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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끝에 ‘나폴레옹 캡’ 붙여…위암 세포 회 뜨듯 떼내

[J닥터 열전] 조주영 분당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조주영 교수의 드론 조종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는 ’재미있고 내시경 조작을 위한 연습도 되는 일석이조의 취미“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조주영 교수의 드론 조종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는 ’재미있고 내시경 조작을 위한 연습도 되는 일석이조의 취미“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손바닥만 한 드론이 공중에서 춤을 춘다. 한자리에 멈춰있다가 수직으로 올라가더니 갑자기 공중제비를 돌며 훅 떨어진다. 보는 사람이 아찔한 ‘곡예비행’에도 조종기를 잡은 분당차병원 소화기내과 조주영(58) 교수는 여유로움이 넘쳤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띤 모습이 아이처럼 해맑았다.
 

복강경·내시경 동시 수술법 첫 도입
난치성 소화기 질환 새 치료길 열어

세계 최대 학술대회서 11연속 수상
수술 영상 각국 의사 ‘시청각 교본’

“전 세계 내시경 90%가 일본 제품
국내기업 국산화 더 미루면 안 돼”

회원이 8000명에 달하는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차기 이사장. 위암 등 난치성 소화기 질환을 칼 대지 않고 치료하는 ‘신의 손’.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대회에서 11년 연속(2006~2016년) 시청각 교육 비디오상을 거머쥔 ‘내시경 수술의 교본’. 의사 조주영에게 붙은 수사는 하나같이 비범하다. 하지만 가운을 벗은 그는 영락없는 키덜트(Kidult, 아이와 어른의 합성어로 ‘아이 같은 어른’을 뜻함)다. 플레이스테이션·X박스 등 게임기는 종류별로 모았고 특히 RC카·RC헬리콥터·드론처럼 움직이는 장난감은 맘에 들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해외에 나가도 남들이 관광지를 갈 때 그는 혼자서 유명 전자상가를 찾는다. 내시경을 다루는 의사라 손을 쓰는 취미를 들인 걸까. 뜻밖에도 “나는 의사보다 공학도가 꿈이었던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게임·드론 즐기는 ‘키덜트’ 의사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좋아했나.
“청계천 아세아상가, 동대문 아카데미 과학이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명절 때 받은 용돈을 모아 ‘007 키트’나 프라모델을 사서 조립하는 게 낙이었다. 중학교 때는 납땜질을 하다 담요에 불이 붙어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애초에 대학도 의예과가 아니라 전자공학과로 진학했었다.”
 
의사로 진로를 바꾼 계기는.
“어머니가 ‘안정적인 개원 의사’를 강력히 원하셨다. 대학과 재수학원을 동시에 다녔고 후기인 순천향대 의대 3회로 입학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동기 중에서 6년간 한 번도 재시험을 안 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손에 꼽는다. 당시만 해도 상위권 학생들은 내과·외과·산부인과처럼 힘든 과(科)를 택했다. 나도 석사(레지던트)를 심장내과로 수료했다. 그땐 병원이 집이었다. 매일 내시경·초음파를 끼고 살았다.”
 
소화기내과 전공은 어떻게 선택했나.
“레지던트를 마칠 무렵 나를 눈여겨보던 소화기내과 심찬섭 교수의 권유로 전공을 바꿨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어머니의 뜻을 따라 대학을 나왔고 3년쯤 종합병원에서 일했다. 그 병원이 수련병원이었는데 의사들 교육할 겸, 나도 공부할 겸 인근 대학병원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나중에는 도서관 사서가 열심히 한다며 출입증까지 끊어주더라. 그렇게 독학하는 과정에서 돈보다 환자를 쫓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해 순천향대에서 펠로(전임의)부터 다시 시작했다.”
 
대학으로 돌아온 조 교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실력을 뽐냈다. 내시경으로 조기 위암을 치료하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ESD)’(2000년)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데 이어 내시경·복강경을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노츠’(2009년)라는 수술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유 없이 식도가 막히는 식도 무이완증(아칼라지아)에 ‘경구 내시경 근층절개술(POEM)’(2011년), 약물이 듣지 않는 역류성 식도염에 ‘항역류 내시경 수술’(2013년) 등 국내 난치성 소화기 질환 환자에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수술 실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매년 2만여 명의 의학자가 모이는 미국 소화기질환 주간학술대회(DDW)에서 11년 연속 시청각 교육 비디오상을 수상한 건 조 교수만이 가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가 만든 내시경 수술 영상은 세계 각국의 내시경 의사들에게 ‘시청각 교과서’로 판매되고 있다.
 
내시경 대가(大家)가 된 비결이 있나.
“내시경의 방향 조합은 수백 가지나 된다. 한 손으로 내시경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다른 손으로 내시경을 넣다 빼고, 비틀고, 몸·발의 위치까지 바꾸지 않나. 손 쓰는 걸 좋아해서 인지 내시경 조작도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장비나 치료법을 접할 때는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머릿속에 금방 그려진다. 이런 ‘공학도 마인드’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내시경용 기구도 직접 만들었다던데.
“3D 프린터를 이용해 내시경 끝에 붙이는 ‘캡’을 개발했다. 그중 하나가 모자 모양의 ‘나폴레옹 캡’이다. ESD는 위암 조직을 회를 뜨듯 떼는 수술인데, 중력 때문에 잘라낸 조직이 자꾸 내려와 수술 부위를 덮어버린다. 이때 모자 모양의 캡을 쓰면 자른 조직을 받칠 수 있어 수술이 훨씬 편하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공학도 마인드 수술에 큰 도움”
 
반향이 컸을 것 같다.
“내게 의학이란 응용과학이다. 특히 내시경은 장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그래서 앞서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걸 시도할수록 적이 늘더라. ESD를 처음 할 때는 외과 의사들이 ‘내시경으로 어떻게 암을 치료하느냐’며 발끈했다. 공초점 현미경 내시경이라고 조직을 1000배까지 확대해 실시간으로 종양의 악성 여부를 판별하는 장비가 있다. 이를 들일 때는 이제 병리과에서 ‘조직검사가 불필요한 게 말이 되냐’고 반발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나를 싫어하는 의사가 꽤 있다. 세계 내시경 시장의 90%가 일본제품이다. 근데 내시경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내니 배가 아프겠지.”
 
조 교수는 20년 전부터 내시경 국산화를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 내시경 제품이 나와도 프로토타입(초기 모델)은 한국에 안 넘어온다. 경쟁자라며 일본 의사들이 막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일본이 워낙 강한 분야라 그런지 국내 기업들은 돈이 안 된다며 나서질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최근 한·일 갈등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내시경 수출 금지하면 큰일인데”란 말이 오간다. 그때마다 그는 “더는 국산 내시경 개발을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고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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