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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떳떳한 꼴찌인생, 내겐 매일매일이 이야깃거리"

지난 8일 올해 가장 더운 날,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송미옥 작가를 인터뷰했다. [사진 서영지]

지난 8일 올해 가장 더운 날,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송미옥 작가를 인터뷰했다. [사진 서영지]

 
마감에 쫓겨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글을 시간 맞춰 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직업으로 하기에도 어려운 일을 그냥 ‘좋아서’ 매주, 많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글을 보내온 사람이 있다. 중앙일보 ‘더,오래’가 발굴한 송미옥 작가의 얘기다. 송 작가의 연재물 ‘살다보면’이 지난 7일 100회를 기록했다. 더,오래 사상 첫 100회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묶음: 송미옥의 살다보면)
 
송 작가를 만나러 이날 오후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전화 인터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송 작가 글의 바탕이 되는 안동과 그가 일하는 고택, 이웃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뭐 더 특별할까 싶다가도, 어떻게 살기에 이렇게 매번 웃고 울리는 이야기보따리가 끊임없이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송미옥 작가의 집에 가니 언젠가 송 작가의 글에서 봤던 '복실이'가 나를 맞았다. '복실이집'이라고 뚜렷하게 쓰인 문패가 눈에 띈다. [사진 서영지]

송미옥 작가의 집에 가니 언젠가 송 작가의 글에서 봤던 '복실이'가 나를 맞았다. '복실이집'이라고 뚜렷하게 쓰인 문패가 눈에 띈다. [사진 서영지]

 
푹푹 찌는 더위 속에 안동에 도착해 송 작가의 집부터 찾았다. 두 팔을 벌려 맞이하며 두 손 가득 직접 기른 고추 등 선물을 내어준다. 바로 하루 머물 고택으로 이동했다. 고택으로 들어서니 마치 시간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송 작가가 근무하는 곳은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이다. 조선 전기 1558년에 건립됐으나 안동댐 수몰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경북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역사 깊은 곳이다. 현재는 젊은 종손이 종가를 개방해 작은도서관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쉬었다 갈 수 있게 해놨다.
 
무엇보다 작은 다락방 두 개가 인상적이었다. 만화책으로 가득 찬 다락엔 에어컨도 있어서 폭염도 잊고 몇 시간이고 책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이니 사람들이 꽤 오지 않냐고 물으니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 주로 여기서 글을 쓰는 등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이어 “처음 취업하고 만난 종손은 성격이 까칠하고 냉정한 분 같아서 피해 다녔는데 얼마 후 손목에 아대를 하고 출근한 나를 보더니 ‘당분간 손목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라. 청소하는데, 손목을 쓰지 말라니…. 하하. 그날 그분의 깊은 마음을 읽었다. 그 이후로는 눈빛으로도 알아듣고 일을 척척 하고 있다. 우리 고택 자랑도 기사에 좀 많이 실어달라”며 부탁한다.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은 조선 전기 1558년에 건립됐으나 안동댐 수몰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경북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역사 깊은 곳이다. [사진 서영지]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은 조선 전기 1558년에 건립됐으나 안동댐 수몰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경북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역사 깊은 곳이다. [사진 서영지]

 
다음 날 아침, 고택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양손엔 바구니며 보따리가 한가득이다. 성당에 다니며 알게 된,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듣는 언니인데 서울에서 손님이 왔는데 아침밥도 안 주면 쓰냐며 13가지 반찬을 싸 왔단다. 이렇게 새벽부터 알지도 못하는 손님을 위해 반찬을 준비해 오는 지인을 보니 송 작가의 이야기보따리가 어떻게 넉넉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송 작가의 글을 맨 처음 받아 살피며 눈물 콧물 흘릴 때 한 번씩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럴 때면 “글 봐주는 쌤이 제 스승”이라며 겸손함을 또 가르쳐주던 이다.
 
