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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전공·융합전공 활성화로 초연결사회 리더 키울 것

[양영유의 총장 열전] 정진택 고려대 총장

정진택 고려대 총장이 집무실의 스탠딩 책상에서 컴퓨터를 하는 모습. 컴퓨터를 켤 때마다 아인슈타인과 대화한다는 정 총장은 ’미래사회 고등교육의 핵심가치는 창의성·융합·협력에 있다“며 ’AI 시대가 와도 그 중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정진택 고려대 총장이 집무실의 스탠딩 책상에서 컴퓨터를 하는 모습. 컴퓨터를 켤 때마다 아인슈타인과 대화한다는 정 총장은 ’미래사회 고등교육의 핵심가치는 창의성·융합·협력에 있다“며 ’AI 시대가 와도 그 중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고려대 114년 역사상 첫 공과대 출신 총장의 방에는 색다른 게 있었다. ‘스탠딩 책상’이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귀가 흐르고 있었다. “컴퓨터는 놀랍게 빠르고, 정확하지만 대단히 멍청하다. 사람은 놀랍게 느리고, 부정확하지만 대단히 똑똑하다. 이 둘이 힘을 합치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114년 만의 첫 공대 출신 총장답게
방엔 스탠딩 책상, 아인슈타인 사진

스카이 캐슬 깨려고만 하지 말고
스카이를 10개 20개 더 만들어야

노벨과학상, 2030년 글로벌 톱 50
초학제적 연구 통해 목표에 도전

정진택(59) 총장은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초의 범용 컴퓨터 ‘에니악(ENIAC)’이 나온 게 1946년입니다. 그 컴퓨터가 인공지능(AI) 시대를 열고 인류 문명까지 바꾸고 있어요. 인간이 AI 시대를 두려워하지만, AI를 만드는 건 사람입니다.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 매우 빠르고 정확한 기계와 합쳐지는 것이니까요. AI 시대가 와도 그 중심은 결국 사람입니다.”
  
“컴퓨터 빠르지만 멍청, 사람은 느려도 똑똑”  
 
지난 7일 고려대 총장실과 캠퍼스를 오가며 세 시간 동안 이뤄진 정 총장과의 인터뷰는 이처럼 컴퓨터와 AI 얘기로 시작됐다.
 
여러 대학 총장실을 방문했지만 스탠딩 책상이 있는 집무실은 처음 봅니다.
“4년 전 연구실에 들여놓았던 겁니다. 하루 6시간 이상은 서서 컴퓨터를 했어요. 건강에도 좋고, 몰입도 잘 돼요. 컴퓨터를 켤 때마다 아인슈타인이 나오니 매일 그와 대화하는 셈이지요.”
 
1905년 설립 이래 첫 공대 총장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면 곧바로 뒤처집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변화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고 했습니다. 공대 출신 총장은 곧 혁신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혁신의 가치는 창의에서 나옵니다. AI도 그중 하나지요.”
 
세계는 지금 AI 인재 경쟁이 치열합니다.
“세계적으로 70만 명의 인재가 부족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미국·영국·중국 등은 인재를 선점하려 AI대학을 세우는 등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어요. 미래사회를 주도하기 위한 필연적인 대응이죠. 우리나라도 향후 5년간 1만 명의 AI 인재가 부족할 거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내 대학들의 대응이 다소 늦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제부터 잘하면 돼요. 고려대는 2014년 컴퓨터학과가 단일 학과인 정보대학을 신설했어요. 2학기에는 AI대학원을 엽니다. 석·박사 통합과정 및 박사과정을 연간 50명 이상 선발해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고 일부 생활비도 지원합니다. 핵심 연구분야는 딥러닝·자연어 처리·음성인식·빅데이터·신경망 등입니다. 헬스케어·금융·자율주행·국방 같은 특화 연구도 하고요.”
 
AI대학원이 안착하려면 전문 전임교원 확보가 필수다. 정부 지원으로 대학원을 여는 서울대와 성균관대도 애를 먹고 있다. 높은 몸값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서다. 동문과 독지가 기부가 많기로 유명한 고려대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캠퍼스의 경우 연간 등록금 수입이 3500억원인데 인건비로 3000억원이 나가 옴짝달싹 못 한다는 것이다. 기부금(연 1100억원)도 용도가 정해져 있어 마음대로 쓸 수 없단다.
 
고려대도 등록금 때문에 배가 고픕니까.
“솔직히 현실화했으면 좋겠어요. 최저 임금도 맞추고, 고등교육 패러다임도 짜야 하는데….”
 
정 총장은 새로운 고등교육 패러다임 구상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초연결사회로 상징되는 4차 혁명시대에 걸맞는 ‘호랑이 상(像)’을 정립하려면 교육·연구·행정 전 분야의 혁신이 필수라고 했다.
 
고려대의 미래를 어디에 두려 합니까.
“통합과 통섭력을 갖춘 인재 양성입니다. 여러 학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그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어요. 열린 마음과 열린 사고, 도전을 두려워 않는 창의·융합형 인재가 우리의 미래가치입니다.”
 
어떤 변화를 시도하나요.
“이중전공과 융합전공 활성화, 기초교육 강화, 창업지원 확대, 비교과 활동지원이 키워드입니다. 문·이과, 전공과 전공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초연결사회의 리더를 키울 수 없어요. 스티브 잡스의 강연 중 ‘테크놀로지’와 ‘리버럴 아트’란 슬라이드가 교차하는 장면이 있어요. 교차점에서 뭔가가 나오는 거죠. 바로 아이폰입니다. 그게 초연결사회의 메시지죠. 열린 마음, 열린 사고입니다.”
 
