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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투어 첫 승' 이덕희 "못할 거라고 했지만, 해냈어요"

"저는 듣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놀렸습니다. 테니스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죠. 분명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해냈죠. 청각장애인들에게 '낙담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 테니스 선수 이덕희가 20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첫 승을 거뒀다. [AP=연합뉴스]

청각장애인 테니스 선수 이덕희가 20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첫 승을 거뒀다. [AP=연합뉴스]

 
듣지 못하는 테니스 선수 이덕희(21·서울시청·현대자동차 후원)이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생애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고 이렇게 말했다. 
 
세계 랭킹 212위 이덕희는 20일(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투어 250시리즈 윈스턴세일럼 오픈 1회전(64강전)에서 헨리 라크소넨(27·스위스·120위)을 세트 스코어 2-0(7-6, 6-1)으로 이겼다. 
 
ATP 투어 대회는 보통 100위 이내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그래서 이덕희는 이전까지 투어 대회 본선에 직행하지 못하고 예선을 치러야 했다. 5차례 출전했지만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운이 좋았다. 22번째 대기 선수였는데 본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대거 기권하면서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첫 승을 거뒀다. 
 
ATP투어 홈페이지는 메인 화면을 이덕희로 장식하고 "투어 본선에서 승리한 사상 첫 청각장애 선수"라며 "이덕희가 새 역사를 썼다"고 전했다. 이어 이덕희의 역경 극복을 다룬 과거 인터뷰 영상도 다시 게재했다.
 
이덕희는 "ATP 투어에서 첫 승을 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길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는데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 안하고 시합했던 것이 승리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일 3번 시드와 시합 하게 되는데 많이 긴장되고 쉽진 않겠지만 즐겁게 열심히 시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덕희는 21일 오전 2회전(32강)에서 세계 41위 후베르트 후르카치(22·폴란드)를 상대해 1-2(6-4, 0-6, 3-6)로 졌다.
 
청각장애인 테니스 선수 이덕희가 20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첫 승을 거둔 소식을 톱 화면에 띄운 ATP 공식 홈페이지. [사진 ATP 홈페이지]

청각장애인 테니스 선수 이덕희가 20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첫 승을 거둔 소식을 톱 화면에 띄운 ATP 공식 홈페이지. [사진 ATP 홈페이지]

 
이덕희는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2세 때 듣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듣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덕희는 상대 입술 모양을 읽고 소통을 했다. 가족과 코치가 그의 말을 어렵게 알아들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전달해줬다. 
 
그런 이덕희가 일곱 살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책 읽을 땐 10분도 앉아있지 못했지만 테니스를 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공 튀는 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눈에 불을 켰다. 주위 소음이 들리지 않아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이덕희 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엘리트 스포츠에서 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심판판정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해 답답한 적도 많았다. 이덕희는 "공이 코트,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투어 첫 승리 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약혼자의 도움을 받았다. 기자들의 영어 질문을 한국어로 통역하고, 그 질문을 약혼녀에게 전달하면 그 입 모양을 보고 이덕희가 내용을 파악해 말을 했다. 그리고 약혼녀가 이덕희의 답변을 듣고 통역사에게 전달했다. 
 
이덕희는 귀가 안 들리는 대신 눈이 발달했다. 시력은 1.2인데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상대 스윙을 보고 공의 구질과 방향·스피드를 예측해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으로 프로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2015년 윔블던 대회 중 노박 조코비치와 훈련한 이덕희. [사진 S&B컴퍼니]

2015년 윔블던 대회 중 노박 조코비치와 훈련한 이덕희. [사진 S&B컴퍼니]

이덕희의 인간승리 스토리는 세계 무대에도 알려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세계적인 언론사에서도 이날 이덕희의 승리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덕희는 2017년 4월 세계 130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성적이 좋지 않아 랭킹이 200위 밖으로 밀려났다.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를 뛰면서 신체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덕희는 꿋꿋이 테니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2013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6년 만에 ATP 투어 대회에서 첫 승리를 따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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