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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최상위 각급 대화 필요…가을쯤 협상시작해야"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반일(反日) 정서가 한·일 교역량 감소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6일 관세청은 지난달 일본을 상대로 한 수출(-0.3%)과 수입(-9.3%)이 1년 전보다 줄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일본산 소비재 수입이 13.8% 급감했다. 양국이 계속 서로를 적으로 두고 살 수 있을까. 이부영(77)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진단했다. “일본과의 각급 다방면 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다.
 

일본 지식인들, ‘한국이 적인가’
이메일로 성명 전문 보내와
우리 원로 67명 설득 특별성명
여야, 정치로 큰 그림 그려 나가야
법조문 따지듯 정치해선 안돼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이 1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이 1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광복절을 앞둔 지난 12일 이홍구·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각계 원로 67명이 뜻을 모아 특별성명을 냈다." 두 나라는 1998년 맺어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과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부치 총리는 당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두고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했고 김 전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원로들의 특별성명이 나오기까지 이 위원장의 역할이 있었다. 이 위원장은 오카모토 아츠이 전 세카이 편집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교수 등 일본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접촉하면서 사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런 뒤 국내 원로 67명에게 일일이 연락해 성명 발표의 필요성을 설명해 동의를 받았다. 한·일 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이 위원장을 만나 물어봤다. 인터뷰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원로들이 성명에서 한·일 관계를 사상 최악이라고 진단했는데, 근거는 뭔가.
“일본 역대 정권들의 진심 어린 과거사 반성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 ‘이전 정권이 잘못했다고 사과한 것이 도리어 잘못이었다’는 입장이 된 거다. 91년 전 세계 최초로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 인터뷰를 세계에 소개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였다. 고노 료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개입을 인정했고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수상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98년에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왔다. 그런데 2004년 1차 아베 내각이 들어선 뒤 일본 정부 기조가 180도 반대로 틀어졌다. 그동안 얘기한 게 다 잘못됐다는 거다. 심지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식민 지배를 사과한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의 말까지 부정하는 태도다.”
 
아베 총리 한 사람의 역사 인식 외에 다른 이유는 없나.
“아베 정권의 기초를 이루는 (극우단체) ‘니혼카이(日本會議)’가 현 일본 내각의 80% 이상을 장악 중이다. 다른 세력이 기를 못 편다. 아베의 선거구인 야마구치(山口縣) 현은 대대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가쓰라 다로(桂太郞),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등 정한론자를 배출한 곳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만주국 총무상을 지낸 A급 전범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아베 총리가 ‘한일 합병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한 것이므로 사과나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식민통치를 통해 일본이 한국 경제발전 기초를 닦아 은혜를 베풀었다’며 내각을 이끌고 있다. 일본이 ‘다시 한국을 길들이겠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한 배경이다.”
 
일본 내에서도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현재 일본 국민의 50% 이상이 아베가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헌에 반대하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핵폭탄을 맞으면서 치른 희생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나마 일본 시민사회를 평화적 판단으로 이끈다고 본다. 아베 정부는 과거 철저하게 짓밟았던 중국이 G2로 급부상하고, 한반도에서 남북이 화해 국면을 맞자 본인들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돌아가겠다며 평화헌법을 고치려 시도 중이다. 그러자 지난달 아베 정권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 77명이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을 냈다. 양국 갈등 중단 및 협력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인데 우리(동아시아평화회의)에게 직접 이메일로 전문을 보냈다.”
 
이부영은 누구인가
서울 태생,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부영 위원장은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다. 고 김근태 전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과 함께 80년대를 대표하는 재야 민주운동가로 꼽힌다. 민통련 사무처장·초대 전민련 상임의장 등을 맡으며 수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 위원장은 “5차례 수감 생활을 했는데 여러 번 투옥되니 나중에는 동지들이 교도소 밖에서 ‘이부영 어영부영하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고 웃었다더라”고 했다.
 
수감생활 도중이던 87년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축소를 폭로했다. 이 일은 그 해 6월 항쟁이 일어나는 기폭제가 됐다. 이 위원장은 90년 속칭 ‘꼬마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이기택, 이철, 노무현 등과 함께 3당 합당에 반대하는 세력을 형성했다. 이후 민주당 부총재를 거쳐 92년 14대 국회부터 서울 강동갑에서 내리 3선을 했다.
 
