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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무용론? 홍대 ‘불금’은 강 순경이 지킨다

‘불금 홍대’ 지키는 강승연 순경

 
한해 3만 5000여 건, 매일 약 100건 건씩 경찰이 출동하는 곳. 경찰에서 가장 바쁜 지구대로 서울 마포 홍익지구대를 꼽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유흥가인 데다가 온갖 종류의 사건이 벌어지다 보니 소속 경찰도 72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 홍익지구대에는 이지은 지구대장을 비롯한 9명의 여경이 근무 중이다.  

대한민국 휩쓰는 ‘젠더 전쟁’ <하>

 
지난해 임용된 강승연(26) 순경은 지구대 4팀의 유일한 여경이다. 지난달 19일 금요일 오후 8시, 홍익지구대에서 만난 강 순경은 야간 근무를 위해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지만 그에겐 200건의 크고 작은 사건과 싸워야 하는 긴장되는 밤이다. 최근 번지고 있는 여경 비난 여론도 강 순경이 맞서야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는 “비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다”고 했다.
 
복장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강 순경이 동료 경찰과 급히 출동했다. 망치로 집 문을 두드리는 70대 남편을 별도의 장소에 격리한 뒤, 강 순경이 아내와 대화를 시도했다. 고장 난 문을 열기 위해 119구조대의 ‘절단기’까지 등장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절단기로 문을 개방한 뒤 강 순경이 집안으로 가 아내를 진정시킨 뒤에야 2시간 넘게 이어진 소동이 마무리됐다.
 
지난달 19일 만난 강승연 순경은 순찰차에 올라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강 순경은 "임용 뒤 주말 등을 이용해 운전 교육을 따로 받았다"고 했다. 정수경 PD

지난달 19일 만난 강승연 순경은 순찰차에 올라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강 순경은 "임용 뒤 주말 등을 이용해 운전 교육을 따로 받았다"고 했다. 정수경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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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순찰차에 올라탄 강 순경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최근 사회 일각에 떠오른 여경 혐오 분위기를 몸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여경이라 운전을 못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임용 뒤 주말 등을 이용해 운전 교육을 따로 받았다”고 말했다.
 
20일 새벽 3시 폭력 사건이 접수됐다. 한 만취한 20대 여성이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 행인들을 폭행하고 물어뜯는 등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신고였다. 결국 여경인 강 순경이 나섰다. 동료 경찰은 “여성 관련 사건에선 신체 접촉 등 민감한 일이 발생할 수 있어 여경인 강 순경 혼자 나서야 하는 순간이 꽤 있다”고 전했다. 강 순경이 여성을 제압해 수갑까지 채웠지만, 순찰차에 데려가는 것도 20분 이상 걸렸다. 소란은 지구대에서도 이어졌다. 새벽 3시 50분, 이 여성은 강 순경에게 욕설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는 주먹까지 휘둘렀다. 결국 강 순경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여성을 체포했다. 강 순경은 “여경의 입장에선 신체적 충돌 외에도 외모 비하 발언이나 성희롱 발언 등을 견뎌야 한다”며 “하지만 남경들은 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묵묵히 고생한다. 남자와 여자를 따로 구분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만취해 지구대에서 행패를 부린 한 여성을 강승연 순경이 진정시키고 있다. 강 순경은 이날 이 여성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했다. 김지선ㆍ정수경ㆍ왕준열 PD

만취해 지구대에서 행패를 부린 한 여성을 강승연 순경이 진정시키고 있다. 강 순경은 이날 이 여성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했다. 김지선ㆍ정수경ㆍ왕준열 PD

 
강 순경은 오전 9시가 돼서야 지구대를 나섰다. 강 순경은 취재진에게 “체력 문제 등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여경들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여자라서’ ‘여경이니까’ 식의 무차별적인 색안경은 벗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홍 앞치마 두른 정원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23일 화요일 오전 8시 50분. 일곱 살 아이들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맞은편에는 분홍색 앞치마가 익숙해 보이는 선생님이 반갑게 아이들을 맞는다. 부산 민들레유치원의 유일한 남교사 정원근(31) 씨다.
 
정씨에겐 열 살 어린 늦둥이 동생이 있었다. 동생을 돌보는 일이 즐거웠던 정씨는 고등학생 때 유아교육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자들이 정말 안 가는 학과라고 해서 지원할 때 두려움도 있었죠.” 60명이 넘는 학과 동기 중 남자는 총 3명이었고, 정씨만 교사가 됐다. “다른 동기들은 ‘영유아 교사는 봉급도 작은데 남자가 하기 좀 그렇다’며 전공을 바꾸거나 다른 일을 알아보더라고요.”
 
