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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적군이 여자라고 봐주나”…체력평가 논란이 발단

 
시작은 지난 5월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15초 남짓한 경찰과 취객의 ‘충돌 영상’이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남자 경찰관이 한 취객에게 뺨을 맞은 뒤 제압하는 과정에서 함께 있던 여경이 밀려나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 영상은 짧았지만, 파급력은 컸다. ‘여경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대한민국 휩쓰는 ‘젠더 전쟁’ <상>
젠더갈등 부른 여경·여군 무용론
여경 시험 때 변칙 팔굽혀펴기
육사 여생도 군장 든 남성 화근
청와대에 여경 폐지 청원까지
여성들은 “마녀사냥 몰아가나”

 
이후 공개된 약 2분 분량의 추가 영상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남자분 한 분 나오세요”, “(수갑) 채워요”라는 여경의 육성이 공개되면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경 폐지 청원까지 등장했고, 원색적인 비난 글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민갑룡 경찰청장까지 나서 “여경은 물러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체력이 중시되는 다른 직군까지 불똥이 튀었다. “여군이나 여소방관도 필요 없다”는 비난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하는 건 여성 혐오다”란 반박이 뒤섞이며 젠더갈등이 폭발했다. 해당 여경은 지난 5월 ‘악플러’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지난달에는 폭력을 행사한 피의자들을 상대로 112만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대림동 여성 경찰 논란. 최초 공개된 영상 속 여경이 피의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 온라인에선 '여경 무용론'이 불거졌다. [사진 구로서 공개 유튜브 영상 캡처]

대림동 여성 경찰 논란. 최초 공개된 영상 속 여경이 피의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 온라인에선 '여경 무용론'이 불거졌다. [사진 구로서 공개 유튜브 영상 캡처]

 
‘대림동(실제로 구로동에서 발생) 여경 동영상 논란’은 일상을 넘어 직업 영역까지 스며든 젠더갈등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대외협력팀장은 “합리적인 토론이나 논쟁 수준을 넘어서 혐오나 증오심이 표출되며 소모적 갈등이 반복되는 게 문제”라며 “최근 여경·여군 논란은 다른 직업군까지 번질 젠더갈등의 예고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림동, 혐오, 문제’ 여경 연관어 분석해보니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타파크로스와 온라인상의 데이터를 분석(2016년 1월 ~2019년 6월)해보니 여경과 관련된 상위 10개 연관어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남경(4만2052건)’이었다. ‘대림동’ ‘문제’ ‘혐오’ 등 부정적인 연관어들도 포함됐다. 반면 ‘경찰’의 연관어는 ‘신고’, ‘조사’, ‘범죄’ 등 중립적인 단어들이 많았다. 김수연 타파 크로스 이사는 “여경은 주로 남경과 대비적으로 언급됐고, 대림동 사건 이후 부정적 검색량이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키워드와 함께 언급됐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어떤 키워드와 함께 언급됐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분기별 추세를 보면 여경에 대한 갈등이나 혐오 여론이 최근 가파르게 증가하는 게 확연하다. 2017년 상반기만 해도 여경 관련 연관어는 ‘신고’ ‘폭력’ 등 주로 경찰 업무와 관련된 단어였다. 2018년 상반기에도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몰래카메라(몰카)’나 ‘시위’를 대처하는 주체로서 여경이 언급됐다. 그러다가 2018년 하반기에 부정적 반응이 급증했다. 일간베스트(일베) 저장소를 중심으로 여경 혐오론이 번지면서 ‘일베’ ‘혐오’ 등의 단어가 연관어로 등장했다.
 

‘대림동 여경 논란’으로 촉발된 직업 속 젠더갈등 

젠더갈등·혐오 중심 선‘여경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젠더갈등·혐오 중심 선‘여경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림동 동영상 논란을 기점으로 여경은 젠더갈등의 중심에 섰다. 올해 상반기 ‘대림동’ ‘무용론’ ‘세금’과 함께 ‘여군’ 같은 다른 직군까지 여경의 연관어로 떠올랐다. 이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성범죄’ ‘걸캅스(영화)’도 상위 연관어에 올랐다. 김 이사는 “올해 여경 비난론은 대림동 사건 대처 논란이나, ‘세금이 아깝다’는 식으로 전개됐고, ‘성범죄 피해자를 위해 여경이 필요하다’는 식의 옹호 여론도 덩달아 늘었다”고 분석했다.
 
