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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지옥, 체르노빌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러시아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또 일어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가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사건을 두고 '제2의 체르노빌'을 걱정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은 인류 최악의 재난으로 꼽힌다. 마침 왓챠 플레이에서 14일 오후 2시 드라마 <체르노빌>을 공개한다. 공교롭게도 사고가 터지기 전에 이미 드라마 공개 일자는 예정돼 있었다. 와칭 김광혁 객원 에디터가 미리 본 <체르노빌> 리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와칭(watchin')
와칭(watchin')은 중앙일보 뉴스랩이 만든 리뷰 서비스입니다. 넷플릭스 리뷰 모아놓은 곳, 믿을 만한 영드·미드·영화 추천을 찾으신다면 watching.joins.com으로 오세요. 취향이 다른 에디터들의 리뷰를 읽고, 나만의 리뷰도 남겨보세요.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드라마의 명가 HBO는 올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겁니다. 장장 10년간 대장정을 해온 <왕좌의 게임>은 마지막 시즌을 거하게 말아먹는 바람에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지만, 조용히 공개한 <체르노빌>은 모든 매체를 비롯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극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은 드라마로는 도달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의 생생한 전달과 다큐멘터리로는 도달하기 힘든 스토리텔링의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TV 시리즈 역대 IMDb 평점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습니다.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1986년 4월 26일,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원전이 폭발합니다. 정부는 끔찍한 방사성 물질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은폐하며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바로 모두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실상은 자세히 몰랐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입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고증이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저 무지하고 우매한 구소련의 실수 정도로만 이해되곤 했던 역사적 사실에 디테일한 상황 묘사와 비극으로 치닫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버무려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전혀 드라마틱한 구성이 아님에도 매회 긴박감이 유지됩니다.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는지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리얼하게 보여주는데 웬만한 호러영화보다 더 무섭습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실제 피폭된 사람들의 모습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선 방사능의 농도에 따른 피폭 과정을 거의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은폐하는 정부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정말 무서운 점은 아무리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한 일이 터져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대중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점입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단지 한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러시아 전체를 위험에 빠트렸고, 방사능 위험물질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그런데도 발전소의 수석 기술자인 아나톨리는 "좋은 건 아니지만, 위험한 것도 아니다"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소장 빅토르는 "책임 있는 자들의 명단을 가져왔소"라며 책임을 떠넘기려고만 합니다.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초반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덕에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단순 폭발사고로 알고 출동한 소방수들은 방사능 덩어리인 흑연을 만지고 바로 피폭돼 살과 뼈가 녹아버립니다. 푸르게 빛나는 발전소를 축제의 불꽃놀이처럼 지켜보던 시민들은 흩날리는 방사능 먼지에 오염됩니다. 뒤늦게 투입된 방화용 헬기는 발전소 연기에 다가갔다가 와이어에 걸려 추락합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습니다.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결국 발레리 레가소프라는 과학자와 연료동력부 장관이었던 보리스 셰르비나를 통해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위험성이 정부에 보고되고, 뒤늦게 방대한 병력이 투입됩니다. 그러나 수습 과정에서도 지옥도는 이어집니다. '휴먼 로봇'이라 불리는 군인들, 오직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생각하던 광부들이 점점 녹아내리는 노심봉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영웅적 행동의 대가는 처참한 죽음뿐이었으니 말이죠.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드라마는 단지 국가적인 비극의 역사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 비극적인 개인사까지 보여주며 이야기의 밀도를 촘촘히 쌓아갑니다. 피폭당한 동물을 처리하기 위해 전쟁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소년병을 투입하는 에피소드, 피폭으로 만신창이가 된 남자친구를 옆에서 지키는 여인, 군대가 들이닥쳐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시민들의 모습 등입니다. 거대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꼼꼼히 담아둔 덕에 드라마의 몰입감은 높아집니다.
 
 처음으로 생명을 죽여야하는 군인의 고뇌를 보여주는 파벨 에피소드 [사진 HBO /IMDb]

처음으로 생명을 죽여야하는 군인의 고뇌를 보여주는 파벨 에피소드 [사진 HBO /IMDb]

아마도 이 드라마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이 지구위기 급 사건이 종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전사고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일본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고 주변국에 사과하기보다는 은폐와 조작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에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현실적 공포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IMDb]

<체르노빌>은 역사적 사건을 재연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을 뿐이지만 진실의 힘은 꽤 묵직하고 강력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통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국민을 기만하고 거짓을 일삼는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환기함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조용히 웅변합니다.  
 
이 드라마는 완벽한 각본, 극적인 연출력,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완성도 높은 미장센,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심지어 매 에피소드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재미를 논하기보단 지구적인 재난을 수습하고 국가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영웅적 인물들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기억한다는 데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라도 꼭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강추합니다.
 
 

TMI

 
1. 체르노빌은 2019년 에미상 후보에 19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었다.

 
2. 드라마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1화의 첫 장면, 발레리의 독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순진해진다는 것이다. 진실을 찾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진실을 원하는 자들이 드물다는 사실을 잊고는 한다. 그러나 진실은 늘 어딘가에 존재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아도. 진실은 우리의 필요와 바람에, 체제와 이데올로기와 종교에도 관심이 없다. 진실은 숨어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체르노빌의 진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한때 나는 진실의 대가가 두려웠으나, 이제 다만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To be a scientist is to be naive. We are so focused on our search for truth, we fail to consider how few actually want us to find it. But it is always there, whether we can see it or not, whether we choose to or not. The truth doesn't care about our needs or wants. It doesn't care about our governments, our ideologies, our religions. It will lie in wait, for all time. And this, at last, is the gift of Chernobyl. Where I once would fear the cost of truth, now I only ask: What is the cost of lies?"
 
◈수정 : 2019년 8월 16일
애초 기사에 방화용 헬기가 발전소 연기에 다가갔다가 피폭돼 추락했다고 썼지만, 와이어에 걸려 추락한 것이기에 수정합니다.
 
글 김광혁·와칭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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