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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호구의 연애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호구’라는 단어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발견했다. 인기 개그맨 등 남성 연예인이 여행지에서 일반인 여성 출연자와 로맨스를 만드는 예능프로 제목이 ‘호구의 연애’였다. 1%대 시청률로 고전하다 지난 일요일 6개월 만에 막방을 했다. ‘짝짓기 예능’의 기시감, 가식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호구는 중의적 표현이었다. ‘호감 구혼자’의 줄임말이자 말 그대로의 호구(虎口·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를 의미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론칭 당시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는 ‘을’이다”라는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만인의 연인인 스타도 사랑을 얻기 위해 을이 됐고, 호감 구혼자에서 호구로 변해갔다.
 
그 컨셉과 진행 과정을 되돌아보니 지금 외교·안보 상황과 판박이다. 호감 구혼자이던 ‘한반도 운전자’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당장 성사될 것 같던 비핵화라는 사랑은 요원하기만 하다. 지난해 4월 “새벽잠 안 설치게 해주겠다”(김정은 위원장)던 약속은 남한을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 실험으로 파기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의 상관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버지와 임대료를 받던 일화를 소개하며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 월세 수금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했다는 외신 보도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도발하는 일본을 다룰 해법 역시 마땅한 게 없다.
 
이쯤 되면 호구를 넘어 ‘범의 아가리(虎口·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에 들어선 듯하다. 정부는 조롱이 난무해도 여전히 ‘사랑 앞에 을일 수밖에 없는’ 호구의 연애를 하겠다는 것인지. 함께 호구 잡힌 국민은 난처하다는 답변이라도 듣고 싶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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