부산 동래구 민들레유치원 7세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정원근(31)씨. 김지선·정수경·왕준열 PD

부산 동래구 민들레유치원 7세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정원근(31)씨. 김지선·정수경·왕준열 PD

 
지난해 교육 기본통계에 따르면 유치원 선생님의 98.3%가 여자다. 정씨가 남자 유치원 교사로 첫 발을 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영경 원장은 “(정씨가 일하기 시작한) 첫해에는 냄새가 난다거나 아이 손에 뽀뽀했다는 부모님들의 민원 때문에 고생했다”고 했다. 정씨는 “저도 움츠러들거나 위축되기도 했지만, 더 부드러운 자세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했다”고 했다. 어느덧 정씨는 아이들이 서로 반에 들어가려고 하는 ‘인기 선생님’이 됐다. 특히 야외에서 뛰어노는 체육 시간에 정씨의 재능이 진가를 발휘한다.
 
정씨는 “남자든 여자든 노력하면 아이들을 더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을 품을 줄 아는 선생님이라면 어느 선생님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유치원의 마지막 수업인 체육 시간에는 친구들과 협동하여 컵을 쌓는 활동이 진행됐다. 김지선·정수경·왕준열 PD

이날 유치원의 마지막 수업인 체육 시간에는 친구들과 협동하여 컵을 쌓는 활동이 진행됐다. 김지선·정수경·왕준열 PD

 
경찰, 군인 같은 ‘남초 직업군’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정씨같은 ‘여초 직업군’의 남성들도 젠더 이슈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3만4120명의 어린이집 교사 중 남성은 1500명이다. 이들은 부모에게 불편하거나 불안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맘 카페에선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데 맘에 걸린다” “딸 엄마인데 저라면 안 보낸다” 등 부정적인 여론이 꽤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보람이 크다”는 제주지역 어린이집 교사 오석훈(26) 씨는 “남자 보육교사로 10년, 20년씩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불안감에 이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체 간호사의 4.3%(2019년 2월, 면허 소지자 기준)인 남자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을 끝으로 4년간의 간호사 일을 그만둔 박재완(28) 씨는 “주변 남 간호사들을 보면 2년 정도 일하면 90% 가까이 그만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간호사들이 (여자 간호사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이직이 잦은 것인데, 그런 근본 문제는 외면하고 ‘남 간호사들은 빨리 그만둔다’며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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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젠더 갈등, 해법은?
최근 유독 젠더 갈등이 극심해지는 원인에 대한 진단조차 전문가들 간 입장이 엇갈린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개최한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에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계와 반페미 성향을 가진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은하선 작가가 “지금의 젠더갈등은 사회가 평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성평등 문제가 메인 이슈로 올라왔기 때문에 젠더 갈등이 심각한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라고 말하자, 오세라비 작가는 “성갈등 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친페미 정책 때문”이라고 맞받았다. 오 작가는 또 “페미니즘은 여성단체들의 밥벌이와 연관이 있다”며 “이러한 현상에 영페미들이 부화뇌동한 것이 (한국의) 페미니즘이고 젠더갈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남성과 여성 상호간의 ‘혐오 정서’를 없애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오해 해소를 꼽았다. 남성들은 워마드 등 일부 극단적 여성주의를 ‘페미니즘’으로 오해하고, 여성들은 일베에서 벌어지는 몰카·리벤지포르노 등 범죄 행위를 한국 남성의 전반적 행태라고 보는 상황에선 생산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남성들 중 상당수가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반페미니즘적 정서를 보이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을 오해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지금의 20대 남성은 대부분 남성우월적 성향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정작 일상 생활에선 학업·성적 등에서 여성이 우위를 보이는 환경에서 자라 딜레마를 겪는 세대”라며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성 차별의 댓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탓에 기본적으로 ‘억울함의 정서’가 배어 있다”고 말했다.
  
김봉석 성균관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는 “해외 선진국은 양성 문제에 대해 이미 시행착오를 다 겪고 이제는 LGBT(성소수자) 문제가 중심인데, 한국은 이제야 남녀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 갈등이 시작되는 국면”이라며 “일상생활 속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가부장·성차별적 요소를 줄여 나가는 것에서부터 젠더 갈등의 봉합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녀 모두 서로에 대한 ‘전투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역사를 따져 보면 일베 등 극단적 집단을 중심으로 남성이 여성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엔 여성들이 같은 방식으로 남성을 비난하는 ‘혐오 미러링’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젠더 이슈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갈등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출산율 등 정부 정책과도 연결이 되는 만큼 사회 통합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dino87@joongang.co.kr
 

탐사보도팀=손국희ㆍ정진우ㆍ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영상취재 = 김지선ㆍ정수경ㆍ왕준열 PD 

 
◆대한민국 휩쓰는 ‘젠더 전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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