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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의 남북한, 나비의 두 날개처럼 공존·공생이 답"

남북한 나비 우표를 전수 수집한 손시헌 전 청호나이스 대표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남북 최초의 나비 우표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이 북한 최초, 오른쪽이 대한민국 최초 나비 우표.                                            장진영 기자

남북한 나비 우표를 전수 수집한 손시헌 전 청호나이스 대표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남북 최초의 나비 우표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이 북한 최초, 오른쪽이 대한민국 최초 나비 우표. 장진영 기자

 노신사가 낡은 검은색 커리어(여행용 가방)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감이 왔다. '저분이 전 세계 나비 우표 수집가인 손시헌(72) 전 청호나이스 대표겠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룸에 앉자마자 커리어의 자크부터 열었다. 주섬주섬 두툼한 우표첩들을 소중한 보물 다루듯 꺼내 책상 위에 전시했다. 낡은 우표첩을 들추니 온통 나비가 그득했다. 

 지난달 31일 만난 손 씨는 "40여년간 바티칸과 미얀마 두 나라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카빈다 등 지도상에 나오는 전 세계 300여 국가가 발행한 나비 우표를 다 모았더니 4만장 정도"라며 "그중 남북한 나비 우표가 2000장"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간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중장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바람에 한반도에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남북 관계가 나아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해 8.15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남북한 나비 우표의 지면 상봉'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소장한 나비 우표를 일반에 공개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남북한 나비 우표들의 발행 이유와 연도를 하나씩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우표 속 나비들이 살랑살랑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손 씨는 웅진그룹과 청호그룹의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기업 CEO 출신이다. 인터뷰 도중 희귀한 북한 우표도 발견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으로 발행된 조선 우표에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등장한다. 그 배경이 태극기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북이 공히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다.  

북한이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조선 우표 2종. 발행처가 조선우표사다. 김일성의 초상화 뒤로 태극기가 선연하게 보인다.                       장진영 기자

북한이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조선 우표 2종. 발행처가 조선우표사다. 김일성의 초상화 뒤로 태극기가 선연하게 보인다. 장진영 기자

 
-왜 나비 우표에 꽂혔나.  
 
"어려서부터 나비가 좋았다. 몸통을 중심으로 좌우의 날개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꽃과 꽃 사이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며 생명의 관계를 이어주는 존재 아닌가. 소통과 화합의 행복 전도사다. 남북한이 나비의 두 날개처럼 화합하고 공존하는 세상이 빨리 온다면 얼마나 좋겠나. 국내 민속 장신구에도 나비 문양이 많다. 개를 비롯해 여러 동물 우표를 수집해봤지만, 나비가 제일 좋았다. 오죽하면 내 별명이 '호랑나비'겠나.(웃음)"
구하기 어려운 남북한 나비 우표의 원도. 왼쪽 4장이 1962년 발행된 북한의 원도, 오른쪽이 1966년 발행된 대한민국 나비 우표 원도. 손씨는 북한 원도 30여장, 남한 원도 1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구하기 어려운 남북한 나비 우표의 원도. 왼쪽 4장이 1962년 발행된 북한의 원도, 오른쪽이 1966년 발행된 대한민국 나비 우표 원도. 손씨는 북한 원도 30여장, 남한 원도 1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어느 정도 수집했나.  
 
"대형 우표책으로 73권 분량이다. 이중 남한 나비 우표는 60여종 200여장, 북한 나비 우표는 350여종 1800여장이다.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나비 우표를 발행했다. 꽃 시리즈 우표의 시트에 나비를 넣은 것도 있다. 우리는 우표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발행하지만, 북한은 수집가를 위한 해외 판매 목적이 더 큰 것 같다. "
 
-최초의 남북한 나비 우표는.  
 
"남한 최초는 단기 4287년(1954년) 4월 1일에 대한민국 체신청에서 발행한 것이다. 태극나방이 모델이다. 가격은 10환짜리다. 초기에 우표는 증정 시트로 한정 제작해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줬다고 한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도 우표 수집 마니아였다고 한다. 북한 최초는 1962년 3월 13일 발행한 애기범나비, 공작수두나비 등 4종 우표다. 조선우표사가 발행처다. 남북한에 나비 박사도 있다. 남한에 석주명 박사가, 북한엔 계응상 박사가 유명하다. 둘을 기념한 우표가 남북한에서 각각 발행됐다. 세계 최초 나비 우표는 1891년 하와이왕국에서 발행됐다. 왕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머리핀이 나비 모양이었다. "  
1891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나비 우표(왼쪽). 하와이 국왕의 초상화 머리에 나비 모양의 장식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은 나비가 처음 독립적으로 등장한 1950년 사라왁(말레이지아령) 우표.  장진영 기자

1891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나비 우표(왼쪽). 하와이 국왕의 초상화 머리에 나비 모양의 장식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은 나비가 처음 독립적으로 등장한 1950년 사라왁(말레이지아령) 우표. 장진영 기자

 
-북한 우표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직거래가 불가능하다. 이베이 등 경매 사이트를 활용했다. '스탬프(우표)+버터플라이(나비)'를 치면 경매에 나온 우표가 죽 나온다. 나비 우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조선 우표 도록을 구해 홍콩, 상해, 일본으로 흘러나온 걸 찾아다녔다. 수집광들이 많은 일본엔 전 세계 우표가 다 모인다. 일본에 출장 가면 주말 이틀은 현지 상인들과 만나 우표를 사는 일정을 따로 잡았다. 한 달에 400~500만원, 1년에 5000만원가량 우표 구매에 썼다. 한번은 카메룬 나비 우표가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 낙찰가는 2달러, 5달러, 10달러인데 국제 화물 운송료가 50~60달러가 든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북한 나비 우표의 원도(原圖)도 갖고 있나.  
 
