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탈북 모자 사망…마지막으로 뽑은 돈은 전재산 3858원이었다

12일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한모씨와 그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한모씨와 그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A씨는 지난달 31일 자신이 관리하는 한 집을 찾았다. 수개월째 수도요금을 내지 않아 물이 끊겼을 텐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는 42살 한모(여)씨와 6살배기 아들 김군이 살고 있었다. 한 달에 9만원이던 월세도 수차례 밀린 상태였다고 한다. A씨가 복도 창문을 열어 13평 남짓한 집 안을 들여다보니 누워있는 모자(母子)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을 조사했을 때 한씨의 냉장고 안에는 물이나 쌀 등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하나 있는 먹을거리라고는 '고춧가루'뿐이었다. 
잔고 '0원'이 찍혀 있는 통장도 발견됐다. 한씨가 마지막으로 돈을 인출한 시점은 5월 중순으로 뽑은 금액은 3858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입금 내용은 없었다. 한씨는 탈북자 단체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경찰은 시신이 부패한 정도를 바탕으로 모자가 그로부터 약 2주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씨와 그 아들 김모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13일 “타살과 자살 정황 둘 다 없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라며 “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사인 알 수 있지만 굶어서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 2009년 중국과 태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 교포 남성을 만나 결혼했고 아들 김군도 낳았다. 한씨의 남편은 경상남도 통영의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조선업 경기 불황이 심해지자 세 가족이 중국에 이민 갔다고 전해진다. 
 
한씨가 우리나라로 돌아온 건 작년 말이었다. 한씨 곁에는 아들 김군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로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던 한씨는 이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지원 제도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장은 한씨의 소식을 들은 뒤 “남한 사람마저 일거리가 없는 요즘, 무한 경쟁에 익숙하지도 않은 북한 사람들은 적응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굶은 채로 숨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탈북자는 활동력이 없으면 누가 거들떠 봐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탈북민 지원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탈북자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에서 2개월간 적응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사회로 나올 때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한씨는 9개월 정도만 이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숨지기 직전 모자가 정기적으로 받았던 수입은 매달 10만원 나오는 양육수당이 전부였다. 
 
한 회장은 “지원 제도가 있어도 뭘 알아야 받을 텐데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부끄러움을 타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탈북자 단체에서 같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하지만 별다른 기술도 없고 말투만 조금 달라도 사회에서 ‘인종 차별’을 겪는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