95년 당시 김대중 총재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통합민주당에 잔류했다가 신한국당과 합당한 한나라당에 몸담았다. 한나라당 원내총무와 부총재를 지낸 뒤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당 의장(대표)을 맡았다. 2015년 정계를 떠난 뒤 재야 은퇴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데 힘쓰고 있다.
 
시민사회가 움직이는데도 한국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불협화음만 내고 있다.
“냉전 이후 번영했던 미국 자본주의가 황혼에 들어서고, 중국이 이상비대를 하는 와중에 북한이 살아남겠다고 핵을 개발하는데 일본도 핵무장을 원한다. 이렇게 주변 정세가 급변하는 속에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 미국과 깊은 관계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세력(보수)과, 그에 반대하며 북한과 좀 더 가까이 지내기를 바라는 세력(진보) 아닌가. 다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이겨버리는 사태는 당장 일어날 게 아니라는 걸 양쪽이 알아야 한다. 진보라고 해도 이른 시일 내 통일 같은 급진적 현상 변화를 일으키자는 주장은 삼가는 게 좋다. 보수도 북한과의 평화공존, 교류협력조차 못 하겠다고 하면 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살 자격이 없는 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두고 갈등이 더 심한 것 같다.
“집권당도, 보수 야당도 선거를 앞두고 자기 세력을 긁어모아야 하므로 (여야가) 부딪히는 일이 불가피하다. 다만 그걸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지혜로워야 한다. 발 앞에 있는 문제를 속임수 쓰듯 잘 처리하는 건 지혜가 아니다. ‘너와 나 사이(between you and me)’가 아닌 ‘우리 너머(beyond you and me)’를 봐야 한다. 요즘 보면 자꾸만 정당들이 자기네 지지자들, 강경파 입맛에 맞추느라 말 폭탄을 떨어뜨리고 쏘고 한다. 한국 사회는 미묘해서 정치하기가 힘들다. 이런 나라에서는 서로 조금씩 여유를 가져야 한다. 말도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단 뜻이다.”
 
왜 이런 상황에서도 여야 협치가 잘 안될까.
“예전에는 야당과 말싸움을 하면서도 기자들 몰래 만나 술 한잔하면서 터놓고 논의하는 풍토가 있었다. 요즘은 그런 일을 전혀 못 한다. 과거보다 (정치판에) 돈이 없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정치는 장사가 아니지 않나. 속된 말로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게 정치인데 그럴수록 (정치인들이) 생각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한담(閑談)이 필요하단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법 공부한 사람들이 정치권 지도부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조문 따지듯 정치를 하는데 (이런 태도가) 실무에서는 유능할지 몰라도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게 한다.”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이 1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이 1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전반적 정치풍토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측면도 있을 거 같다.
“나는 지금 여당이 진보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이 한반도 통일을 하자는 게 아니라 북한과의 화해 협력·평화공존 정도를 말하는데, 그걸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나. 오히려 정책은 점차 보수화돼가고 있다. 젊은이, 늙은이를 막론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정책을 충분히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 야당은 말할 것도 없이 부자들이지만 이제 민주당에도 부자들이 많다.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 계수를 아주 충실히 반영하는 거다. 이게 우리 정치의 진짜 위기다. 소선거구제, 원내교섭단체 등으로 진짜 진보정당인 정의당, 녹색당의 진입장벽을 높여놓으니 그 손해는 젊은이·노인·소수자가 본다. 지금 여야의 진보·보수 다툼은 가짜 싸움이다. ”
 
일본 대응과 관련해 정치권에 조언한다면.
“일본 대응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지금 말하는 바를 앞으로 좀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일본과) 대화할 게 있으면 해야 한다. 최고위·최상위를 포함한 각급 다방면 대화가 필요하다. 일단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했잖나.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도 ‘당신네가 무리하게 모욕을 가하고 짓밟으려 들면 우리도 그렇게는 못 한다’는 메시지지. 일본도 손해를 볼 수 있다. 이걸 우리가 걸어놓은 게 나는 ‘협상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언제쯤 대화가 가능할까
"시기를 잘 조율해야 하는데 양국 국내 분위기가 중요하다. 8.15라는 게 양쪽이 모두 서로 다른 국내 분위기가 있는 거다. 일본은 일본대로 히로시마·나가사키 패전의 분위기가 남아 있고, 우리는 8.15가 지나야 내부적으로 정리되는 게 또 있고. 가을쯤에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올가을쯤에는 각급 대화를 통해 협상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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