여경 이슈에서 폭발한 젠더갈등의 불씨는 여군·여소방관까지 번졌다. 과거 논란들까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방TV에서 2017년 논란 뒤 삭제한 ‘육사 생도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 영상에는 남 생도들이 행군 훈련 중 여 생도의 군장을 나눠서 들어주는 장면이 나오는 데, ‘군인에겐 성별이 중요치 않은데, 여자라고 편의를 봐주는 건 잘못됐다’는 비판의 글이 달렸다. 한 소방 훈련 영상도 다시 논란이 됐다. 중장비를 메고 초고층 빌딩에 올라가는 남 소방관의 모습과 무전기와 호루라기를 들고 있는 여 소방관의 모습을 대비하며 ‘여 소방관 채용은 세금 낭비’란 비난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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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여초 직업군 남녀 비율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남초. 여초 직업군 남녀 비율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로 빅데이터 분석 결과 여군 관련 연관어에는 성범죄, 성차별과 관련된 단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무죄’ ‘성폭행’ ‘범죄’ 같은 단어와 함께, 여군을 성적 대상화 했다는 논란을 빚은 웹툰 ‘뷰티풀 군바리’가 상위 검색어에 올랐다. ‘군인’과 관련된 연관어가 ‘전쟁’ ‘국가’ ‘국민’ 등 본연의 업무와 관련된 것과 대비된다. 특히 여군에 대한 부정적 언급 비율은 46.3%로 군인(27.7%)보다 훨씬 높았다.
 

“여경 전체 매도 안타깝다”…“남경 선호하기는 해”

젠더갈등·혐오 중심 선‘여경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젠더갈등·혐오 중심 선‘여경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 경찰이나 군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 지역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여경은 “요즘 여경 기사의 댓글을 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는 “많은 여경이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혐오의 시선으로 전체를 매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남성 경찰인 A 경사도 “남경이냐 여경이냐를 따질 겨를이 없이 함께 고생하는데, 단지 성별을 이유로 공격하면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일부 남성 경찰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형사과에서 7년 이상 근무한 한 경찰은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출동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여경보다는 남경을 선호하게 된다”며 “여경의 비율이 높아지는데 그만큼 경찰 조직의 능력도 개선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꽤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경찰젠더연구회 소속 주명희 경정은 “남경의 잘못은 개인의 문제로, 여경의 잘못은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몰아가는 건 명백한 혐오”라고 주장했다. 주 경정은 “업무 성과를 바탕으로 개인을 평가해야 하는데 단지 여성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경찰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군의 고민도 여경과 비슷하다. 경기 지역에서 장교로 복무 중인 한 여군은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 군인이냐’는 말을 들으면 편견의 벽을 실감한다”며 “군대가 남성 중심의 조직이다 보니 ‘여자라서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작은 행동부터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최근 전역한 다른 여군은 “군 생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차별 경험’이었다”며 “여군에 대한 비난 여론과 ‘여군이 ‘부대의 꽃’이라는 이중적 잣대가 부담스러웠다”고 전했다.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 ‘무릎 대고 팔굽혀펴기’ 

2016년 5월 부산경찰청 상무관에서 열린 제1차 경찰공무원(순경) 채용 체력시험에서 여경 응시자들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6년 5월 부산경찰청 상무관에서 열린 제1차 경찰공무원(순경) 채용 체력시험에서 여경 응시자들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여경·여군과 관련해 가장 논쟁이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체력’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범죄자나 적군이 여성이라고 사정을 봐주지 않는데, 남녀의 체력 기준이 다른 것은 문제다’란 비판이 있다. 실제 경찰·군인의 체력검정에는 남녀 모두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등 항목이 있는데, 여성 등급 기준이 남성의 60~80% 수준이다. 다만 여경은 팔굽혀펴기 시 무릎을 대는 것이 허용되나, 여군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정자세로 한다는 차이는 있다.
 
체력기준은 해외에서도 천차만별이다. 영국은 경찰 채용 시 남녀 모두 동일한 체력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워싱턴 등을 제외한 대부분 주에서 같은 체력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일본과 뉴질랜드는 여성 체력기준이 남성보다 낮지만, 팔굽혀펴기를 정자세로 한다.
 
여경 어떤 부서 일하나 보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경 어떤 부서 일하나 보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찰청은 내년부터 경찰대생과 간부 후보생의 체력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여성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정자세로 변경한다는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체력기준을 순경 공채 체력시험까지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현 체력 기준은 범인 검거 등과 큰 관련이 없고, 남성에게만 유리한 기준’이란 반론도 있다. 주명희 경정은 “여경의 체력 기준을 강화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팔굽혀펴기에 비난의 초점이 맞춰진 게 문제다. 다양한 체력 기준을 검토해야 하고, 무엇보다 임용 뒤 훈련을 통해 체력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손국희ㆍ정진우ㆍ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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