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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특허 1호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정인호 선생의 말총모자

1909년 8월24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한국인 제1호 특허 말총모자 관련 광고.

1909년 8월24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한국인 제1호 특허 말총모자 관련 광고.

특허는 기업 혁신성장의 필수요소다. 최근 미국 지식재산권자협회(IPO)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특허등록 ‘톱10 기업’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특히 삼성전자는 IBM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올해로 연속 12년 동안 2위 자리를 지킨 기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특허는 언제 누구의 무엇일까.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인 특허 1호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등록된 말총 모자이며, 특허권자는 독립운동가 정인호(1869~1945) 선생이다.
 
한국인 최초 특허권자인 정인호 애국지사(1869~1945)의 제1호 특허권자 표식 제막식이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 고인의 묘소에서 열렸다. 이날 표식 제막식에 참석한 정인호 지사 후손과 박원주 특허청장(왼쪽) 임성현 대전현충원장, 이남일 대전보훈청장 등이 박수치고 있다. 특허청은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의 주인공인 정인호 애국지사가 말총모자 특허로 민족기업을 육성,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희생정신과 특허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을 기리고자 제1호 특허권자 표식을 부착했다고 밝혔다.프리랜서 김성태

한국인 최초 특허권자인 정인호 애국지사(1869~1945)의 제1호 특허권자 표식 제막식이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 고인의 묘소에서 열렸다. 이날 표식 제막식에 참석한 정인호 지사 후손과 박원주 특허청장(왼쪽) 임성현 대전현충원장, 이남일 대전보훈청장 등이 박수치고 있다. 특허청은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의 주인공인 정인호 애국지사가 말총모자 특허로 민족기업을 육성,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희생정신과 특허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을 기리고자 제1호 특허권자 표식을 부착했다고 밝혔다.프리랜서 김성태

특허청은 13일 오후 대전현충원 정인호 선생 묘역에서 증손녀 4명 등 후손들과 함께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인호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정 선생이 한국 특허사에 남긴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묘역에 상징물을 부착해 특허제도에 기여한 공로도 기렸다. 
 
정인호 선생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교육을 통한 민족교육운동에 힘쓰는 등 교육자ㆍ 저술가ㆍ발명가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정 선생의 말총모자 특허는 1909년 8월19일 통감부 특허국에 특허 제133호로 등록됐다. 한국으로서는 첫번째 특허였다. 통감부는 을사늑약(1905년) 이후 일제가 한국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이다. 당시 대한제국(1897~1910년)의 특허제도는 일본에 의해 1908년 한국특허령이 시행되면서 도입됐다.  
 
1910년 7월23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말총모자 관련 광고. 한국인 최초의 특허제품이다. [사진 특허청]

1910년 7월23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말총모자 관련 광고. 한국인 최초의 특허제품이다. [사진 특허청]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훈록에 따르면 정 선생은 한국인 최초의 특허권자로 말총모자 뿐 아니라 말총 핸드팩, 말총 토수, 말총 셔츠 등 다양한 말총제품을 제작해 일본ㆍ중국 등지에 수출하며 민족기업을 성장시켰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부는 독립 운동가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이게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다”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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