송미옥 작가의 지인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밥은 차려줘야 한다며 새벽부터 13가지 반찬과 미역국을 싸 왔다. [사진 서영지]

송미옥 작가의 지인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밥은 차려줘야 한다며 새벽부터 13가지 반찬과 미역국을 싸 왔다. [사진 서영지]

 
어울려 사는 게 뭔지 알려주는 마음 따뜻해지는 글을 오래오래 쓰길 속으로 바라며 아침부터 한 상 가득 푸짐하게 먹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은 송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더,오래 필진 중 첫 100회를 맞았다. 소감은?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 살아 있는 나날이 ‘그날이 그날’이 아니라 ‘그날은 그날’로 바꿔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소박한 삶을 사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다 그렇고 그래도 또 다들 다른 모습이듯이 살아가는 이야기라 오래 쓸 수 있었다. 내가 등단한 인물이면 이렇게 오래 못 쓰지 않았을까 한다. 자존감 챙겨야지, 눈치 봐야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느라 말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러나 떳떳한 꼴찌인생이 나이 드니 가장 편한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갖고 있나?
남편이 아팠을 때 10년 동안 산속에 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동네 할머니들 이야깃거리를 글로 쓰면서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적은 글이 노트로 10권 분량이더라. 라디오에 사연도 보내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얘기 저 얘기 보따리에 넣어두게 됐다.

 
최근 글쓰기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더,오래에 글을 쓰면서 정식으로 수필 공부도 하고 요즘은 스토리텔링 수업도 듣는다. 오랜 시간 사는 게 바빠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나이 들면 다 녹아 없어질 줄 알았는데, 마음 한구석에 잠자고 있었나 보다. 요즘 날마다 수업 마치고 10시에 집에 들어오니 동네에서 바람이 났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떳떳하면 어떤 구설수에도 마음 상하지 않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더라.
 
올해 초급단계를 마무리하고 중급 스토리텔링 작가 양성 수업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다. 하원준, 김창래 감독이 열정적으로 강의하니 내 글쓰기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기사를 작성하던 중 송 작가가 중급 스토리텔링 작가 양성 수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지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송미옥 작가(오른쪽). 지인 언니한테는 사진 찍어야 하니 예쁘게 입고 오라고 해놓고선 정작 본인은 앞치마를 두르고 나온다. 일하는 곳이니 앞치마 차림으로 찍겠다는 것을 언니가 막자 송 작가는 앞치마를 벗은 후 포즈를 취했다. [사진 서영지]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지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송미옥 작가(오른쪽). 지인 언니한테는 사진 찍어야 하니 예쁘게 입고 오라고 해놓고선 정작 본인은 앞치마를 두르고 나온다. 일하는 곳이니 앞치마 차림으로 찍겠다는 것을 언니가 막자 송 작가는 앞치마를 벗은 후 포즈를 취했다. [사진 서영지]

 
글 100편을 쓰면서 인생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다. 어젯밤 글쓰기 수업에서 ‘기자가 와서 우리 고택에서 잔다. 출근길에 김밥을 사 갈 예정’이라고 하니 지인 언니가 새벽부터 전화했더라. 멀리서 온 손님에게 김밥이 뭐냐고. 반찬을 준비해서 갈 테니 따뜻한 밥을 대접하라고. 올해 들어 최고로 더운 날 바리바리 반찬을 준비해 온 언니를 보며 사랑과 배려를 배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언덕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송미옥 작가에게 ‘더,오래’의 의미는?
더,오래는 내 인생의 선생님이다. 그냥 그냥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 큰 기회를 선물하고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었다. 내게 감추어진 작은 재능을 깨워 줬고, 기죽은 일등보다 기 산 꼴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힘을 줬다. 요즘은 더,오래의 백만기 님, 박헌정 님, 이태호 님, 강인춘 님의 글을 자주 읽는다. 바른 가치관 정립에 도움을 주기에 열심히 퍼 나르기도 한다. 나이 들면 경제·정치 뉴스보다는 생활과 정신에 보탬이 되는 몇 개의 글로도 삶의 질이 달라지고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 같다.  
 
앞으로 연재에 관한 계획은?
내게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소소한 행동 100가지’를 적은 수첩이 있다. 며칠 전 스토리 수업에서 그 중 한 가지를 이뤘다. 오래도록 벼르고 별러 성공한 거라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벌렁거리고 벅차서 기쁨이 컸다. 그게 무어냐 하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제가 해보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먼저 손들어 보는 거다.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나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만 가면 주눅이 들고 박수도 못 칠만큼 부끄러움이 많았다. 60년 동안 그 소소한 것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걸 이번에 드디어 성공했다. 재산을, 돈을 많이 모아야 성공인가? 남과 비교해서 1등을 해야 성공인가? 작아도 이것이 내겐 멋진 성공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소박한 우리가 작은 꿈을 크게 꾸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되는 것, 기회가 이어진다면 내 주위에 사는 이웃의 그런 기분 좋은 성공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크게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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