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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은행 리스트가 '작품'....수퍼플렉스의 이유 있는 도발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등락 그래프를 포착해 제작한 조각 '커넥트 위드 미(Connect With Me). 2018, Steel tubes, polyurethane enamel paint 423 x 75 x 86 cm.  [사진 국제갤러리]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등락 그래프를 포착해 제작한 조각 '커넥트 위드 미(Connect With Me). 2018, Steel tubes, polyurethane enamel paint 423 x 75 x 86 cm. [사진 국제갤러리]

당신들은 건축가인가, 영화감독인가. 아니면 조각가인가, 화가인가. 
덴마크 출신의 3인조 아티스트 그룹 '수퍼플렉스'가 항상 듣는 질문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1993년 그룹을 결정한 이후 지금까지 25년 넘게 해온 그들이 해온 일 자체가 종횡무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3인조 그룹 부산서 전시 개막
'금융위기가 남긴 것들' 작품으로 조명
'비트코인' '해수면 높이' 소재 조각도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믿음에 경고

 
예를 들면,  2012년 이들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외곽 도심에 '수퍼킬렌(SUPERKILEN)'이라는 이름의 공공예술공원을 만들었다. 한때 빈민가였던 곳을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이 프로젝트는 수퍼플렉스가 이끌고 덴마크의 건축가그룹 BIG와 조경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렸고,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이 그 과정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이들에겐 세계 여러 도시로부터 공원 프로젝트 의뢰가 쇄도했고, 결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샤자에 길이 2㎞에 달하는 공원도 만들게 됐다. 설계 마무리 단계인 이 공간은 수퍼플렉스의 새로운 '작품'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아프리카한 주민을 위해 바이오가스 시스템을 만들었고, '지식은 공유돼야 한다'며 맥주 제조 레시피를 만방에 공유하는 프리비어(FREE BEER)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누구든지 원하면 이들이 제공하는 레시피를 쓸 수 있다는 취지의 '오픈 소스' 운동이다. 
 
2017년엔 현대 커미션 작가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초대형 전시장인 터바인홀에 '하나 둘 셋 스윙!'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그네를 설치했다. '하나 둘 셋 스윙!'은 지난 5월 국내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도 작은 규모로 설치됐다. 반드시 3인이 힘을 합쳐야 움직이는 이 그네는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독특한 공공예술 작품이다. 
 

경제, 어디까지 보았니?  

요즘 부산에서 '힙 플레이스'로 꼽히는 망미동의 문화예술공간 F1963. 최근 수퍼플렉스가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 둥지를 튼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다. 전시 제목은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 In our dreams we have a plan)'. 역시나 이번 전시도 범상치 않다. 금융위기·파산 은행·비트코인 등을 소재로 '경제'를 주제로 한 전시라는 점에서다. 
 
우선 이들은 전시장 벽 한쪽 벽면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은행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웠다. 17개에 달하는 검정 패널에 회색으로 쓰인 글씨, 그 형태가 아무리 봐도 거대한 묘비명 같다. 전쟁터에서 목숨 잃은 병사들 이름이 있을 법한 자리에 지금은 '역사'가 된 은행 이름이 적혀 있다. 제목도 ‘파산한 은행들(Bankrupt Banks)’이다. 
 
수퍼플렉스의 야콥(왼쪽)과 크리스티안센. 나머지 멤버 라스무스 닐슨은 방한하지 않았다. 벽면에 '파산한 은행들'이 보인다. 앞에 놓인 조각이 '커넥트 위드 미'. 비트코인 그래프에서 착안했다. [사진 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의 야콥(왼쪽)과 크리스티안센. 나머지 멤버 라스무스 닐슨은 방한하지 않았다. 벽면에 '파산한 은행들'이 보인다. 앞에 놓인 조각이 '커넥트 위드 미'. 비트코인 그래프에서 착안했다. [사진 국제갤러리]

부산 전시장에서 만난 수퍼플렉스의 두 멤버 야콥 펭거(51)와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50)은 "이것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계에서 일어났던 구조조정의 연대기"라며 "여기에 한국의 은행들 이름도 여럿 눈에 띈다. 자료 조사를 하며 예상보다 파산은행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파산한 은행들’ 작품은 더 있다. 이들 은행의 로고를 그린 회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신뢰'의 상징으로 쓰이던 로고가 이제는 본래 영역에서의 의미를 잃고 갤러리 공간의 '미니멀 추상화'로 남았다. 그들은 이를 가리켜 "실패한 권력 구조의 초상"이라고 말했다. 수퍼플렉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미술이 된 파산 은행 명단·로고 

'파산한 은행들'( October 30, 2013) Black painted MDF with printed letters 200 x 2040 cm. 안드레아스 짐머만 촬영, [사진 국제갤러리]

