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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원전 폭발로 폐허가 된 땅에 매년 수만명이 몰려드는 이유는?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을 돌아본 관광객들이 기념품 가게에서 간식을 사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을 돌아본 관광객들이 기념품 가게에서 간식을 사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Chernobyl).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시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에게는 1986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기록된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도시로 기억돼 있죠. 사고 후 33년이 지난 지금,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난 5월 미국 방송사 HBO가 방영한 드라마 ‘체르노빌’이 큰 인기를 끌면서 방문자는 급증하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인류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성지로 체르노빌이 떠오르고 있는 겁니다.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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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HBO]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HBO]

1986년 4월 26일 새벽, 구소련 체르노빌에 있던 ‘레닌 공산주의 혁명 기념 핵발전소’에서 원전 4호기가 폭발합니다. 당시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지역을 비롯해 전세계로 흩뿌려졌죠. 피해 규모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체르노빌 포럼은 200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노출로 사망한 사람이 최소 50명에서 최대 9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치를 발표했죠. BBC에 따르면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 사고로 인해 이미 죽었거나 암 등의 질병에 걸려 앞으로 사망할 사람이 총 9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를 통해 14일 한국에 공개된 드라마 ‘체르노빌’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 사고의 전모를 재구성한 5부작 다큐 드라마입니다. 미국 방영 당시 TV 시청률 35%, 디지털 플랫폼 시청률 52%를 기록해 ‘왕좌의 게임’(46%)을 제치고 HBO 드라마 디지털 시청률 신기록을 세웠죠. 각종 별점 사이트에서 역대 최고 평점을 갈아 치운 것은 물론, 올해 9월 열리는 에미상 시상식에는 최우수 미니시리즈상을 포함해 1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HBO]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HBO]

이런 드라마의 인기는 여행으로 번졌습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체르노빌의 ‘지금’을 확인하겠다며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로 몰리기 시작한 겁니다. 체르노빌은 이미 매년 6~7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우크라이나 최대 관광지이기도 한데요. USA투데이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이후 방문객이 30~40% 늘어났고, 올해 총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2배 넘게 증가한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비극을 전시하다. 다크 투어리즘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들이 금지구역 내 유령도시인 프리아트를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들이 금지구역 내 유령도시인 프리아트를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 관광은 전쟁이나 재해 등 인류의 아픈 족적을 찾아다니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인 ‘다크 투어리즘’ 열풍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나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참상을 보여주는 뚜얼슬렝 대학살박물관, 9ㆍ11 테러의 현장인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 등이 다크 투어리즘의 대표 관광지로 꼽혀 왔죠. 여행을 통해 인류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역사의 교훈을 얻으려는 것이 다크 투어리즘의 목적입니다.  
 
일본 학자 아즈마 히로키 등이 2013년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쓴 책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에 따르면 체르노빌의 관광지화 움직임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사고가 났던 원전 4호기 반경 30km 권내는 ‘존(Zo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십년 간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금지됐었죠. 하지만 2011년부터 일반인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해 현재는 20여 곳의 여행사가 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출입금지 구역 안에 있는 공원과 기념비 등을 돌아보고, 현재도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원전 1, 2호기의 제어실 등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난 4호기 근처서 기념 사진을 찍을 수도 있죠. 한때 6만 여 명이 살았으나 사고 이후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유령 도시’가 된 프리아트 곳곳을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기념품숍에서 엽서나 배지 등 체르노빌 기념품을 사기도 합니다.  
체르노빌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르노빌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아예 체르노빌을 국가 공인 관광 상품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발표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코미디언 출신으로 화제가 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월 “체르노빌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부정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이곳을 과학과 관광의 중심지, 자유의 땅, 새로운 우크라이나의 상징으로 만들자”고 선포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자 티켓 시스템을 도입하고, 출입금지 구역 내 걷기 코스 등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죠.  
 

안전 문제는?  

지난 1986년 폭발사고가 난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콘크리트 위에 새로 설치된 철제 아치형 방호덮개 외관. [TASS=연합뉴스]

지난 1986년 폭발사고가 난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콘크리트 위에 새로 설치된 철제 아치형 방호덮개 외관. [TASS=연합뉴스]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 이 지역의 방사능 수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출입금지 구역이라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장비나 복장을 갖추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을 한 두 시간 여행할 때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여행객들이 1~2시간 비행기를 탈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소련 당국은 폭발한 4호기를 ‘석관’이라 불리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 씌웠죠. 그 안에는 지금도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습니다.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금이 가면서 방사능 유출 위험이 높아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8년에 걸쳐 기존 콘크리트 방호벽 위에 추가 철제 방호 돔을 설치했습니다. 높이 105m, 길이 150m, 폭 260m의 이 거대한 아치형 철제 구조물은 100년 이상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아줄 수 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장합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EPA=연합뉴스]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EPA=연합뉴스]

하지만 체르노빌 투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옵니다. BBC에 따르면 체르노빌 인근 연못의 물에서 일반 연못의 60배에 달하는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는 등 아직 일부 지역의 오염도는 꽤 높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공기 중의 방사능 수치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바람이 불면 먼지 등에 섞여 있던 방사성 물질이 퍼져나가면서 수치가 몇 배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체르노빌에서 ‘셀카’를 찍을 땐

현재 체르노빌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긴팔에 긴 바지를 입고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마스크 착용도 권장되죠. 하지만 더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영국 셰필드대 연구팀의 클레어 콜힐 박사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여행을 가려면 바람이 불지 않는 날 가는 것이 좋고, 사이트 안에서는 어떤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 또 금지 구역 내엔 방사능에 오염된 많은 물건이 있는 만큼 관광을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이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이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체르노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즐거운 인증샷’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방문객들이 버려진 관람차 앞에서 웃으며 찍은 사진, 옷을 반 쯤 벗은 채 찍은 인증샷 등이 소셜미디어(SNS)에 연이어 올라오면서 ‘다크 투어리즘’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죠.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자유”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자중하고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의 제작, 각본을 맡은 크레이크 메이진은 지난 6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체르노빌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사고의 희생자들과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제목   체르노빌(Chernobyl)
연출   요한 렌크
출연   자레드 해리스, 스텔란 스카스 가드, 에밀리 왓슨
등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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