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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좋지는 않은' 전쟁 영화, 그 역설의 미흡함에 대하여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김한민(제작) – 원신연(연출), 두 감독의 합작품인 <봉오동 전투>를 볼 때 처음에는 ‘이거 안 좋군’이라고 생각했다. 클리셰(cliché)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졸다가 깨어 보니) 영화가 그리 안 좋지는 않았다. ‘안 좋지는 않았다’는 ‘안 좋았다’와는 다른 것이다. 물론 ‘좋았다’와 같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 쯤이라는 무책임한 수사(修辭)도 아니다. 사실은 좋은 쪽을 찾아 주고 싶어진다는 얘기고, 또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알고 보면 조금 델리킷한 어법.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 3. '봉오동 전투'
(오동진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어디선가 이런 느낌이 있었다고 생각했고 바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결국 머리 속에서 과거의 잔영을 떠올리는데 성공했는데(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1시간 가까운 시간 내내 생각을 한 걸 보면 이 영화를 줄곧 복기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안 좋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건 바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블랙 호크 다운>을 보고 나서 가졌던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블랙 호크 다운>은 소말리아 내전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옳고 그름, 혹은 선악의 기준과 그에 대한 스토리 그리고 그 아우라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후면에 배치한 작품이다. 그 대신 스펙타클한 전투 씬과 하드 보일드한 감성으로 시종일관 밀어부침으로써 아프리카 내전의 잔혹함과 이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무모함을 관객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봉오동 전투>의 연출 기법은 어쩌면 <블랙 호크 다운>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그래서인지, 아니 그를 위해서인 듯 <봉오동 전투>는, 촬영에 엄청 공을 들였다. 봉오동 계곡으로 상정된 공간을 드론 카메라와 핸드 헬드, 바디 캠 등등 거의 모든 고난도 카메라를 총동원해 다양한 구도의 쇼트를 구사해 낸다. <봉오동 전투>는 일명 ‘풀 쇼트(full shot)의 예술’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크고, 먼 화면을 잘 찍어 냈다. 1920년에 봉오동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 게릴라들이 그랬음직하게 지형지물을 이용해 뛰고 달리고, 숨고 튀어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을 거침없이 잡아낸다. 그 시원시원함이 이 영화의 키 포인트다.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원신연의 카메라(맨)는 전투의 긴장감을 끌어 내고 또 한껏 고조시키기 위해 공간을 크게 열었다가 순간적으로 좁히는 오목의 리듬감을 극대화 시킨다. 그 안을 치고 빠지는 인물들에게는 더 이상의 고민이 없다. 좌고우면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전투에 임하기 이전에 지녔던 한 가지 목표, 추구해 온 가치, 변하지 않는 조국 광복에 대한 정절 의식, 개인의 복수심(유해진은 동생을 잃었고 류준열은 사랑하는 누나를 뺏겼다)을 끝까지 밀어 붙일 뿐이다. 치열한 전투에서는 고민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미도 개입시킬 여지가 없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일본군을 죽여야 하든, 개인의 복수를 위해 그들을 처단해야 하든, 전투에서의 목표는 동일해진다. <봉오동 전투>는 그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이며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려는 듯 극중 인물들로 하여금 드넓은 야산을 줄기차게 뛰어 다니게 하는 장면(은 마치 멜 깁슨의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킨다)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당긴다.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자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보니 영화가 가슴을 치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감동의 한 방이 부족하다. 드라이하고 묵직한 톤을 일관되게 이어 간 연출의 저돌성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따라 붙어야 하는 소프트한 감성의 리듬을 살려 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양념처럼 붙여진 개인의 에피소드들은 마치 사족(蛇足)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일본군 소년병 유키오(다이고 고타로)는 독립군에게 잡혀 포로로 끌려 다니다가 그들에게 감화됐는지 아니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졌는지 불분명하지만, 나중에 일본 토벌대 대장 야스가와(키타무라 카즈키)에게 이렇게 외친다. 
“부끄럽습니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하는 짓이 부끄럽습니다!”  
이 대목과 이 장면은 영화 <봉오동 전투>가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상투적이고 진부한 얘기는 과감하게 들어 냈어야 했다.
 
 
<봉오동 전투>는 김한민과 원신연이 왜 이렇게 영화를 찍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장점이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과 같은 사회정치적 상황에서는 일견 ‘영화적 사치’로 비춰질 수 있는 작품이다. 감성보다는 테크놀로지, 그 기술력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관객들은 어쩌면 ‘잘 찍혀진 봉오동 전투 영화’보다는 ‘감동스러운 봉오동 전투 스토리’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두고 오히려 독립유공자들, 관계자들이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봉오동 전투>는 역설적으로 시대를 잘못 만난 작품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시(戰時)가 아니라 평시(平時)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순수하게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있는 시기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재미로 역사를 배우게 할 수 있는 작품인 셈이다. 그런데 영화가 늘 그렇게 시대의 분위기를 딱딱 맞출 수 있겠는가. 또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 가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다. 실로 딜레마로소이다, 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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