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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요즘 바람났나?" 집 늦게오는 이유를 묻는 앞집 언니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2)

요즘은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7시다. 손녀가 방학이라 등굣길 동행도 휴무이고 출근도 느긋하니 날마다 늦잠이다. 그래도 오후 시간엔 무더운 7, 8월을 방학특강처럼 학습으로 꽉 채워 놓았다. 늘그막에 하모니카, 스토리텔링, 스피치 등 배우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
 
어제는 내가 근무하는 고택에도 불천위 큰 제사가 있어서 일도 늦게 끝났다. 그렇게 밤 10시가 훌쩍 넘어 귀가하면 곧바로 엎어져 자야 할 만큼 피곤하지만, 무언가 옹골지게 하루를 채운 느낌이라 기분은 더 좋다.
 
새벽같이 일어나 텃밭 고랑에 물을 듬뿍주고 오는 길. 벌써 밭에서 일을 한 타임 마치고 돌아가는 앞집 언니를 만났다. [사진 pxhere]

새벽같이 일어나 텃밭 고랑에 물을 듬뿍주고 오는 길. 벌써 밭에서 일을 한 타임 마치고 돌아가는 앞집 언니를 만났다. [사진 pxhere]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해가 짧아져서 그런가 무더운 여름이라도 으스스하게 컴컴하다. 돌보지 못한 텃밭 고랑에 물을 듬뿍 주고 100포기도 안 되는 고추지만 특별히 예방 차원으로 약도 살포했다. 작은 오토바이가 덜덜거리며 지나간다.
 
"아이고 새댁아, 우째 오늘은 얼굴을 다 보네. 별일이다야.”
무어라 소리치고 지나가는 앞집 언니는 벌써 밭에서 일을 한 타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가 보다. 언니가 집으로 불쑥 들어오더니 날 붙들어 자리에 앉힌다.
 
“야야, 니 요즘 바람났나? 9시에도 차가 안 보이고, 10시에도 안보이고….”
내 얼굴을 살피며 심각하게 묻는다. 나는 빵 터져서 깔깔 웃었다.
 
 
시골에 살적 동네 입구엔 일찍이 혼자가 된 여성 2가구가 살고 있었다. 한 분은 젊고 예뻤으며 나랑 동갑인지라 친구가 되었다. 만나면 푸념 섞인 우스개로 혼자 살면서 겪는 애환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모르는 남자가 다녀간 날이면 온 동네 어르신들이 어디서 지켜봤는지 모두 궁금해한다는 거였다.
 
누가 다녀간 후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의 인사는 항상 “누고?” 였다고 한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부재중에 개가 크게 짖으면 누가 나와도 나와서 묻는다. “누군교? 이 댁이랑 뭐 되는교?” 자기 일에 바쁘면 남의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텐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무료하니 그것도 재밌는 소통이다.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간섭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사진 pxhere]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간섭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사진 pxhere]

 
아파트에 살면 아무도 내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부딪히면 서먹서먹하다. 작은 아파트는 그래도 그만큼은 아니다. 서로 오가기도 하고 화기애애하다. 나는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방법을 택한지라 동네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간섭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어쩌면 고맙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바람난 것이 맞다. 대상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이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웃어넘기기로 했다.
 
열정, 무엇에 몰입하고 미치는 그것은 설명이 되지 않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다. 젊은 날 사랑에 미쳐 부모의 감시와 눈총 속에서도 바늘구멍 같은 틈새를 빠져나와 목적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고,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집까지 십 리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다가 먼동이 트고, 그렇게 부질없이 소비한 헛된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열정이다.
 
그런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해 보지 않고서야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으리라는 어느 책의 구절처럼 지금 나는 바람이 든 무같이 60년이 넘은 나이에 용암처럼 솟아 나오는 배움의 열정에 날마다 흥분상태다. 훗날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쓸데없는 것일지라도 지금은 그 몰입의 시간이 좋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한 번 더 읽어본다.
 
젊은 날, 부끄럽게도 나는 60살이 넘으면 아무런 생각도, 꿈도 없는 그냥 노인이 되는 줄 알았다. 미안하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이 있으면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되면 남들이 알고 싶은 것이 많아 관심받는 건 당연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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