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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한국사학자 카이텐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광복절에 하필 왜 이 책을 집었을까? 이영훈 교수(외), 『반일(反日) 종족주의』. 무모하고 섬뜩했다. 그의 평생 연구는 ‘식민통치 하 경제발전’을 입증하는 것. 생산성과 소득 각 영역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기에 일제를 착취로만 회칠할 수 없다는 것. 수탈론에 성찰을 촉구한 것은 분명한 업적이다. 이 책도 그러려니 했다.
 

일제의 개발 효과 부각한 학문 소신
결국 일본 면책, 한국 원죄로 귀결
‘반일 종족주의’가 외교 파탄 주범?
일본의 ‘선민적 인종주의’는 외면

그런데, 성찰은커녕 아예 ‘일본면책론’까지 치달았다. 과거사를 핏빛 원한으로 재현하는 한국인의 야만적 심성, 소위 ‘반일 종족주의’가 한·일 관계를 파탄 낸 주범이다! 최근의 쟁점에도 충격 판결을 내렸다. ‘한국의 맹목적 적대감이 원죄, 일본은 무죄다.’
 
독자들은 사료와 통계에 압도돼 기가 꺾인다. 원로학자의 이런 행군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붕괴 일로의 조선에는 희망은 없었고 결국 제국 쟁탈전에서 망국(亡國)이 운명이었다는 체념 의식. 윤치호가 그랬다. 항일운동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자 무력한 조선을 절감했다. 출옥 후 그가 매진했던 것이 실력양성론, 3·1운동을 불장난이라 나무랐다. ‘2·8 독립선언서’를 초안한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으로 돌아선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교수 역시 일제의 폭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억압 속에 싹튼 한국인의 근대화 노력이 소중하다면서도 주로 일제의 개발 효과를 부각시키는 항로를 개척했다. 그가 도착한 항구는 일본공적론, 무죄론이다.
 
체념 속에 핀 꽃인가. 일제의 개발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급기야 민족주의론에 창을 겨눈다. 식민사를 착취와 수탈로 상품화해 문화 권력을 움켜쥔 사기꾼들이다. 필자도 맹신 민족주의를 경계하지만, 그의 논조는 2015년 일본 현지 대담에서 자위대 참모총장 다모카미 도시오(田母神俊雄)가 뱉은 그것이었다(이 다큐멘터리는 KBS에서 방영됨). 도시오는 포효했다. ‘당신이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것은 대일본제국의 은혜다.’ 필자가 꾹 참고 물었다. “위안부는?” “돈벌이 매춘이다.” “그럼 징용은?” “그걸로 먹고 살았다.” 놀라지 마시기를. 이 책에 그대로 쓰여 있다. ‘위안부는 조선인의 기업형 매춘이며, 조선 관기, 종군위안부, 미군기지촌 여인은 같은 계열이다’. 징용문제는 더 나갔다. ‘징용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조선인 갱부 평균임금은 교사의 4.6배, 현장에서 민족차별은 없었다.’ 그리곤 일갈했다. ‘왜, 배상 타령인가?’ ‘대법원은 왜 선동질인가?’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사료의 편파 선택’과 ‘일부로 전체를 왜곡하는 일반화의 오류’. 이 책은 대체로 밝고 정상적인 사료만 골랐다. 그렇다면 해방 후 부산항엔 돈 번 귀환자가 가득해야 했다. 십년 전 군함도(하시마)에 가봤다. 미쓰비시의 다카시마와 하시마 탄광에만 4000명 조선인 징용자가 노역했다. 하시마의 파도는 무서웠다. 왜 조선인들이 탈출하다 익사했을까?
 
고소득은 미끼였다. 주식과 생필품 비용을 공제하고 강제 저축, 국채 구입을 강요당해 실제 지급액은 쥐꼬리였다. 송금은 언감생심 빚진 사람이 속출했다 (그는 송금통장을 사진 자료로 실었다). 일본 패망으로 저축과 국채는 휴짓조각이 됐다(김호경 외, 『일제 강제동원』). 이런 자료는 산처럼 쌓여 있다. 일본군이 요청하지 않았다면 ‘종군위안부’가 가능했을까? 전쟁 말기, 왜 조선 처녀들이 결혼을 서둘렀나? 군 개입과 강제연행 입증 자료가 미국기록문서고에서 수차례 발견되었다(정진성 연구팀). 누가 거짓과 허위를 생산하고 있는가.
 
전범기업과 군(軍)이 요청하면 할당량이 내려왔다. 모집책, 면장과 순사가 같이 다녔다. 그는 계약서만 제시할 뿐 실상을 외면한다. 일본 후생성 통계로 징용 연인원 112만 명, 아베가 신임하는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는 군위안부를 5~8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 교수는 군위안부가 3600명이란다. 그중 소수 자료만으로 ‘강제동원, 강제연행은 허구’라고 판정했다. 정확히 ‘일반화의 오류’, 왜곡이다. 그 왜곡의 비수를 ‘한일청구권’에도 꽂았다. ‘애초에 한국은 청구할 게 없었다.’ 왜? ‘일본이 남긴 재산 52억 달러 중 남한이 22억 달러 물권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적산(敵産)은 일제의 전진기지였다. 1905년부터 40년간 한국에서 창출한 천문학적 자본수익금은 어디로 갔는가? 자국 민생과 전쟁에 쓰였다. 그래도 경제와 생활형편이 나아졌다!
 
그런 논조로 구축한 ‘반일 종족주의’ 개념 자체가 허구다. 종족주의는 근대 이전 어디나 존재했던 보편적 현상으로 지금껏 일부 유증되는 문화적 심성이다. 보편 현상을 한국 특수 집단심이라 매도하는 것은 설(說)에 불과하다. 일본의 ‘선민적 인종주의’는 거론도 안 했다. 신주(神州)의 천손(天孫)은 선.만.지(鮮.滿.支)와는 다르다는 광기의 신화는 그가 종족주의의 요소로 든 샤머니즘의 일본식 변종이다. 선민주의는 내선일체라는 민족 멸절의 인종 폭력으로 둔갑했다.
 
냉철한 반성이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식민지 한국을 원죄 국가로 바꿔치기해 잠수 공격하는 일제의 인간 어뢰, 카이텐(回天)이 되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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