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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변화 vs 자연 그대로…안도·이타미 건축 통하다

[도시와 건축] 동영상·스틸사진 같은 건축물

안도 다다오가 2002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세운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중앙포토]

안도 다다오가 2002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세운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중앙포토]

올해 두 편의 건축가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생존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8년 전 타계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이야기다. 안도 다다오는 1941년생이고, 이타미 준은 1937년생으로 둘은 동시대의 건축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건축가를 비교해보면 건축가와 건축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엿볼 수 있다.
 

안도의 ‘유민 미술관’
장식 없는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
공간체험 통해 자연 변화 느끼게

제주 지형 살린 이타미의 ‘포도호텔’
자연 속에 어우러지게 형태 모방
언덕이 지붕이 된 듯한 모습 연출

안도 다다오. [중앙포토]

안도 다다오. [중앙포토]

안도는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면서 공간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아무런 장식 없이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외부 마감재나 내부 마감재가 붙어있게 되면 재료가 공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공간의 형태와 경험의 순서(시퀀스)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그는 자연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연의 모습을 모방하는 대신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콘크리트 박스를 만드는 건축가다.   
 
‘빛의 교회’ ‘바람 박물관’ 다른 듯 비슷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의 글라스하우스. [중앙포토]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의 글라스하우스. [중앙포토]

제주도에 지은 ‘유민 미술관’에 그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정사각형의 박스 안쪽 주변을 좁은 램프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진입부를 만들었다. 이 좁은 골목길은 점점 내려가는 램프이기 때문에 걸을수록 골목이 점점 깊어지는 아날로그적인 전이를 느끼게 해준다. 특이한 점은 길이 좁기 때문에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와 나올 때 해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공간이 다르게 보인다. 그림자가 없던 곳에 새롭게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해가 안 들던 곳에 해가 비친다. 이렇듯 너무 느려서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변화를 공간의 체험을 통해서 느끼게 해주는 방식이 안도가 자연을 해석하고 건축에 들이는 방식이다.
 
반면 이타미 준은 자연 속에 어우러지게 자연의 형태를 모방한다. 제주도에 지어진 이타미 준의 포도호텔의 지붕은 제주도의 주변 지형과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다. 그냥 그곳에 있는 언덕이 그대로 지붕이 된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안도의 건축은 동영상이다. 그의 건축은 진입 시퀀스가 상당히 중요하다. 들어가는 입구의 장면과 그다음 장면과 그다음 장면이 연속되어서 전체적인 공간의 심상이 완성된다.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의 방주교회.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의 방주교회.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반면에 이타미 준의 건축은 스틸 사진이다. 동영상적인 메시지 전달보다는 서정적인 장면 하나가 더 중요한 건축이다. 그래서 안도가 그린 그림은 투시도가 많고, 이타미 준이 그린 그림은 평면적인 입면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이타미 준. [중앙포토]

이타미 준. [중앙포토]

둘의 건축을 그림으로 비유하면 안도가 석고 데생, 이타미 준은 수채화다. 안도는 콘크리트 재료 하나만 사용하면서 절제를 통해서 흑백의 빛으로 공간을 보여준다. 노래로 치자면 가사 없이 멜로디와 화음으로 승부하는 연주곡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 이타미 준의 건축은 재료가 중요하다. 그는 일본에서 카페 인테리어에 침몰당했던 인양한 배의 나무를 이용하거나 철거된 서울대 건물의 벽돌을 가져다가 건축을 했다. 건축 재료가 가진 시간의 의미를 마치 물감처럼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다. 이 같은 오래된 재료들은 사연이 있는 노래 가사처럼 건축공간에 느낌을 심는다.
 
