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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의 비서, 안중근의 동지도…일제의 핵심 '밀정'이었다"

안중근 의사 공판 사진. 맨 오른쪽이 안 의사, 그 옆이 우덕순이다. [KBS]

안중근 의사 공판 사진. 맨 오른쪽이 안 의사, 그 옆이 우덕순이다. [KBS]

1920년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비서이자 최측근인 이정,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를 함께 치른 우덕순의 이름이 일본 기밀문서에 기록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밀정 895명의 실명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내용은 13일과 20일 방송되는 KBS '밀정 2부작'을 통해 전파를 탄다.
 
독립운동가들의 치명적인 정보를 일제에 밀고했던 밀정 중에는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일제에 다 넘겼다 

[KBS]

[KBS]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김좌진 장군의 막빈(비서이자 참모)이었던 이정. KBS에 따르면 이정은 대한독립군단의 모든 것을 밀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세한 기밀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이범석·김규식 등 독립군 간부들의 인상착의와 특징, 군자금 모금 과정과 그 책임자들, 독립군의 현 재정 상태, 김좌진·김원봉의 연합 의거 계획 등 온갖 치명적인 정보들이 일제에 다 넘겨졌다. 학계 전문가들은 취재진이 발굴한 이 자료에 대해 "경악할 만한 밀고"라고 평가했다. 분량만 57장에 이른다.

 
이정이 남긴 '진중일지'(사령부일지)는 '독립운동사 자료집'에도 수록돼 있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다. 이정은 1920년 청산리 전투 직전, 그가 몸을 담고 있던 북로군정서 내부 상황을 일기로 남겼다. 그는 김좌진 장군과 함께 일제를 상대로 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 승리를 이끌었다.

 
그가 동지들을 배신한 것은 1924년이다. '진중일지'를 쓰고 4년 뒤였다. 그가 진중일지로 남긴 독립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일제에도 넘어간 셈이다.

 

안중근과 거사 치른 우덕순, 하얼빈서 밀정 간부돼

[KBS]

[KBS]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그의 주변에도 변절자가 있었다. 역시 1962년 독립유공자가 된 우덕순이다. 거사 당시 이토가 어느 역에서 내릴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우덕순은 채가구역에서 이토를 기다렸다.
 
그런 우덕순도 변절했다. 이토 저격 후 징역 3년형을 살고 나온 우덕순은 1920~30년대 하얼빈과 치치하얼 등 만주 지역에서 친일단체 '조선인민회'의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조선인민회는 일제가 당시 한국인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 친일단체다. 그는 일반 한국인과 독립운동가를 면밀히 감시하고 정보를 끌어모아 일제에 넘겼다. KBS는 우덕순이 일제 정보기관인 '특무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 등을 입수했다.
 
중국 지역 한국독립운동 전문가인 김주용 원광대 교수는 "조선인민회가 활용하는 밀정들이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고 이들 정보가 조선인민회장을 했던 우덕순에게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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