구체적인 변화의 신호탄이 있습니까.
“오는 2021학년도부터 국내 최초로 문과대 심리학과가 심리학부로 독립해요. 학생들은 AI와 뇌과학은 물론 인문학·사회학·공학·의학 등 모든 분야를 넘나듭니다. 창의·융합형 인재는 그 과정에서 나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미래에는 윤리관이 중요해요. 7월부터 기초교육원을 교양교육원으로 확대해 전인교육 강화에 나선 까닭입니다.”
 
인터뷰 중 자연스럽게 ‘스카이(SKY) 캐슬’ 입시 얘기가 나왔다. 더구나 고려대는 정시 30% 문제를 놓고 논란을 겪었던 대학이 아닌가. 그 전말이 궁금했다.
 
다음달부터 수시가 시작됩니다. 올해 입시의 수시·정시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수시로 83.6%, 정시로 16.4%를 뽑아요. 총 4084명입니다. 내년도 비슷해요. 다만, 고1이 치를 2022학년도에는 정시 비율 조정 방안을 검토중입니다.”
 
1~2점 차이로 뽑지 않겠다더니 적지 않은 변화네요. 교육부 관료가 방문해 정시 30% 확대를 요청해 그런게 아닌가요.
“교육부 고위 관료가 방문했던 건 사실입니다. 우리는 학생부 교과 전형을 올해 9.6%에서 내년에 27.8%로 늘렸어요. 거기서 오해가 생겼어요. 제가 교육부에 규정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문의했어요. 그랬더니 학생부 교과를 예외(정시와 같게 인정)로 한 것은 학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대를 위한 것이지, 최상위권 대학을 위한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교육부는 2022학년도에도 우리가 그렇게 할까 봐 염려했나 봐요.”
 
강력한 시그널이었던 것 같네요. 결국 교육부 요청을 받아들이려는 거군요.
“대입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정시 30% 의견이 도출됐으니, 어떻게 하면 그걸 존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는 뜻입니다. 교내 의견을 수렴해 정시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려 합니다.”
 
앞선 인터뷰에서 연세대 김용학 총장은 “스카이 입시 열풍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 생각은 달랐다. 스카이 열풍이 쉽게 수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2014년 정보대학, 2학기엔 AI대학원 신설
 
스카이 캐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엇갈립니다.
“스카이 캐슬을 깨려고만 말고 스카이를 진짜 열 개, 스무 개 더 만들어야죠. 가고 싶은 특성화 스카이 대학이 전국 곳곳에 생겨야 합니다. 그게 학생 수 급감 위기를 타파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미국엔 대학이 수천 개 있어요. 그런데 조그만 시골 대학을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대학마다 특성이 있고 프라이드가 있어서죠.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스카이를 없애면 스카이가 사라질까요? 금방 그 밑의 대학이 스카이가 되는데.”
 
정 총장은 ‘창의 고대’의 진짜 과제는 입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고 했다. 세계대학평가에서 6년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 목표를 내걸었다. 창의적 융합연구 활성화로 노벨 과학상에 도전하고, 2030년 세계 50대 대학에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글로벌 톱 50이 가능할까요.
“인간의 달 착륙(Man on the Moon)처럼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지도자는 목표 설정자입니다. 달 착륙 목표가 있으니 도전 의식이 생겼고 결국 해냈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과학상을 고려대가 배출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노벨상 프로젝트가 있나요.
“융합 연구(science+science)를 넘어 초학제적 연구(trans-disciplinary research)가 승부처입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산학연 협력도 중요합니다.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와 세계 최고 학술지 논문 게재자, 스타 연구자를 파격 지원해 연구 생태계를 바꾸겠습니다. 도전은 지성의 특권입니다.”
 
겸손하고 남의 말 경청하는 스타일
정진택 총장은 고려대 기계공학과 79학번이다. 공과대를 수석 졸업하며 총장상을 받았으니 영락없는 모범생이다. 그런데 대학생 때 운전면허 시험을 세 번이나 떨어졌다. 최초의 쓴맛이었다. 인생길은 모범답안이었다. 1992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유체공학 및 열공학) 학위를 받고, 이듬해 모교 교수가 됐다. 그 후 대외협력처장·공과대학장·공과대학원장·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등을 두루 거치고 올해 2월 28일 총장에 취임했다. 스카이 대학 총장은 대개 재수·삼수하기 일쑤인데 초보가 일을 냈다. “평생 큰 도전을 해 본 적이 없어 도전했는데 총장이 됐으니 또 다른 도전을 하겠다”고 했다. ‘창의 고대’ ‘사람 고대’ ‘화합 고대’를 키워드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새로운 ‘호랑이 체질’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겸손하고 부드러워 편안함을 주는 성격으로 조직의 인화를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다. 원래 꿈은 과학자였으나 기업체 취업을 고민했다. 유학을 독려해 진로를 바꾸게 한 아버지와 은사인 김호영 고려대 명예교수를 인생 최고 멘토로 꼽는다. 늦은 시각 산책을 즐긴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yangyy@joongang.co.kr
 
※총장 열전은 크로스미디어로 진행합니다.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9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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