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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돈 준 건 맞지만 받은 사람 MB측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어”

미궁에 빠진 남산 3억원 사건 재판 현장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 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 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상훈 전 사장. [중앙포토]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 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 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상훈 전 사장. [중앙포토]

시작은 창대했지만 그 끝은 초라했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허무한 결론을 넘어 화풀이성 매듭을 지은 것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생긴다. 신한금융이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금으로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측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이른바 ‘남산 3억원 사건’ 말이다. 검찰은 신한금융측이 2008년 2월 중순 남산자유센터 정문 주차장에서 세 개의 박스에 담긴 현금 3억원을 ‘성명 불상’의 사람에게 건넨 사실은 확인했지만 이 돈의 최종 종착지는 찾지 못했다. 검찰은 대신 재수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며 신상훈 전 신한지주 대표와 이백순 전 은행장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한 변호사는 “소를 잡아달라고 칼을 줬더니 소는 못잡고 옆에 있던 애먼 닭에게 칼을 휘두른 격”이라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검찰 “알고도 몰랐다는 건 위증”
신상훈에 대한 불쾌감 작용했나
두 피고인, 공소사실 전면 부인
유령 사건으로 전락 가능성 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522호실.
 
형사8단독 변성환 부장판사는 이날 하루 10여건의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장 함바집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과도를 휘둘러 구속 기소된 60대 여인을 비롯해 술에 취해 지나가던 행인에게 벽돌로 위협한 50대 남자, 경찰관을 폭행해 기소된 60대 등 뉴스 가치 낮은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사건들 속에 신 전 사장 등의 위증 혐의 재판도 들어있었다. 한 때 금융권과 정치권의 비리커넥션으로 묘사됐던 사건치고는 다소 맥빠진 분위기가 연출됐다.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온 두 사람은 허탈한 표정으로 피고인 석에 섰다.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백순 전 행장. [중앙포토]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백순 전 행장. [중앙포토]

검찰이 두 사람에 대한 재판을 제기한 이유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다. “이백순이 현금 3억원을 마련하라고 신상훈의 비서실장에게 지시했고, 이후 남산에서 3억원이 전달됐고, 신상훈은 이 돈을 경영자문료에서 정산해 보전하라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당시 상황을 모두 알면서도 자신은 잘 알지 못했다고 허위의 진술을 했다.”  검찰은 이들의 공소사실을 열거하면서 “2008년 12월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50여억원이 든 라응찬 전 회장의 차명계좌를 발견한 것과 관련해 신상훈이 수사대응을 총괄 지휘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대법원의 위증죄 구성요건에 대한 판례를 인용했다. 특히 신 전 사장측은 “검찰이 위증혐의와는 관련없는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사건을 들어 피고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각인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공소사실과는 관련없는 검찰의 주장은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된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왜 다시 문제가 됐을까. 사건이 재조명 된 과정과 검찰의 대응을 살펴보자.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 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 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 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라응찬 전 회장은 무혐의처리됐다. [중앙포토]

신한금융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 선 직후인 2008년 초 남산 자유 센터 주차장에서 현금 3억원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 는 의혹과 관련해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라응찬 전 회장은 무혐의처리됐다. [중앙포토]

지난해 2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는 인권 침해 또는 검찰권 남용의혹이 있는 사건 중 하나로 ‘남산 3억원 제공 및 신한관련 사건’을 선정했다. 검찰의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원회의 결정에 맞춰 청와대에도 “신한사태 관련 사건의 빠른 재조사 및 금융적폐 세력 처벌 요망”이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2010년 9월 발생한 신한사태는 당시 MB 정권의 부패한 사조직인 ‘상촌회’라는 배후세력과 일부 부패한 검찰,신한은행 내 맹목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일부 직원들이 합작해 만든 사건이다.” 이 국민청원 내용에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당시 신한지주 사장인 신상훈을 횡령·배임 혐의로 무고해 사장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대법원은 대부분 무죄로 판명했다”는 대목에서 검찰은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과거사위 결정과 국민 청원 배경에 신 전 사장의 물밑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의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측 인사들도 신 전 사장과 그의 측근들을 직·간접적으로 비난했다.
 
검찰은 ▶남산 3억원 사건 ▶신한은행 관계자의 위증 혐의 ▶경남기업에 대한 불법 대출 의혹 ▶라응찬 전 회장의 차명계좌 등에 대한 재조사 요구 중 남산 3억원부분만 떼내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검찰 내부, 특히 당시 수사진의 반발이 거셌다. “정치논리에 따라 검찰이 휘둘리는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수부나 금융조세조사부가 아닌 일반 조사부로 사건을 배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이뤄진 검찰 조사는 신한금융 관련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다. 검찰 조사를 받은 한 관계자는 “수사의 초점이 3억원을 전달 받은 사람을 밝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술 하나하나를 따지며 면박을 주는데 있는 것 같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돈을 전달한 데 관련된 실무진들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되고, 신 전 사장이 위증 혐의로 기소된 것은 검찰의 편향된 수사 태도 때문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성명 불상’의 사람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것이 위증이 아니라 돈을 준 사실을 알면서도 “잘 알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 위증이라는 얘기다.
 
신한금융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조사때도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측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신 전 사장을 고소·고발하자, 신 전 사장 측도 맞대응을 했지만 수사는 같은 선상 위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신 전 사장 측에 대한 조사가 집중된 반면 라 전 회장의 사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조차 제외됐던 것이다. 신 전 사장 측이 “신한금융의 기득권 세력이 당시 검찰과 정치권 세력을 등에 업고 우리를 쫓아내려 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2일 법정에 나온 신 전 사장은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무슨 말을 한들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 수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보니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세차례에 걸친 수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면 이유와 목적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신한금융 측이 신 전 사장을 고발하기에 앞서 그와 친한 금융권, 정치권 인사들의 계좌를 불법 조회한 사실이 있었는데도 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저의(底意)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차명계좌를 통해 수십억원을 거래한 것은 충분한 수사의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은행측이 현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뒤 차량 뒤 트렁크에 실고 남산 주차장에서 만나 정치권 유력 인사 심부름꾼에게 전달했는데도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 밝히는데 실패했다”고 말하면 국민들은 검찰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또 하나의 유령사건이 서초동 주변을 맴돌게 됐다.
 
모두가 패배한 신한금융 사건
신상훈 전 사장은 일본에 있던 이희건 명예회장에 대한 고문료 15억여원을 횡령하고 430여억원의 부당대출을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2억6000여만원의 횡령 혐의만 인정, 신 전 사장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현재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있다.
 
이백순 전 행장은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기탁금 5억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재판에서 직업을 무직이라고 밝혔다.
 
박연차씨와의 ‘50억원 차명거래’와 관련해 2010년 시민단체 등이 금융실명제 위반 혐의로 고발한 라응찬 전 회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검찰 수사 때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며 소환 조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법원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은 이번 재판을 위해 대형 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들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돈과 퇴직금 중 상당 금액이 변호사 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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