'파산한 은행들'( October 30, 2013) Black painted MDF with printed letters 200 x 2040 cm. 안드레아스 짐머만 촬영, [사진 국제갤러리]

'파산한 은행들' 로고 작품과 비트코인 가치 등락을 시각화한 조각 작품. [사진 국제갤러리]

'파산한 은행들' 로고 작품과 비트코인 가치 등락을 시각화한 조각 작품. [사진 국제갤러리]

파산한 은행들의 명단과 로고를 갤러리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우리는 주변 현실과 사회 갈등에 관심이 많다. '경제'는 우리가 지난 20년간 집중해 다뤄온 주제였는데,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사건을 목격한 이후 권력과 자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경제'란 주제를 집요하게 다뤄온 이유는.
"우리 삶은 경제와 얽히지 않은 게 없다. 우리는 이 경제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 실체를 쉽지 않다. 사회의 거대 권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들은 우리가 탐구한 금융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 
 
파산 은행의 로고를 작품으로 활용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것은 공공의 자산이고, 지금은 그 기관이 다른 기관 등에 인수되는 등 사라진 상태여서 문제없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문제를 삼는다면 언제든 환영하고 함께 토론할 의향이 있다. 은행 로고엔 번영을 위한 인간의 꿈, 자신감, 상호 간의 신뢰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문화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약속은 깨졌고, 이것들은 더는 쓸모없어졌다. 이게 현실이다."
 
앞으로 높아질 해수면 높에 걸린 조각 작품은 기후 변화를 경고하고 있다. [사진 국제갤러리 부산]

앞으로 높아질 해수면 높에 걸린 조각 작품은 기후 변화를 경고하고 있다. [사진 국제갤러리 부산]

향후 변화할 해수면 높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변화를 가지고 조각으로 표현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등락을 보여주는 그래프도, 기후 변화에 따라 상승할 해수면 높이도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거라는 환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비트코인도 지난 금융위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품일 수 있다.”
 
프리 비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오픈 소스 경제라는 컨셉트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로 맥주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이다. 지식은 공유돼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을 담았다. 우리가 공개한 레시피로 누구든 맥주를 만들고 판매할 수 있다. 이 명칭은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차용했다." 
 
프리 비어 레시피는 어디에서 왔나.
"처음엔 덴마크의 아주 작은 브루어리에서 만들었다. 그게 1.0 버전이라면 이번에 부산(전시장 옆 '프라하 993' 브루어리)에서 협업해 만든 것은 7.0 버전이다. 프리비어 캔 디자인도 우리가 했다. 맥주가 공짜가 아니라 레시피를 공유했다는 의미에서 '프리'이지만, 사람들이 맥주를 즐기며 왜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하는지, 이 맥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그런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프리비어는 우리의 작품이자 하나의 제안이다. 앞으로도 프리비어의 레시피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같이'하면 더 강하다 

맥주 레시피를 공유하는 프리비어 프로젝트를 위해 수퍼플렉스가 디자인한 브랜드. [사진 국제갤러리]부산]

맥주 레시피를 공유하는 프리비어 프로젝트를 위해 수퍼플렉스가 디자인한 브랜드. [사진 국제갤러리]부산]

그룹 결성 이후 '협업'을 고수해 온 이유는. 
“아티스트는 '수퍼플렉스'라는 이름의 집합체다. 그리고 우리 세 멤버는 수퍼플렉스의 종속체다. 아이디어와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움직여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위협도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 않나. 우리는 콜렉티브 파워, 협업의 힘을 믿는다."
 
팀으로 일하면 부딪히는 일도 꽤 있을텐데. 
"우리 팀의 강점이 바로 우리에게 항상 갈등과 긴장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긴장과 갈등이 전시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을 좋아한다.”  
 
수퍼플렉스는 영화도 만들었고, 조각·회화도 하고, 공원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작품을 '도구'라고 부른다. 사회운동가라고 불러도 될까.
"대답은 '노(No)'다. 우리는 운동가가 아니라 아티스트다. 운동가는 목적의식, 얻고자 하는 결과가 분명하지 않나. 운동가가 답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우리는 답을 열어놓고 작업한다. 그리고 작품을 미술 공간 안에서 전시되는 오브제로 한정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술 작품의 힘을 믿는다. 개념만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물질(작품)로 시각화하고, 사람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는 걸 즐긴다."
 
이들은 "우리 작업은 사람들을 작품 안으로 초대하고 함께 생각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우리 작품은 아이디어인 동시에 프로젝트이며, 도구"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하는 작업에 대해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경계를 계속 허물며 아티스트의 새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답변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새로운 모델을 꿈꾸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수퍼플렉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사진 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사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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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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