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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협대박과 평화경제의 팩트 체크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통일대박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 슬로건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경협을 대박으로 보는 듯하다. 이는 지난 5일 “남북 간 경제 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서 드러났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경제 규모와 내수시장에서 열세인데 경협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런 낙관적 평가는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나왔다. 대통령은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 경협으론 일본 추격 어려워
북한 비핵화와 개혁·개방 토대로
경제통합을 이뤄야 큰 편익 발생
남남갈등 해소가 평화경제 핵심

그러나 경협만으로 대박이 되긴 어렵다. 위의 170조원이라는 수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 개성공단 등 7대 경협 사업의 부가가치를 추정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추정에는 경협 규모가 2배로 늘어난다면 경협에 영향을 받는 북한 지역의 생산성도 연 5% 증가한다는 가정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생산성이 올라가려면 북한의 체제 변화, 즉 개혁·개방이 전제돼야 한다. 예컨대 개성공단에서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습득한 사람이 자신의 기업을 만들어 다른 기업과 미음대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북한이 시장경제화 돼 있어야 한다. 이 연구서의 제목에 ‘경협’대신 ‘경제통합’이란 단어가 사용됐다는 점도 이런 전제가 추정에 깔려 있음을 시사한다.
 
정책결정자는 경협과 경제통합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경협은 북한 경제 체제의 변화 없이 개별 사업 위주로 진행되는 경제교류다. 반면 경제통합은 경제 체제의 균일성을 전제로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개혁·개방 없인 경협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과 유사한 공단이 10개 생기더라도 남한의 국민소득은 최대 0.5% 증가할 따름이다. 오히려 북한 인프라 투자 관련 경협에는 당분간 남한의 세금이 들어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즉 대통령이 경협 효과라고 주장한 수치는 경협이 아니라 경제통합의 효과다.
 
경협이 ‘단숨에’ 대박이 될 수는 없다는 것도 팩트다. 경제적 이익은 경협 단계를 지나 통합에서 창출된다. 따라서 편익의 실현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북핵 등 정치·안보 리스크가 사라지고 시장경제화가 진전된 상태에서 경제통합이 돼야 비로소 ‘대박’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경협이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좋은 경협은 경제통합의 동력을 확보하는 경협, 즉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고 주민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업이다. 이런 목적 지향적 경협이 아니고선 ‘경협에서 통합으로, 통합에서 통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통일의 순차를 밟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경제를 일본 추격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정한 평화라면 그 경제적 효과는 클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단지 멈추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무도 평화의 도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모래에서 꽃이 필 수 없듯 신뢰받지 못하는 평화에서 경제가 자랄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들은 대통령이 비핵화 없인 진정한 평화도 없다고 확실히 해주길 바랄 것이다.
 
평화경제의 핵심은 내수가 아니라 남남갈등의 해소라는 점도 팩트에 가깝다. 경제가 통합되면 북한 문제로 인한 남한 사회의 갈등이 감소하기 때문에 편익이 발생한다. 필자의 추정에 따르면, 경제통합은 남한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0.8% 포인트 올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80%가 바로 남남갈등 해소 덕분이다. 반면 내수시장 확대 효과는 성장률 증가에 10%밖에 기여하지 못한다.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 광주광역시 지역총소득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북을 합쳐도 상당 기간 동안 내수시장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평화경제 논의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평화가 특정 대상에만 적용되는 정치 슬로건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게 열려 있는 가치가 돼야 한다.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는 평화의 가치를 일상으로 살아내는 시민, 그리고 균형감과 공공의식으로 이를 일궈내는 정치인의 합작품이다. 정치인의 책임은 북한과의 평화에만 있지 않다. 대통령이 화합을 약속했던 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 생각과 관점이 다른 이들과 더 깊이 대화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평화경제가 싹틀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념 대립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평화가 아니라 갈등을 조장한 책임에서 정부와 집권 여당은 자유로운가.
 
지난 5일 대통령의 발언은 이랬어야 했다. “북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남북 경제가 하나로 통합된다면 우리는 일본과 비견되는 경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평화를 지키려는 모든 나라와 선린우호 관계를 추구하겠습니다. 일본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모두 하나가 돼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켰듯이 저부터 솔선수범하여 우리 안의 평화를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74번째 맞는 내일 광복절에 기대하는 메시지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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