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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고래를 쫓아 “항해 뒤에 또 항해…인생은 그런 것”

록웰 켄트가 그린 『모비 딕』 일러스트 버전. 미국에서 1930년 첫 출간됐다. [사진 문학동네]

록웰 켄트가 그린 『모비 딕』 일러스트 버전. 미국에서 1930년 첫 출간됐다. [사진 문학동네]

“책을 손에서 내려놓자마자 ‘내가 썼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다.”(윌리엄 포크너)
 

『모비 딕』 작가 멜빌 탄생 200주년
현대적 메시지, 갈수록 높은 평가
새 번역본과 그래픽노블 등 나와
등장인물 이름서 ‘스타벅스’ 유래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작품 중 하나다.” (D H 로렌스)
 
세계적인 작가들이 이렇게 격찬한 책이 있다.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1819~1891)의 장편 소설 『모비 딕』이다. ‘책벌레’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가장 좋아하는 책 10권’에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꼽은 ‘내게 영감을 준 문학 작품’ 목록에도 『모비 딕』이 있었다. 노벨연구소가 선정한 ‘세계문학 100대 작품’에도 포함됐으며,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과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 등도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로  『모비 딕』을 꼽은 바 있다.
 
『모비 딕』은 전설의 흰 향유고래와 인간의 치열한 사투를 그린 소설이다. 24만 단어가 넘는 장대한 분량에 비해 플롯은 단순하다. ‘모비 딕’이란 이름의 향유고래에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이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의 선원들을 이끌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지나 북태평양까지 간 다음 결국 적도 부근에서 모비 딕을 만나 장렬히 침몰한다는 이야기다.
 
허먼 멜빌

허먼 멜빌

올해는 허먼 멜빌이 탄생한 지 200년 되는 해. 열린책들·동서문화사·작가정신 등 이미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 있는 가운데, 문학동네 출판사는 멜빌 탄생 200주년을 맞아 황유원 시인의 새 완역으로 소설을 세계문학전집, 일러스트, 그래픽노블 등 세 가지 버전으로 펴냈다.
 
1851년 첫 출간 당시만 해도 『모비 딕』은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식 묘사와 생소한 형식, 난해한 서술로 혹평받았다. 멜빌이 죽기 4년 전부터는 아예 절판됐을 정도다. 하지만 멜빌이 세상을 떠나고 평론가 레이먼드 위버가 극찬하는 평론을 발표하며 재조명됐다. 신문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명예교수는 “멜빌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19년 그에 대한 전기가 처음 나왔을 정도로 뒤늦게 조명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모비 딕』은 미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세계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대중에게는 커피체인점 ‘스타벅스’의 이름이 유래한 소설로 유명한데, ‘스타벅스’는 피쿼드호의 일등 항해사 이름 ‘스타벅’에서 따왔다.
 
이달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모비 딕』 의 일러스트 버전. [사진 문학동네]

이달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모비 딕』 의 일러스트 버전. [사진 문학동네]

출간 160여 년이 지났는데도 『모비 딕』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대적 메시지’를 첫손에 꼽는다. 소설에는 포경선에서의 고된 생활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나온다. 선원들이 어렵사리 잡은 고래를 처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하면 또 다른 고래가 나타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허먼 멜빌은 이에 대해 “인생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적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 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 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 번째 항해가, 그 뒤에도 또 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다.” ( 『모비 딕』 중에서)
 
『모비 딕』 의 새 번역본. [사진 문학동네]

『모비 딕』 의 새 번역본. [사진 문학동네]

최근 『모비 딕』을 완역한 황유원 시인은 “어떻게 보면 사람의 삶이라는 게 영원히 쉬지 못하고 노력만 하다가 죽는 것인데, 포경선에서의 작업은 인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우리가 속한 사회나 집단을 돌아보게 한다. 신 명예교수는 “멜빌은 다양한 인종의 선원들이 배 안에서 힘을 합쳐 고래를 잡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종 차별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면은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하는 현시대에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양근 문학평론가(부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소설 속 포경선은 사회의 모형이자 일종의 소우주를 상징”한다. ( 『모비 딕 다시 읽기』 중에서) 황 시인이 “포경선은 국가, 리더는 선장, 국민은 선원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 시인은 “에이해브 선장은 좋지 않은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에 동조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집단의 전형을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리바이어던 혹은 고래』를 쓴 영국 작가 필립 호어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이 소설은 매우 전복적인 작품”이라며 “멜빌이 마치 미래를 살아본 것처럼 그려낸 현대 사회 지형도”라고 썼다. 탁월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멜빌은 대량 멸종과 기후 붕괴를 예측하고, 한정된 자원을 좇는 포경업은 세계화의 징조를 보여줬다. 소설 속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체인에 이름을 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모비 딕』의 또 다른 가치는 사소한 것을 보편적인 주제로 밀고 나가는 힘에서 나온다. 총 135장으로 구성된 책엔 장마다 ‘포경 밧줄’ ‘고래 그림’ ‘돛대 꼭대기’ ‘나침반과 바늘’ ‘구명부표’ 등 고래와 포경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담겼다. 황 시인은 “멜빌이 작은 소재에서 시작해서 결국에는 인간 보편적인 이야기까지 끌고 가는 것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포경 밧줄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해 밧줄에 얽힌 듯 살아가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모비 딕』의 매력이다. 2010년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모비 딕』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김석희(67) 번역가는 “시대나 독자에 따라 읽는 방식이나 가치가 바뀔 수 있는, 재해석의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라며 “처음에는 선원과 고래의 싸움이 신과 인간의 대립 관점에서 읽혔지만, 나중에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힐 정도”라고 전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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