"30여장 된다. 남한 원도는 단 한장(1966년 발행 꼬리명주나비)뿐이다. 원도는 디자이너나 화가가 그린 우표 밑그림을 말한다. 조선우표사 직원들이 몰래 내다 판 것을 일본을 통해 입수했다. 원도를 갖고 찍는 시제품이 '프루프(Proof)'다. 실물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은 게 천공 우표, 없는 게 무공 우표다. 잘못 인쇄된 걸 에러 우표라고 한다. 에러 우표는 희소가치가 커 일반 우표보다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 "
중앙의 나비 두 마리의 몸체에 천공이 뚫린 에러 우표.

중앙의 나비 두 마리의 몸체에 천공이 뚫린 에러 우표.

중앙의 나비 두 마리에 천공이 뚫리지 않은 에러 우표.

중앙의 나비 두 마리에 천공이 뚫리지 않은 에러 우표.

천공이 밀려서 뚫린 에러 우표.                       손시헌씨 제공

천공이 밀려서 뚫린 에러 우표. 손시헌씨 제공

-원도는 가격이 얼마인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어떤 우표를 샀을 때 가장 기뻤나.  
 
"김일성 우표다. 해방 직후 남북한은 같은 우표를 사용했다. 이듬해부터 북한은 조선우표사에서, 남한은 우정국에서 발행하기 시작했다. 46년 3월에 나온 조선(북한) 우표 1번은 무궁화다. 두 번째가 삼선암(금강산), 세 번째가 광복 1주년 기념 김일성 우표, 네 번째가 땅의 주인(농민) 순이다. 2000년에 일본의 지인이 구경이나 해보라며 김일성 우표를 보여줬는데 진짜인가 싶었다. 갈색톤의 김일성 초상화인데 배경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게 시선을 확 끌었다. 당시까지도 북한이 무궁화와 태극기를 사용(※우표에 인공기 등장은 1948년)했다는 얘기다. 붉은색 바탕의 같은 도안 우표는 2년 뒤 당시 돈 5000달러를 주고 샀다. "
 
-북한 우표의 특징은.
 
"북한은 우표를 매우 중시한다. 체제 선전과 외화벌이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김일성·김정일 생일과 기일 우표는 매년 나온다. 반미 투쟁주간 우표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 초 북한의 영웅 '방호산' 우표가 발행됐는데 우표 도감에는 빠져 있다.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반미투쟁주간 기념 우표는 발행해 놓고도 우표 도감에는 싣지 않았다. 트럼프·김정은의 하노이 회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싸우는 남부 월남'(1964년 12월 발행)이라는 우표도 있는데 전투병 파병은 아닐지라도 군사적 지원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다. 이 밖에 조선의 차 문화, 력사(역사)인물, 조선만화영화 등 외국인 수집가들이 선호할만한 시리즈 우표도 많다."    
북한이 1964년에 발행한 월남전 기념 우표.                 조강수 기자

북한이 1964년에 발행한 월남전 기념 우표. 조강수 기자

1962년에 발행된 항일혁명투사 우표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도 포함돼 있다.      조강수 기자

1962년에 발행된 항일혁명투사 우표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도 포함돼 있다. 조강수 기자

 
-북한 우표의 최신 경향은
 
"2010년부터 한해 발행한 우표를 전부 1000세트의 책자 형태로 만들어 시판한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우표 책자를 발간했고 그해 체육을 주제로 한 '3D 입체 우표'를 냈고 프라하 세계우표전람회에도 호접란과 호랑범나비를 등장시킨 입체 우표를 출품했다."
지난해 세계우표 전람회에 출품된 북한의 입체 우표.                  조강수 기자

지난해 세계우표 전람회에 출품된 북한의 입체 우표. 조강수 기자

 
-향후 계획은.
 
"'세계 나비우표박물관'을 건립하려 한다. 한때 삼성 에버랜드가 상설 전시장을 만들기로 해 수집한 4만장의 나비 우표를 무상으로 기증하려 했으나 막판에 무산됐다. 2006년 인터넷상에 '세계 나비우표박물관'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했다. 2만장가량의 나비 우표를 나라별, 학명별로 분류했다. 애벌레로 시작해 나비가 되는 과정, 즉 나비의 일생을 각 나라 우표로 표현했다. 검색창에 호랑나비를 치면 전 세계 호랑나비 우표가 다 나오게 시스템화했다. 그런데 사이트 관리자가 자료와 도메인을 갖고 사라지는 바람에 도루묵이 됐다. 긴 세월 수집은 혼자 했지만 이젠 국민에게 돌려주고 싶다." 
 
조강수 논설위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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