였다.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각 기업 별 연구개발 비용 역시 아모레가 매출 대비 높은 편이었다.
아모레는 2018년 매출의 2.30%인 1213억원을 R&D에 투자했다. 2017년은 1185억원으로 매출 대비 2.31%였다. LG생건은 2018년 매출의 1.92%인 1295억원, 2017년 1.91%인 1197억원을 연구개발에 썼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활용품 회사 상위 13곳의 평균 R&D 비용은 매출 대비 1.6% 수준에 그친다.

연구원 숫자도 적지 않다. 아모레 그룹은 국내외를 합쳐 550여 명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 350명에서 7년여 만에 1.5배 가량 숫자가 늘었다. 시세이도나 로레알 그룹과 비교하면 적은 편에 속하지만,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 기준으로 따진다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아모레의 이런 R&D를 향한 관심을 고까운 시선으로 본다.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가운데 한가로운 투자나 한다는 것이다. R&D 투자비는 판관비로 회계처리 되기 때문에 영업이익에 마이너스 요소인 건 맞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좇는 기업은 연구개발 비용부터 삭감한다. 하지만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은 R&D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모레가 비용 부담에도 꾸준하게 매출의 2~3%를 투자해온 것은 화장품 경쟁력의 근원을 R&D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와 뷰티 전문가들은 아모레의 투자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아모레가 수년 전부터 기초연구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로레알 등과 비교하면 적긴 하나, 전체 비중으로 볼 때 의미가 없지 않다"며 "아모레가 지난해 중국의 '사드 후폭풍'을 맞고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투자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K뷰티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세이도와 로레알처럼 기초 연구개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결국 럭셔리 프리미엄 제품의 기술과 수준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모레의 투자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권위 상 수상하고, 만들고…'아모레의 길'
 
연구개발을 부지런히 하면 성과도 따라온다.

아모레의 특허 등록 수는 2017년 299개, 2018년 294개로 2년 동안 총 593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500대 기업 중에서는 13위, 생활용품 업계에서는 1위에 해당한다.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의 김주원 책임연구원이 일본기초노화학회가 주관하는 '2019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2002년 '젊은 과학자상'이 제정된 이후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3번째이자 기업 소속 연구원으로는 처음이다. 일본기초노화학회는 42년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노화 관련 학술대회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바이오사이언스 연구랩 소속의 김 연구원은 2014년 국제피부연구학회지 JID에 게재한 논문과 일본노년학회 총회에서 발표한 포스터를 바탕으로 이번 상을 수상했다.

포스터 발표의 주제는 '피부노화에 의한 색소침착과 콜라겐분해 억제인자로서의 Foxo3a의 역할 연구'였다. 장수 유전자인 'Foxo3a'를 통해 항노화와 미백의 연결고리를 세계 최초로 증명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연구 성과를 곧바로 제품에 연결한다. 아모레는 현재 이와 관련한 효능 원료로 미백과 항노화 이중 기능성을 아이오페 브랜드에 적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진생베리 성분을 설화수 브랜드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밖에 2015년 기술연구원 내 신설된 '아시안 뷰티 연구소'는 인삼, 콩, 녹차 등 아시안 뷰티 특화 소재를 통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올린 것을 인정받아 그해 7월 'IR52 장영실상 기술혁신상'을 받았다.

더 큰 꿈을 꾸기도 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016년 사재 출연금으로 서경배과학재단을 설립해 한 해에 5명씩 신진 과학자를 선발해 각각 5년간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혁신적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을 지원하여 인류에 공헌한다'는 비전을 품고 있는 이 재단은 선발 20년이 지나는 2036년에는 총 100명의 과학자들에게 연구비 혜택을 준다.

쾌거도 있었다. 2017년 서경배과학재단 신진과학자로 선정된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이정호 교수 연구팀은 올해 8월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돌연변이 발생의 근본 원인을 규명한 내용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당시 서 회장이 남긴 고백은 기초연구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모레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 회장은 "기업의 연구소는 돈에 쫓기기 마련이다. 대게는 3~5년, 길어야 10년의 중단기 연구만 한다. 우리 회사도 20년 걸리는 중장기적 연구는 안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래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긴 호흡으로 할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재단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모레 관계자는 "단순히 실적만 생각한다면 R&D 투자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초 연구개발은 보다 긴 미래를 보고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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