서로 다른 두 건축가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안도의 ‘빛의 교회’와 이타미 준의 ‘바람 박물관’이다. 빛의 교회는 네모난 콘크리트 박스인데 안에 들어가면 십자가 모양으로 난 틈으로 빛을 들어오게 해 콘크리트 박스 속 ‘빛의 십자가’를 만든 작품이다. 이타미 준의 바람 박물관은 제주도에 많다는 바람, 돌, 물을 각각 전시하는 박물관 시리즈 중 하나다. 그 가운데 바람 박물관은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나무로 만든 창고다. 다만 바람을 모을 수 있게 입면이 완만한 곡면으로 처리됐다. 벽을 막는 널빤지 사이에 좁은 틈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공간 속에서 관찰자의 동공이 넓어지면서 비로소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이며 틈이 강하게 인식된다.  
 
빛의 교회와 바람 박물관은 둘 다 좁은 틈을 통해서 한 작품은 빛을, 또 다른 작품은 바람을 들어오게 했다. 건축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자연을 여과하고 자연의 본질만으로 공간을 완성하게 한 훌륭한 작품들이다.
 
안도는 서양에 대한 동경과 동양에 대한 연민이 함께 공존하는 패전 세대다, 그래서 그의 건축에는 서양 건축의 특징인 기하학과 일본전통 건축의 특징인 복잡한 시퀀스를 합친 하이브리드 건축을 만들어 존재의 내적 갈등을 승화시킨다.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의 작품에는 내면의 두 정체성의 충돌과 공존이 보인다.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도 포도호텔. [중앙포토]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도 포도호텔. [중앙포토]

흔히 두 건축가의 유사성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작품은 안도의 ‘나오시마 현대미술관’과 이타미 준의 ‘제주도 물의 박물관’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보이는 건축물도 이 건축물이다. 안도의 미술관은 타원형 구멍의 공간인데 물의 박물관은 네모 위에 타원을 겹쳐서 얹은 모양새다. 그것도 어느 것 하나가 더 크지 않고 같은 크기로 접하게 둘을 포개어 네모와 동그라미가 4개 지점에서 접한다.
 
네모와 동그라미가 겹쳐져서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은 2000년 전쯤에 지어진 동로마제국의 ‘하기아 소피아’다. 하기아 소피아는 네모와 원 두 가지 공간을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이로써 기존에 적은 수의 사람이 지하무덤 카타콤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리던 것에서 나와 많은 사람이 모일 대형집회장소가 필요해졌다.  
  
건축가는 공간으로 답을 찾는 구도자
 
그들은 당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서 재판이나 장사를 하던 바실리카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성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종교건축의 대표인 판테온의 돔을 가지고 왔다. 하기아 소피아는 직사각형의 바실리카 평면도에 판테온의 둥그런 돔을 얹은 것이다. 이때 동그란 부분과 네모진 부분의 사이는 ‘펜던티브’라고 불리는 3차원 곡면으로 이어 붙였다.  
 
그런데 이타미 준의 물의 박물관에서는 타원과 네모가 중재자 없이 맞닿아서 충돌하듯 공존한다. 이 모습은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 내에서 살고 동시에 한국에서 일본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다른 두 자아의 충돌과 공존을 보는 듯하다. 상부의 동그란 원이 하부의 네모진 공간 코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펜던티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드는 것으로 답했다. 혹자는 이 부분의 디자인이 어색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면에 두 개의 자아가 공존했던 이타미 준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건축 작품은 하기아 소피아처럼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기도, 동시에 안도나 이타미 준의 작품처럼 개인 내면을 투영하기도 한다.
 
이타미 준의 대표작들은 제주도에 많다. 이타미 준이 자라난 일본의 시미즈는 후지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다. 한라산과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풍경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는 제주도에서 고향인 일본 시미즈의 느낌과 동시에 모국인 한국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제주도라는 도화지를 받은 것이다.  
 
건축가들은 결국 시대의 자식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갈등에 대해서 공간으로 답을 주는 구도자들이다. 그래서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제주도에 가면 안도와 이타미 준의 건축물이 많다. 다음 제주도 방문 때는 이 둘을 비교해보면서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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