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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분양도 소용없고, 마냥 미룰 수도 없고…강남 재건축 10월의 공포

상한제 폭탄, 혼돈의 부동산 시장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정부의 분양가 (간접)규제를 피하려고 후(後)분양을 추진했는데, 상황이 또 바뀐 것 같아요. 내일(24일) 임시총회를 연다고 하니, 규제를 받더라도 선(先)분양을 할지, 아니면 좀 더 버틸지(후분양) 최종 결정할 것 같네요.”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청담공원 앞 사거리 인근의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상아2차 재건축조합원은 “분양가 상한제로 일이 꼬여 버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12일 분양가 상한제를 10월부터 민간택지로 확대키로 하면서 서울 강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구) 재건축 단지가 혼란에 빠졌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 10월 시행
분양 앞둔 곳 소급 적용 직격탄

선분양하고 공사비 절감 추진
진행 중인 단지 해법 찾기 비상

“장기적으론 수급 불균형만 초래”
매매 막히면 전세대란 부를 수도

규제 적용 지역·시기를 못 박은 건 아니지만 부동산시장에서는 당연히 강남권이 첫 타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상아2차나 강동구 둔촌주공처럼 이주·철거까지 진행한 단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간 정부는 규제를 하더라도 사업이 거의 끝난(관리처분계획) 곳은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이번엔 ‘소급(遡及·과거 사안까지 적용)’키로 했다. 상한제를 10월 강남권에서 시행한다면 상아2차·둔춘주공 등이 모두 대상이 된다. 소급적용과 관련해 위헌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를 따져볼 겨를도 없다. 당장 선분양을 할 것인지, 후분양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관리처분계획을 세우지 않은 단지는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상한제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재건축조합은 마감재 품질을 낮추는 식으로 공사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다른 조합은 조합원에게 ‘1+1’ 분양을 독려해 일반분양 물량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사업 초기 단계인 곳은 가구 수 증가가 거의 없는 ‘1대 1 재건축’으로 사업 방식을 바꾸거나, 사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송파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상한제로 도저히 사업을 할 수가 없다”며 “(정권이 바뀔 때까지) 사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상한제는 땅값에 표준형 건축비를 더해 분양가를 산정한 후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권력이 시장가격을 통제하는 것이어서 대표적 ‘반(反)시장 정책’으로 꼽힌다. 재건축·재개발은 특히 사업 구조상 일반분양 수익이 사업 성패를 좌우하므로 상한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상한제로 사업성이 떨어지면 재건축의 투자 매력이 줄어 가격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여러 비판에도 상한제 카드를 꺼낸 이유다.  
  
분양가는 확실히 잡을 수 있어
 
철거가 한창인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 상한제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철거가 한창인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 상한제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신정섭 신한은행부동산투자자문센터 차장은 “지난해 9·13 대책 이후 잠잠하던 재건축 아파트값이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자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4월 셋째 주(19일 기준) 상승세로 돌아선 후 상한제 개선안이 나온 8월 셋째 주까지 18주 연속 상승했다.
 
주요 재건축 단지가 후분양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도 상한제 도입의 결정타가 됐다. 상아2차·반포우성·둔촌주공 등이 HUG의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후분양을 검토 중이었다. HUG의 분양가 산정기준(주변 분양가의 105% 이내)을 따른다면 이들 단지의 일반분양 분양가는 3.3㎡당 4000만원 중후반대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후분양을 해 간접 규제를 피하면 주변 시세 수준(3.3㎡당 6000만~7000만원대)에도 분양할 수 있다. 정부가 위헌 논란이 일 게 뻔한 데도 소급적용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한제를 적용하면 서울 강남권 아파트의 분양가는 확실히 잡을 수 있다. HUG를 통한 분양가 규제가 조합이 설정한 분양가를 ‘조금 깎는’ 수준이라면, 상한제는 분양가를 산정할 때부터 정부가 강력히 개입하기 때문이다. 상한제를 적용하면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도 가능할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다. 분양가가 내려가면 주변 집값도 안정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본다. ‘분양가 상승→집값 상승→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한제 확대 발표 이후 주택시장은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18주 연속 상승하던 서울 재건축아파트값은 8월 넷째 주(23일 기준) 0.03% 내렸다.
  
새 아파트 ‘호가’ 벌써 꿈틀
 
서울 아파트 매매율 변동

서울 아파트 매매율 변동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아파트에 수요가 일부 몰리고 있지만, 추격 매수세는 뜸한 편이다. 서초구 반포동의 대방부동산중개업소 김순영 실장은 “정부가 또다시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은 만큼 투자심리가 꺾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단기적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굳이 기존 아파트를 사지 않고 저렴한 상한제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는 관망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수요자의 관심이 단기적으로 신축 아파트나 일반 아파트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거래가 크게 증가할 확률은 낮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상한제 효력이 오래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와 시장의 중론이다. 되레 상한제가 주택 공급 속도를 늦춰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이 나빠지고, 이에 따라 조합원 간 갈등이 심화하면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더라도 시차를 두고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한제가 전세시장을 들쑤실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동산114 조사결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8월 넷째 주(23일 기준) 0.02% 올라 6월 셋째 주(21일 기준) 이후 10주째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렴한 매매 수요가 상한제 아파트를 기다리기 위해 전세로 눌러 앉으면 전셋값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달 23일까지 주택법 시행령 등 상한제 관련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후 10월 초 공포·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상한제 적용 지역·시기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 그러나 상한제 시행도 전에 법원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재건축조합을 중심으로 헌법소원이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변호사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헌법소원이 제기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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