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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로는 부족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참 민망하다. 북한의 무례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남북 대화를 위해 정성을 다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힌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북한은 올해 들어 벌써 7차례 신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우리 정부는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못하다, 미사일이지만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호의에 북한에서 돌아온 것은 ‘사거리 하나 제대로 판정 못 해 쩔쩔 매여 만 사람의 웃음거리’,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라는 조롱이다.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맞을 짓을 하지 마라’, ‘평화 타령’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대화하더라도 미국과 하지 한국과 할 일은 없다’고 한다. 전형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일본은 식민지 시대의 부채 의식을 벗고, 한국에 경제 제재를 한다. 북한의 미사일·핵 공격에 대비한 방어 장비 하나 들여오는데도 중국은 노골적인 경제보복을 한다.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도 오히려 큰소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다시 1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에게 전략은 있는 건가? 문 대통령의 생각을 모르겠다. 북한의 뜻을 ‘착하게’ 해석해주고, 위안부 전체가 동의할 때까지 결정을 미루고…. 동네 아저씨라면 정말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그저 착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주저하면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된다. 동네 아저씨야 나 혼자 참으면 그만이다. 대통령이 머뭇거리면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고, 국민이 피눈물을 흘린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참으로 아리송하다. 특히 ‘평화 경제’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발언은 뜬금이 없다. 그의 평화 구상은 뭘까. 통일하면 인구가 많아진다는 단순 셈법만 말한 것일까. 일본 경제 제재 대응책을 말하면서 꺼내놓을 내용인가.
 
그는 후보 시절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말했다. 바른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역학 관계를 잘 짜서 평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면 된다. 내가 얻어맞아도 참고, 내 것을 모두 내주어 해결하려는 건 착한 동네 아저씨의 발상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에 한마디 말도 못한 게 나쁜 신호를 보냈다. 강하게 압박하면 꼼짝 못 한다는 선례를 보였다. 러시아 군용기가 막무가내로 침범했다. 일본 태도도 달라졌다. 그런데 일본에는 과잉대응이다. 기존 합의를 뒤집고,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며 ‘죽창’을 들었다.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다져야 먼 사람도 두려워한다. 친구를 더 공격하면 누가 가까이하겠나.
 
이제까지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통해 북한과 접촉했다. 그런데 한국이 아무 조건 없이 미국과 북한을 재촉하며 스스로 입지를 없애버렸다. 이제 북·미가 합의하면 거부할 그 어떤 조건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패싱’이다. 우리 영토인 판문점에서 트럼프와 김정은만 보였다. 김정은이 한반도의 주인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북·미 협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참으로 걱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 군사훈련이 돈이 많이 들어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트윗한다. 당장 방위비 분담금을 일 년 만에 5배나 올려달라고 한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탄을 매물로 내놓는다면 미국이 어떤 보상을 해줄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6·25 직전에도 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이 빠졌다. 그동안 몇 번이나 철수 계획이 세워진 주한미군을 유지한 데는 일본의 지원이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고, 무장할 근거가 마련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재무장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이같은 한·미·일 협력 구도에서 빠져나가면 정부는 도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려는 것일까. 2차 대전 이후 유엔 질서는 핵무기 보유국(P5) 중심이다. 평화의 시대 같아도 힘이 말한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다. 미국에, 또 우리 정부에 완전한 비핵화를 관철할 의지가 있는가.
 
독일은 급변사태 전 주변국을 설득했다. ‘일본을 이기기 위한 통일’을 내세워 일본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을까. 미국은 동의할까. 동맹국에 등을 돌리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대신 우리 손을 잡아줄까.  
 
구한말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일본 경제가 망한다’고 우리끼리 외쳐봐야 판단만 그르친다. 일장기 모욕, 일본 상품 배격이 일본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까. 더 큰 걱정은 미래세대다. 언제까지 과거의 짐을 다음 세대의 등에 지워야 하나. 지도자는 국민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가야 한다. 우리 앞에서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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