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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대안사회 아냐, 강철서신도 동의못해"…주사파 비판한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사파 비판한 조국, 그래서 사노맹에 참여했다 

"강철서신을 접하자마자 이건 아니라고 확신했다…북한은 대안 사회가 아니었다"
 

"사노맹, 내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와 달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연루 이력을 놓고 야당의 비판이 거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2일 "국가전복을 꿈꿨던 사람이 법무장관이 될 수 있는가"라며 '조국 불가론'을 꺼내들자 조 후보자는 이틀 뒤 "독재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저의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되었다"고 맞섰다. 
 
'강남좌파'로 불려온 조 후보자는 왜 급진적 사회주의를 추구한 사노맹에 참여했을까. 
 
조 후보자는 저서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과거 주체사상과 북한에 비판적이던 자신의 선택을 언급한다. 그는 "강철서신을 접하자마자 이건 아니라고 확신했다…북한은 대안사회가 아니었다"며 "주체사상과 선을 그은 뒤 자본주의의 극복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사노맹 참여 이유를 회고했다. 
 
'강철서신'은 그의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영환씨가 1986년 주체사상에 관해 저술한 팸플릿이다. 당시 주사파 운동권의 교본이라 불렸다. 
 
1980년대 중반 대학가의 주체사상 교본이었던 `강철서신`으로 국내에 주사파 이론을 처음 소개한 김영환씨의 모습. [중앙포토]

1980년대 중반 대학가의 주체사상 교본이었던 `강철서신`으로 국내에 주사파 이론을 처음 소개한 김영환씨의 모습. [중앙포토]

조 후보자는 대학 시절 북한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운동권이 주사파로 경도되고 있다며 함께 대학원을 다니던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진중권 현 동양대 교수, 박태호 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주체사상비판』이란 책을 출간했다. 
 
책이 나온 뒤 주사파 운동권의 비난이 거셌다고 한다.
 

조국 "김영환 친북→반북, 나는 비남비북"

조 후보자는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씨에 대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북한민주화운동가로 변신한 그를 만났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며 "그가 극단적 '친북'에서 반북으로 이동하면서 남쪽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면 나는 '비남비북(批南批北)'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후보자는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인 1991년 사노맹의 공동설립자이자 서울대 법대 선배인 백태웅(현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의 요청으로 사노맹에 합류한다. 정확히는 사노맹 산하 기구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에서 8개월간 강령실장으로 활동했다.
 
사노맹 강령에 따르면 사노맹은 한국 사회를 '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라 규정하며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건설을 위해 국가전복을 포함한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둔 단체였다. 
 
안기부는 사노맹 사건과 관련, 1992년 핵심간부 39명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서울과 대구ㆍ광주ㆍ대전에서 각각 구속했다. 사진은 수감되는 사노맹 중앙위원장 백태웅씨. [중앙포토]

안기부는 사노맹 사건과 관련, 1992년 핵심간부 39명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서울과 대구ㆍ광주ㆍ대전에서 각각 구속했다. 사진은 수감되는 사노맹 중앙위원장 백태웅씨. [중앙포토]

조국 "사노맹 내가 추구하던 사회주의와 달라"    

조 후보자는『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사노맹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와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며 "당시엔 이런 차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소련이 붕괴했지만 한국에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동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후보자는 수감된 뒤 한편으로 "나를 아끼던 주변 분에게 폐를 끼쳤다. '아, 세상일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는 게 아니구나'하는 열패감도 느꼈다"고 했다. 다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백 선배의 제안을 받은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그의 손을 뿌리치진 않았을 것"이라 회고했다.
 
조 후보자는 1993년 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되고 울산대 교수직을 잃게된다.
 

조국 1심 판사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1995년 대법원은 사노맹은 반국가단체로 봤지만 조 후보자가 9개월간 활동한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은 이적단체로 판단해 조 후보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당시 조 후보자의 1심 판사였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선고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보다 감형된 형이었다. 조 후보자의 변호인은 천정배 현 국회의원과 장주영 전 민변 회장이었다.
 
사노맹 사건으로 복역중 1998년 8.15특사조치로 석방된 박노해 시인. [중앙포토]

사노맹 사건으로 복역중 1998년 8.15특사조치로 석방된 박노해 시인. [중앙포토]

대법원 "조국, 사노맹 참여 후회, 폭력적 해법 인정 안해"

딩시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조 후보자가 "사노맹의 실질적인 운영위원(간부)로 활동하지 않았고 비합법적·비폭력적 혁명방법에 대해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점, 활동을 후회하고 있는 점"을 양형사유로 언급했다. 
 
반면 사노맹의 공동설립자였던 백태웅 현 교수에겐 징역 15년, 박노해 시인에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세 사람은 1998~1999년 모두 고(故)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면됐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8년 박노해와 백태웅씨를 "북한과 관련이 없고 유인물 선전활동에 머물렀으며 권위주의에 항거 행위를 했고 국민화합차원"에서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했다. 조 후보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노맹 관련자 100여명은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노맹의 가치가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를 부인한 것으로 민주화운동이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적선동 현대빌딩에서 법무부 장관직 내정에 대한 입장을 말한 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적선동 현대빌딩에서 법무부 장관직 내정에 대한 입장을 말한 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수감생활, 학자로서 참여관찰 기회"   

조 후보자는 확정판결 전 수개월간의 수감 생활에 대해 형사법 학자로서 '참여관찰'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밝히기도 했다.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조 후보자는 "많은 친구와 선배들이 감옥을 갔던 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내 차례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사형수와 간식을 나눠먹고 대화하기도 했으며 돈 없는 수인들의 항소이유서를 써줬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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