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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 1000여명 세상에 나오기까지. 경남의 재야 사학자 활약있었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연합뉴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연합뉴스]

경술국치 한 해 전인 1909년 지리산 일대에서 전국 최대 규모의 의병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의병장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출신의 박매지(1882~1909·혹은 박인환으로 불림)였다. 박 의병장은 1908년 10월 박동의 경남창의대장이 산청에서 전사한 뒤 그 뒤를 이어받아 최고지도자가 됐다. 그를 따르는 의병 수가 400여명에 달했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250여명 독립유공 표창 받게해
1990년대 중반부터 활동, 이번 광복절에도 22명 포상 받아

그는 원래 지리산 일대에서 이름난 명포수였다. 일본 헌병대 등도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 정도로 ‘최고의 저격수’였다. 그는 1909년 7월 22일 진주 대평면 신풍에서 일본군과 격전 도중 순국했다. 정부는 박매지 의병장에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박 의병장은 당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를 발굴해 독립유공자로 재조명하고 우리의 기억 속으로 불러들인 사람이 있다. 바로 재야사학자인 정재상(54)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다.  
 
정 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 그중에서 200여명이 박 의병장처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올해도 하동 출신 3명, 전남 출신 10명, 광주 출신 9명 등 22명이 건국훈포장 등 정부 포상을 받게 됐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지리산 주변 영·호남 일대에서 의병을 규합해 끝까지 일제와 맞서다 전사한 산청 출신 박동의 경남창의대장과 1909년 전국 최대 규모의 의병을 지휘한 하동 출신 박매지(박인환) 의병장, 합천 출신 이차봉 형제, 남원 출신 이평국 3부자 등이 정 소장이 발굴한 대표적인 항일독립투사들이다. 1919년 광주 학생 3·1운동을 주도한 하동 출신 홍순남 여사, 1927년 제2의 하동 3‧1운동을 주도한 강대용·여국엽·여태원 선생 등도 정 소장이 없었더라면 잊혀진 존재가 됐을 독립유공자이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광복 제74주년을 맞이해 광복 당시 풀려난 독립운동가와 시민들 사진과 함께 '우리는 이겨냈고, 또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문구의 꿈새김판이 걸렸다. [뉴시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광복 제74주년을 맞이해 광복 당시 풀려난 독립운동가와 시민들 사진과 함께 '우리는 이겨냈고, 또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문구의 꿈새김판이 걸렸다. [뉴시스]

정 소장은 1993년 지역신문인 하동신문에 기자로 입사한 뒤 독립유공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광복절을 앞두고 기획기사를 준비했는데 자료나 전문가를 찾기 힘들어 끝내 보도가 되지 못했다. 이듬해 신문이 부도가 나면서 퇴사를 했는데 그다음 해에 또 다른 지역신문을 자신이 창간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유공자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사 출신이자 향토사학자인 고(故) 여재규 선생이 쓴 하동군사에 언급된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단서가 됐다. 그러나 거기에는 ‘00출신 000, 일본군에 체포돼 귀순 권유에 불복하다 총살됐다’는 정도의 간략한 언급만 있었다. 정 소장은 이런 기록을 가지고 지역신문이나 읍면 사무소 문서고 등을 뒤졌다. 그리고 국가기록원 등을 찾아다니며 당시 재판 기록이나 각 경찰서에서 올린 첩보문서, 밀정이 올린 문서, 헌병대 등이 올린 문서 등을 찾아 관련 기록들을 추가했다. 
 
정 소장은 “기록이 한글로만 된 것이 아니고 한자나 일본어 등과 혼용돼 있어 처음에는 자료를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이 과정에 일본강점기 때 공직에 계셨던 분도 만나고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증빙 기록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가 후손이 도움 줘서 고맙다고 할 때와 지역 어른이 ‘자네 참 존경하네’라는 말 한마디가 저를 이길에 매진하도록 한다”며 “목숨을 내놓고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데 우리가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앞서 2007년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가대표 33인상 등을 받았다. 현재는 그동안 수집한 여러 자료를 중심으로 영호남 항일투쟁사를 집필 중이다.  
 
정 소장은  “지금까지 3·1절, 광복절 기념행사는 중앙정부가 있는 서울에서만 개최됐다”며 “새로운 100년의 첫 3·1절 기념행사와 광복절 경축식은 남쪽 영·호남에서 시작해 북쪽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까지 순차적으로 추진해 온 겨레의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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