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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콩 심은 데 팥 나라는 주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끝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밀어붙였는데, 유감이다. 명분·시기·과정이 석연치 않은 데다 효과마저 의심스럽다. 나는 적어도 다섯 가지 이유로 분양가 상한제 강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강남 잡겠다는 분양가 상한제
잘못하면 나라 경제 잡을 판
3차례 실패에서 뭘 배웠나

 
우선 시기가 안 좋다. 정부는 “집값 움직임을 지켜보며 (상한제 시행을)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집값은 안정세였다. 지난 3개월간 서울 집값은 0.08% 떨어졌다. 게다가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다. 한·일 경제전쟁까지 겹쳐 증권시장이 흔들리고 원화 가치마저 급락 중이다. 경제가 빈사 상태다. 오죽하면 “경제 활력 제고가 시급하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까지 만류했겠나. 시간을 두고 해도 되는데, 밀어붙인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 굳이 지금인지 설명이 필요하다.

 
둘째, ‘주택 정치’를 일상화했다. 김 장관은 “강남에서 평당 분양가 시세가 1억원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했다”고 했다. 강남 대 비강남, 부자 대 서민의 대결 구도를 또 꺼낸 것이다. 당장 정비사업이 본격화한 서울 151개 단지 13만 가구가 직격탄을 맞게 됐지만, 나머지 수천만 가구의 ‘배 아픔’을 다독여줬으니 정치적으론 이득이다. 건설업계에서 “경제보다 내년 총선 민심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셋째, 정책의 기본인 신뢰와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깨졌다. 재건축은 대개 10년 이상 장기 사업이다.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엔 계약이 유지된다는 믿음이 기본 전제다. 이 믿음이 깨지면 시장 경제는 작동 불능에 빠진다.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인 둔촌 주공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16년에 걸쳐 겨우 기준선을 맞춰놨더니 막판에 정부가 골대를 움직인 꼴”이라며 “조합원들 사이에 위헌소송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필수 요건을 ‘투기과열지구’로 확대한 것도 논란이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요건이 딱 정해져 있지만, 해제는 국토부가 ‘알아서’ 할 수 있다. 게다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최종 결정하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는 국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는 것 정도 외에 구성원과 결정 과정이 모두 비공개다. 투기과열지구 지정·해제와 주정심을 통해 사실상 국토부 입맛대로 상한제 적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진 셈이다.

 
넷째, 로또 꿈만 부풀렸다. 40대 직장인 한모 씨는 “전매를 10년 제한하더라도 시세 차익을 20% 이상 얻을 수 있다면 기다릴 수 있다”며 “시세 차익이 큰 아파트가 나오면 모두 청약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민이 강남 로또 아파트를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세의 80%라 하더라도 웬만한 강남 아파트는 10억원이 훌쩍 넘는다. 부자 부모를 둔 ‘줍줍족’ 배불리기만 재연될 것이다.

 
다섯째, 결과도 안 좋을 것이다. 콩 심은 데 팥은 나지 않는 법이다. 같은 정책의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분양가 상한제는 부동산 규제의 완성판이다. ‘부동산 탈레반’으로 불린 참여정부 때 세금·금융·가격의 ‘3종 규제 세트’가 처음 만들어졌고 그 정점에 분양가 상한제가 있다. 그 3종 세트가 마침내 모두 복원됐으며, 그때보다 더 세졌다. 종부세 최고세율은 더 높아졌고 전매 제한 기간은 늘었으며 대출 규제도 더 강화됐다. 정부는 “이번엔 다르다”지만 시장은 벌써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는 복지부동에 들어갔고 5년 미만 새 아파트값은 뛰고 있다. 시장은 아마추어의 놀이터가 아니다. 강한 정책을 쓰면 굴복하고 풀어주면 날뛴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분양가 상한제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 하나를 정면으로 부인한다는 점에서 실패를 예약해놓고 있다. 새것에 대한 갈망이다. 왜 아파트만 신품이 고물보다 싸야 하나. 그럴 수는 있나. 이 무모한 정책을 밀어붙인 김현미 장관의 뚝심에 새삼 감탄할 뿐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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