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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타이틀보다 태극마크 탐나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코치와 선수로 금메달을 딴 이종범(왼쪽)-이정후 부자. [연합뉴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코치와 선수로 금메달을 딴 이종범(왼쪽)-이정후 부자. [연합뉴스]

아버지가 썼던 왕관을 아들이 차지할 수 있을까. 이종범(49·LG 트윈스 2군 총괄)이 선수 시절 따냈던 최다안타 타이틀에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가 도전한다.
 

페르난데스와 안타왕 자존심 경쟁
아버지 이종범은 94년 안타 1위

19일 현재 이정후는 114경기에 출전해서 155안타를 쳤다. 호세 페르난데스(두산)와 공동 1위다. 남은 경기는 두산이 3경기 더 많다. 안타왕을 놓고 시즌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정후가 안타왕에 오른다면 프로야구에 새 역사를 만든다. 38년 KBO리그 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같은 타이틀을 따내는 것이다.
 
이종범 코치는 1994년(당시 해태) 안타 196개를 날려 최다안타왕에 올랐다. 지금까지도 이 기록은 단일 시즌 최다안타 2위로 남아 있다. 역대 1위는 2014년 서건창(키움)이 때린 201개다. 지금 추세라면 이정후는 190개를 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정후는 타이틀에 관심이 없다. 그는 “(페르난데스의) 기록을 보지 않는다. 욕심을 내다 페이스가 떨어진 적도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기록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키움에 입단한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로 유명했다. 이정후는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기량(타율 0.332)을 펼치며 신인왕에 올랐다. 국가대표 유격수이자 ‘야구 천재’로 유명했던 이종범도 신인왕(93년 삼성 양준혁이 수상)이 되진 못했다. 젊은 나이에 스타가 된 아들을 보며 이종범 총괄은 “사람들이 나를 ‘정후 아빠’로 부른다. 이제는 익숙한 호칭”이라며 흐뭇해 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2년차 징크스를 이겨내며 타율 3위(0.355)에 올랐고, 올해 3년차 역대 최고 연봉(2억3000만원) 기록을 세웠다.
 
이정후는 더 성장했다. 지난해까지 그는 밑에서 위로 퍼올리는 ‘어퍼컷 스윙’을 했다. 때문에 하이패스트볼에 약점을 드러냈다. 스트라이크존을 9개로 구분했을 때 지난해 몸쪽 높은 직구에 타율 0.231(스탯티즈 기준), 가운데 높은 직구에 0.240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올해 스윙궤적 변화를 통해 같은 코스 타율을 0.563, 0.368로 끌어 올렸다.
 
이정후는 “내 약점이 높은 직구란 걸 나도 잘 안다. 그걸 억지로 치려고 하지 않는다”며 “(좌익수 쪽으로) 밀어쳤을 때 결과가 좋지 않다. 때문에 (바깥쪽 공이라도) 당겨쳐서 더 강한 타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21세 선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확고한 타격 이론을 갖고 있다.
 
이정후가 욕심내는 건 타이틀보다 태극마크다. 그는 2017년 24세 또는 프로 3년차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출전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종범 코치와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정후는 “2년 연속 대표팀에 뽑혀서 좋았다. 올해 목표는 팀 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과 프리미어 12 출전이다. 내년 도쿄올림픽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신인왕 강백호(20·KT), 올해 신인왕 후보 정우영(20·LG)·원태인(19·삼성) 등과 ‘베이징 키즈’로 불린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베이징올림픽을 보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웠다. 후배들에게 그런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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