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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美에 중재 요청 안 했다…‘글로벌 호구’될 일 있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미국에 방문했을 때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12일 밝혔다.
 

“‘알아서 하라’고만 했다”

김 차장은 이날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미국에 중재 요청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제가 미국에 가서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 방문한 목적은 우리 입장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미국의 입장을 듣고자 한 것”이라며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오고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미국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 그것(중재)을 요청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한일 갈등이 본격화하던 지난달 12일 3박 4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당시 김 차장의 방미는 미국의 중재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김 차장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김 차장은 “미국을 방문한 목적 가운데 첫 번째는 내(한국) 입장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었다”며 “우리나라에는 삼권분립이라는 게 있고, 대법원 판례가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다. 우린 이것을 존중한다(고 미국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선 아직도 (개인) 청구권이 남아있다는 것을 대법원 판례에서 확인한 것뿐이라는 것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김 차장은 대표적 불평등 조약으로 평가받는 1882년 미국과 체결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사례도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1882년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에는 일본과 조선이 문제가 있으면 미국이 조정을 해주겠다는 ‘거중조정’의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조선이 나라 구실을 한다는 전제 아래 이 조약을 맺었고, 조선이 약하기 때문에 미국이 조정을 안 해도 된다’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구한말 당시 미국에 중재 요청을 했었지만 결국 미국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은 미국에 대한 필리핀 지배권을 확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서로에 대한 식민통치권을 눈감아 줬을 뿐 결과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해 출국장 앞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로 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해 출국장 앞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로 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미국 상·하원에 가서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하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는 종속변수로 해서 아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물었다”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가 않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해서 나머지 아시아 국가를 일본을 통해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 하면, 그렇지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갖고 갔기 때문에 ‘중재’란 말을 하지 않았고 ‘미국이 알아서 해라’는 태도를 전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중재라는 것은 둘 중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미국으로부터) 청구서도 들어올 것이고, 과거에 우리가 중재 요청한 다음에 거절당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참여정부 시절 자신이 일본과의 FTA 타결을 반대했던 사례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김 차장은 “당시는 핸드폰 부품의 50% 이상이 일본 부품이던 때”라며 “‘일본과의 소재·부품 분야의 격차가 너무 큰 상황에서 한일 FTA를 타결했을 경우 제2의 한일 강제병합이 될 것 같다.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씀드렸었다”고 말했다.
 
한일 FTA 체결을 통해 관세를 낮춰도 일본 특유의 비관세 무역장벽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일본과의 FTA 반대 이유였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김 차장은 또 “노 대통령 때도 아베 신조가 일본 총리였는데, 이름의 한자 ‘신’자는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사무라이 ‘신사쿠다카스키’와 같은 ‘신’자를 사용한다”며 “그 사람들이 주장한 게 정한론(征韓論·1870년대 전후 일본에서 대두된 조선 공략론)이다. 정한론의 DNA가 흐르는 사람과 이 시점에서 FTA를 체결해서 제2의 한일강제병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한일 FTA를 깼다”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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